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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인터뷰] 대기업 퇴사 후 여행 갔다가 세비야에 눌러 앉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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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비행기에 올랐어요. 그리고 가장 먼저 여행한 스페인 세비야에 반해 그대로 정착했죠.​"

여행 불모지였던 세비야에서 단기간에 ‘워킹 투어’를 크게 성공시킨 김호영 가이드. 그는 자신이 세비야를 고른 게 아니라, 세비야가 본인을 택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운명적인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세비야에서 생활한지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에게 세비야를 물으면 그는 아직도 이제 막 도착해 가슴 뛰는 여행객처럼 들뜬 모습을 보인다. 이토록 세비야를 사랑하는 그에게 ‘코로나19’라는 역경이 닥쳤지만, 여행객이 찾아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아름다운 세비야를 전하고픈 그의 열정은 꺾지 못했다.

매일경제

스페인 세비야에서 투어가이드를 하고 있는 김호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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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 이후 온라인 투어로 세비야를 소개하고 있는 김 가이드. 그는 오프라인 투어 못지않게 랜선 투어만의 매력도 무궁무진하다고 전했다. 가이드의 가장 큰 적인 ‘손님들의 체력’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 투어에 기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 또 이미 세비야에 가본 이들이라면, 다시 찾아가기는 돈과 시간이 아까워 망설이는 경우가 많은데, 저렴한 비용으로 큰 노력 들이지 않고 추억을 소환해볼 수 있다는 점도 랜선 투어의 매력으로 꼽았다.

16일 저녁 8시, 네이버TV ‘여행플러스’에서 김호영 가이드의 세비야 랜선투어를 진행한다. 세비야를 가본 이들에게는 추억 여행이, 아직 가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세비야’라는 도시와의 첫 만남이 될 시간. 랜선 투어를 참여하기 전에 김호영 가이드를 좀 더 알고 싶었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에게 세비야는 어떤 도시인지. 화상 인터뷰를 통해 세비야 현지에서 살고 있는 김 가이드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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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스페인 세비야에서 아내와 딸과 함께 살고 있는 김호영입니다. 세비야에 거주한지는 현재 6년차입니다.

Q. 세비야에 정착한 계기가 흥미롭던데요.


아내와 저 모두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퇴사를 하고 스페인으로 넘어왔습니다. 세비야로 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온 건 아니었고, 원래 저희는 2년간 세계여행을 할 계획이었습니다. 중남미를 너무 가보고 싶기도 했고, 제가 대학 때 어학연수 같은걸 한 번도 못 해봐서 어학도 배우고 싶었거든요.

스페인어를 먼저 배우고 나머지 여행지를 돌겠다는 계획으로 가장 먼저 세비야를 방문했습니다. 세비야에서 4개월을 머물 예정이었는데, 지내다 보니까 좀 더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세비야에서 산지 9개월 쯤 됐을 때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아예 세비야에 정착해 현재 6년째 살고 있습니다.

Q. 가이드를 하기 전 어떤 일을 하셨나요?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저는 대기업을 다녔어요. 삼성화재를 다니면서 지점장 생활을 2년 정도 했습니다. 내부 직원 교육 및 고객 상담용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기획 등의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퇴사 2년 반 전부터 여행계획을 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사실 전 휴직신청을 했는데 민망하지만 당시 제가 회사에서 핵심 인력으로 분류돼 있었어요. 그래서 휴직신청이 반려를 당했고, 어쩔 수 없이 회사를 아예 그만뒀습니다.

Q. 이전에는 전혀 다른 일을 하셨네요. 가이드를 시작하면서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데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학창 시절 발표를 하거나 반장을 맡게 될 때에도 두려움이 없었고, 회사에서도 강의를 자주 다녔거든요. 타인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는 일을 계속 하다보니까 우여곡절은 크게 없었어요. 오히려 ‘천직을 찾았다’고 생각했죠.

Q. 많고 많은 스페인 지역 중 왜 하필 ‘세비야’에 정착하셨나요?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도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세비야는 호기심이 정말 많이 생기는 도시였습니다. 현지인들을 만나면서 대화를 주고받을 때마다 느끼는 게, 이곳 사람들은 속되게 말하면 정말 ‘오지랖이 넓어요’. 남이 곤란에 처했을 때 선뜻 도와주고 싶어 하고, 말 걸고 싶어 하고 그러거든요. 저희 같은 외국인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점이 정착을 결심하게 해주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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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풍 왕궁 알카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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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세비야는 어떤 도시인가요. 세비야를 여행하고 싶게 하는 매력은?


