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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4시간 팽팽한 기싸움 후 각자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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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 감돌았던 미·러 정상회담

조선일보

정상회담장의 조 바이든 미 대통령(왼쪽)과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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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 시각) 미국·러시아 정상회담이 열린 스위스 제네바의 고택(古宅)인 ‘라 그랑주 빌라’. 오래된 책이 빼곡하게 꽂힌 서가 앞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나란히 앉았다. 두 정상 사이에는 지구본이 놓여 있었다. 푸틴 대통령이 “회담하자는 제안에 감사하며 이번 만남이 생산적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얼굴을 마주보고 만나는 게 항상 더 낫다”고 말한 뒤, 양국을 가리켜 “두 강대국(two great powers)”이라고 했다. 러시아를 추켜세워준 것이다.

취재진이 물러나고 두 정상은 곧바로 4시간 넘는 정상회담을 시작했다. 2018년 7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만난 이후 3년 만의 미·러 정상회담이다. 스위스에서 만난 이유는 러시아 측이 중립 지대를 원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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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각) 스위스 제네바의 ‘라 그랑주 빌라’에서 정상회담을 시작하기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바이든과 푸틴이 회담을 한 건 처음이다. 미·러 정상회담은 2018년 7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과 푸틴이 만난 이후 3년 만이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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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화기애애했지만 두 정상은 안보 이슈를 꺼내며 날 선 대화를 했다. 바이든 측에서 러시아의 미국·유럽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 우크라이나 반군 지원, 러시아 정보기관의 서방국가 선거 개입 문제 등을 거론하며 압박을 가했다. 푸틴 쪽에서는 조목조목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은 푸틴의 강압적인 통치 방식에도 이의를 제기하며 인권을 존중할 것을 요구했다. 수감된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맞서 푸틴은 바이든이 G7(주요 7국) 정상회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해 중국에 대한 압박을 본격화한 것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중국과 러시아는 최근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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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정상회담이 열린 스위스 제네바에 양국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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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회담은 두 정상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참여한 2대2 회담으로 시작했으며, 이어 양측이 5명씩 참가한 확대 회담 등으로 형식을 바꿔가며 4시간쯤 진행됐다. 두 정상만 머리를 맞댄 순간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시종일관 양측은 치열한 기 싸움을 벌였다. 회담 후 각자 따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두 정상은 장시간 회담을 벌였지만 음식을 함께 먹지도 않았다고 한다. 국제 외교 무대에서 상습적으로 늦게 나타나는 푸틴의 지각을 막기 위해 푸틴이 먼저 회담장에 들어가기로 사전에 정해둔 것도 기 싸움의 일부였다. 푸틴은 회담장에 약속 시간인 1시보다 4분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과거보다는 시간을 비교적 잘 지켰다. 바이든은 푸틴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숙소를 나서 1시 18분 회담장에 도착했다.

푸틴이 지난주 미국 NBC방송과 인터뷰한 것도 기선 제압의 의미가 있었다. 푸틴은 지난 3월 바이든이 자신을 ‘살인자’라고 부른 것에 대해 NBC 인터뷰에서 “그런 비난을 수십 번 들어서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바이든은 14일 나토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아직도 푸틴을 살인자로 보느냐’는 질문을 받고 “하하하”라고 소리 내 웃었다.

양측이 합의에 이른 부분도 있었다. 포로를 서로 맞교환하는 데 원칙적인 합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8년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가 간첩 혐의로 체포된 전직 미 해병대원 폴 월런이 러시아가 내놓을 미국인 포로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에 수감된 러시아인 중에서는 무기 중개상이나 마약 밀수 혐의로 수감된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두 정상은 또 핵무기 상호 감축에 협력하자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장을 포함한 제네바 시내 중심부는 이날 오전 4시부터 자정까지 차량 이동이 전면 통제됐다. 회담 장소가 위치한 ‘라 그랑주 공원’은 지난주부터 철조망을 두른 채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했다. 제네바 시내에는 4000명의 군경이 배치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물샐틈없는 경비를 펼쳤다. 바이든 대통령이 전날 묵은 인터콘티넨털 호텔 주변은 회담 전후로 이틀 동안 접근이 금지됐다.

이번 정상회담은 푸틴보다는 바이든에게 부담이 더 컸다는 게 중론이다. 잃을 것이 적은 푸틴에 비해 바이든은 푸틴과 대화를 시도한 것이 악수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이 도박을 하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 관영 매체들은 “미국인들이 이번 회담에 대해 신경이 곤두서 있으며, 푸틴 대통령은 긴장하지 않는다”며 미국 측을 자극했다. 두 정상은 각자 기자회견을 마치고 귀국길에 올랐다.

[제네바=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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