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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매경의 창] 혼인제도와 性的 자기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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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내 전공인 민법과 관련된 자료를 뒤지다 보면, 때로 놀라운 사실과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 민법에 있는 규정은 아무래도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가져온 것이 대부분이어서 그쪽의 문헌을 찾아보는 일이 많다. 프랑스의 재판제도는 우리와 다른 점이 적지 않지만, 대체로 우리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파기원(破棄院)은 일단 6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와는 별도로 원장과 각 부의 대표 법관으로 구성되는 '대법정(大法廷)'도 있다. 여기서는 우리의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와 같이 어려운 쟁점을 안고 있는 사건들을 많이 다룬다.

얼마 전에 그 대법정의 판결을 모은 책을 읽었다. 거기서 배우자 있는 사람이 혼외관계를 맺은 사람에게 자신의 재산을 넘긴다는 유언은 그것이 그 관계의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도 공서양속(公序良俗)에 반하지 아니하여서 유효라고 하여 종전의 태도를 뒤집는 2004년 판결에 접하였다. 아니, 이럴 수가! 그 사건에서는 95세의 남성이 혼외관계를 맺어온 31세의 여성(그녀는 공공연히 "돈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에게 재산을 포괄적으로 증여하는 유언을 한 후에 사망하였는데, 그 여성은 유언의 '실행'을, 망인의 처와 딸은 유언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소를 각기 제기하였던 것이다.

계약이나 유언 등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 줄여서 공서양속에 반하면 무효라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민법 제103조). 그 가장 명백한 사안 유형이 "배우자 있는 사람이 제3자와의 사이에 부정한 관계를 맺고 이를 유지하기 위하여 금품 기타 재산을 제공하는 행위"라고 배웠다. 우리 법원도 같은 태도를 취하고,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설은 적어도 아직은 없다.

우리는 가족 관련 법제도 또는 법리가 그사이에 뚜렷하게 변화하였다. 민법에서 여러 측면에서 직간접적으로 처, 모 기타 여성을 불합리하게 차별하던 규정들은 모두 개정되어, 이제 적어도 제도의 차원에서는 양성평등이 달성되었다. 이는 형사 분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그 변화의 방향이 반드시 여성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처에 대한 강간죄도 성립한다고 판례가 바뀌었지만, 남성도 강간의 객체가 될 수 있다는 법 개정이 있었다. 또한 남성에게만 문제되는 혼인빙자간음죄는 성적(性的) 자기결정권의 침해를 이유로 헌법재판소가 2009년에 위헌으로 선언하였다. 그리고 헌재는 2001년에는 재판관 전원 일치의 의견으로 간통죄가 합헌이라고 하였지만, 2015년에는 헌법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였고 이에는 단지 2인의 반대 의견이 있었다(우리 법에서는 헌재가 합헌으로 판단한 것을 나중에 뒤집어 위헌 또는 헌법 불합치로 판단하는 데 별다른 제한이 없다. 그 위헌 판단으로 인하여 법규정을 무효로 하는 효력도 애초부터 위헌으로 선언한 경우와 다를 바 없다). 여기서도 헌재는 그 이유에서 다른 사정들과 함께 성적 자기결정권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이 자신의 일은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고 처리할 수 있다는 관점을 강조한다면, 이를 재산에 대하여 관철하는 것은 아직 먼 얘기인가. 혼외관계도 이혼을 제외하고는 처벌 등 제재 없이 할 수 있는 '자기 일'의 범주에 속한다고 한다면, 그 상대방에게 자기 재산을 주는 것을 법으로 막을 근거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성적 자기결정이 돈과 얽히게 되면, 그것이 성매매가 아니라도(성매매에 보다 자유로운 주요한 외국의 입법 동향도 흥미를 자아내는 바 있다) 효력을 부정함으로써 막아야 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되는가? 그러나 혼인제도가 엄연히 있는 한 성적 자기결정권이란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대면 모임도 없는 터에 연구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이처럼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을 굴려 보기도 하는 것이다.

[양창수 한양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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