세비야는 스페인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스페인 역사책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도시이기도 하죠. 헤라클레스의 전설이 살아 숨쉬고, 로마 시대 카이사르가 사랑에 빠진 도시며, 스페인을 강력한 가톨릭 국가로 변모시킨 성인들의 도시이기도 하고요. 중세에는 화려한 이슬람 문화가 꽃피었고 콜럼버스, 마젤란 등 쟁쟁한 항해사가 대항해시대를 연 도시입니다. 수많은 이야깃거리와 음식, 춤, 투우 등 ‘가장 스페인스러운’ 모든 것들이 압축돼 존재하는 도시입니다.

Q. 세비야에서 ‘이곳만은 꼭 가봐야 한다’고 추천할 곳 몇 가지만 꼽자면?


세비야에는 세계문화유산이 세 가지 있어요. 그중에 세계 3대 대성당인 세비야 대성당과 이슬람풍 왕궁, 알카사르는 꼭 가보셔야 합니다. 제가 랜선투어로 소개해드리고 있는 산타크루스 지구라고 있어요. 골목골목 예쁜 곳인데 거기도 꼭 가보셨으면 좋겠고 김태희가 플라멩코를 춘 스페인 광장까지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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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가 플라멩코를 춘 스페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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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워킹 투어’의 인기가 엄청납니다. 많은 이들을 만족시킨 본인만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가이드는 여행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가장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도 회사를 다니면서 굉장히 어렵게 휴가를 내고 여행을 다녔던 사람으로서 그 시간과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거든요. 그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을까,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을까를 가장 먼저 고민합니다.

투어를 구성하는 단계에서는 스토리텔링을 가장 중시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수많은 정보 중 여행객들이 가장 듣고 싶은, 가장 필요한 이야기를 단순 나열이 아닌 하나의 스토리로 유기적으로 구성해 흥미를 이끌어내는 것이 가이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재미 추구와 지적 호기심 충족, 그 사이에 줄다리기를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투어를 진행하면서 가벼운 농담이나 언행은 일절 하지 않습니다. 투어는 재밌어야 하되, 내 스스로가 웃기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제 모토입니다. 남녀노소 누가 들어도 불편하지 않은 투어를 만드는 게 제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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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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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까지 투어 진행해오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대성당 안에 입장해 설명을 해드리는 투어가 있는데, 그 투어에 신부님들이 단체로 6분이 오셨어요. 신부님들 앞에서 가톨릭 성당을 설명해야 하다니... 그야말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 상황이었던 거죠. 굉장히 부담되고 떨리는 상황이었지만 성경, 가톨릭 성인, 멋진 화가의 성화 얘기 등 준비한 내용을 열심히 소개했습니다. 신부님들께서 끝까지 경청해주시고 칭찬도 해주셔서 기억에 정말 남아요.

가수 보아씨와 함께한 프라이빗 투어도 기억에 남아요. 일행 세 분이랑 사적으로 세비야 여행을 오셨는데, 프라이빗 투어로 예약하셨거든요. 당일 아침에야 보아씨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호텔에서 만나 아침식사부터 하고 투어 진행하면서 기념촬영도 하는 등 즐겁게 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보아씨가 본인은 월드투어는 다녀봤어도, 여행 와서 가이드한테 투어 듣는 건 처음이라고 재밌어하신 기억이 납니다.

Q. 투어 중 정말 다양한 질문을 받을 것 같은데요. 그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실 것 같습니다.


손님에게는 세비야에 계신 날이 하루 이틀이지만 저는 모든 손님들에 대한 대비가 돼있어야 하잖아요? 여름에 오시는 분, 겨울에 오시는 분, 아침, 저녁, 맑을 때, 비올 때, 축제가 있을 때 등등. 손님들이 세비야에서 맞는 순간마다 다 질문거리가 나올 거란 말이죠.

저는 현지에 살면서 모든 계절, 순간을 겪으면서 쌓이는 경험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살다보면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잖아요? 도시에 애정을 갖고 배우는 자세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큰 공부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밖에도 논문이나 역사서, 현지 언어로 돼있는 책, 관광청 자료, 현지인을 통해 얻은 정보 등을 참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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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부터 시작한 유튜브 방송 중인 김호영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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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온라인 투어와 오프라인 투어 간에 구성 및 진행 방식에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오프라인 투어를 할 때는 스토리 중심으로 해요. 저는 손님들께 한편의 책을 읽는 마음으로 오시라고 하는데요, 책 한 권 쓴다는 생각으로 투어를 유기적으로 구성합니다. 배경지식이 필요한 얘기들은 뒤에 배치하고 앞에서 미리 배경지식들을 쌓아가는 단계를 갖는다든지 등의 방식으로요. 제 투어를 중간에 들어오면 헤매실 정도로 앞과 뒤를 연결하며 확장해가는 콘텐츠를 꾸리는 걸 중시했습니다.

집에서 휴대폰이나 TV 등 기기로 온라인 투어를 시청하시는 분들은 오프라인에 비해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얼마든지 딴 짓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잖아요? 냉장고도 한번 갔다 오고 싶고, 화장실도 자유롭게 다녀오고...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구성해도 중간에 이탈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화면을 다양하게 보여드리는 걸 최우선으로 고려합니다. 한 화면이 오래 나오면 지루함을 느낄 수 있으니 어느 동선으로 구성을 해야 화면이 자주 전환돼 시청자들이 분위기를 환기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합니다.

Q. 투어 후기를 보니 카메라가 안정적이라 보기 편하다는 평가가 많은데요, 촬영 경험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투어를 오신 분들께 모든 걸 보여드릴 수 없으니까 예전부터 유튜브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코로나19가 터지고 시간이 생기면서 3개월 정도 영상 촬영 관련 공부를 했고 장비도 사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그렇게 작년 6월부터 유튜브를 시작했고, 직접 공부하고 영상을 제작해본 것이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유튜브 ‘세비야올래’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Q. 현재 세비야 코로나19 상황은 어떤가요? 코로나 시국을 해외에서 보내면서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스페인도 백신 접종 중입니다. 스페인에는 크게 3번의 대유행이 있었는데, 한창 때에 비하면 확진자 수가 많이 줄어든 상태입니다. 5월 초에 국가비상사태가 해제되면서 지역 간 이동이 자유로워졌고 여행객들도 제법 많아졌습니다. 특히 외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많아져 대성당을 포함한 주요 관광지들도 다시 문을 연 상태입니다. 농담 삼아 지인들끼리 “아시아인 빼고 다 온 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해요.

가장 힘들었던 건 비자발적 실업에 빠졌던 점이었죠. 인종차별 걱정 많이 하시던데, 저흰 여기 살면서 코로나 관련해서 인종차별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초반에 동양인이라 괜히 스스로 위축됐던 적은 있어요. 스페인이 유럽에서도 인종차별이 적은 편이고, 특히 남부 쪽은 인종차별이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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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코로나19로 하던 일을 못 하게 됐을 때 스페인에 정착한 걸 후회한 적은 없으셨나요?


일이 끊기고 집에서 한창 육아전쟁에 시달릴 때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었더라면 지금도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스페인으로 온 선택은 제가 한 것이기에 환경 탓을 할 수는 없었죠. 코로나 시국은 언젠가 끝날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온라인 투어도 진행하면서 조금씩 심리적으로도 안정됐습니다. 지금은 전혀 후회나 걱정 없이 살고 있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다가올 코로나 이후의 미래가 너무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Q. 여행이 일이 되면서, 여행이 지겨워지거나 싫어지셨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손님들이 가끔 저에게 질문하세요. 매일 똑같은 얘기 할 것 같은데 지루하지 않으냐고요. 저는 전혀 지루하지 않아요. 매일 똑같이 얘기해도 듣는 분은 계속 바뀌잖아요? 그럼 완전 새로운 하루가 펼쳐져요. 여행자들은 투어 하는 순간이 1년 중 가장 들떠있고 행복한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여행 와서 짜증나있는 분들은 거의 없잖아요? 뭘 보여드리고 뭘 말씀드려도 재밌게 들을 자세가 돼 있으십니다. 그래서 저도 어제와 같다는 느낌을 못 받고, 그분들로부터 좋은 에너지를 받아요.

또 일과는 별개로 저는 계속 여행하고 싶습니다. 여전히 새로운 곳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재밌고, 틈틈이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여행하는 것 자체가 공부고 자기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Q. 가이드님에게 여행이란?


복권. 월요일에 복권을 사면 토요일 추첨을 하는 날이 올 때까지 일주일 내내 떨리잖아요. 왠지 될 것 같고. 이걸로 뭐 할까 상상하고. 여행이 딱 그런 것 같아요. 가려고 마음 먹는 순간부터 떨리니까.

[강예신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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