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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엑셀이 공직자의 자격인가요”… 이준석 ‘공천 자격시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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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내년부터 지방선거 공천 때 자격시험 적용”

자료해석·표현· 컴퓨터 활용·독해 능력 등 검증

청년층 반응은 뜨뜻미지근

장혜영 “공천 과정에 시험 도입은 굉장히 엘리트적 발상”

박성민 “단편적 시험으로 자격·능력 측정 가능한 지 의문”

신민주 “시험으로 못 거르는 문제 많아…윤리의식 검증 강화”

정치 신인에겐 선거 과정에 대한 배려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세계일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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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이 공직자의 자격인가요”, “능력만으로 뽑겠다는 취지 아닌가요”

‘이준석 신드롬’의 이면에 있는 상반된 목소리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가 내세운 ‘공천자격시험’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 대표는 내년 6월 지방선거 공천 때부터 공천자격시험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자료해석 능력이나 표현 능력, 컴퓨터 활용 능력, 독해 능력 등을 검증해 지방자치단체장 공천장을 주겠다는 것이다.

지자체장 후보들이 자격시험을 치르도록 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실력있는 후보를 공정하게 공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인맥이나 계파에 의한 밀실 공천이 청년이나 정치 신인의 등용을 가로막았다는 반성이 깔려 있다. 이 대표도 지난 1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자격시험이나 공개선발을 통해 신진 정치인들이 육성될 수 있다고 한다면 아주 훌륭한 인재풀을 구성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2018년 서울 노원병 공천 과정의 경험도 이 대표의 구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 대표는 바른미래당 노원병 재보궐선거에 단독으로 공천신청을 했다. 그러나 당 후보추천위는 공천장을 주지 않았다. 안철수계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가 공천을 신청하고 경선 직전까지 가면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청년이나 신인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는 건 ‘하늘의 별 따기’나 나름없다. 조직과 인맥, 재력 등이 뒷받침돼야 하는 우리 정치 풍토상 청년과 신인이 정치 일선에 발을 들여놓기 어렵다. 국제의원연맹(IPU)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회와 지방 의회에서 2030대의 비율은 4.3%에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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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영 정의당 의원.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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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이 대표의 공천자격시험 카드에 대한 청년층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정의당 장혜영(34) 의원은 실효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시험 봐서 뽑겠다는 게 얼핏 공정한 느낌이 들 수는 있겠으나 국회의원을 반장으로 바꿔놓고 생각하면 공천자격시험 제도가 얼마나 이상한지가 드러난다. 학교에서 반장을 뽑는데 반장 후보를 시험 봐서 자격을 주겠다고 하면 동의하겠는가?”

소속 정당이 달라서일 수 있지만 비슷한 연령의 청년층으로 갖는 의문이 컸다.

이 대표는 자료해석이나 독해 능력 등을 살펴보겠다고 했는데, 한글을 읽지 못하는 무학력자는 공직자나 국회의원이 될 자격이 없느냐는 게 장 의원의 지적이다.

장 의원은 “민주주의에서 어떤 사람이 공직 후보가 될 수 있느냐는 유권자 판단에 맡기는 것”이라며 “그 과정에 어떤 시험을 도입한다는 건 굉장히 엘리트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컴퓨터 활용 능력 등을 언급하고선 “엑셀을 하지 못한다는 것과 공직자의 자격이 어떻게 연관되는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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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더불어민주당 전 최고위원. 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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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25) 민주당 전 최고위원도 “당의 기준에 따른 시험을 통과했다고 정치인으로 자격을 인정해 준다는 게 논리적 비약”이라며 “애초 컴퓨터 활용능력 시험과 같은 단편적인 시험으로 과연 정치인의 자격과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공천이 인맥이나 계파에 휘둘려 밀실에서 이뤄져서는 안된다는 공감대는 폭넓게 형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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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주 기본소득당 대변인. 기본소득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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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주(27) 기본소득당 대변인은 후보자의 윤리의식 검증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신 대변인은 “지금까지 공천된 사람들만 봐도 오히려 시험으로 거를 수 없는 문제들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4·15 총선 당시 민주당 외부 영입인사가 옛 여자친구 폭행 의혹 등으로 자진출마한 사실 등을 거론했다. 신 대변인은 “이런 문제는 자격시험으로 거를 수 없다”면서 윤리의식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청년이나 정치신인을 위해 공천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방선거 출마 경험이 있는 왕복근(34) 정의당 관악을위원회 부위원장은 “공천권을 당원들에게 돌려주는 편이 계파정치를 해체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심사위원회가 후보자를 거르고, 걸러진 사람 중에서 조직 동원이 가능한 사람들 중심으로 투표를 하는 것이 당적 민주주의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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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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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정치신인에게는 공천 과정을 넘어 선거 과정에 대한 배려까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선거를 치르려면 막대한 비용이 드는데 정치 신인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높은 인지도로 순식간에 1억5000만원을 모았지만 이름없는 신인들에게는 꿈 같은 얘기일 뿐이다.

김용태(31)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지방선거에서 기초의원 3000만원, 광역의원 5000만원, 총선에서는 1억이 필요하다고 한다”며 “선거를 두 번 치르면서 아버지한테서 돈을 빌릴 수 있었는데 현금 1억을 주실 수 있는 부모님들이 얼마나 많으시겠냐”고 물었다.

2018년 지방선거에 서울시의원 후보로 나선 문성호(32) 국민의힘 서울시당 부대변인도 “선거 비용이 없어 고민하던 순간 아버지가 대출을 받아주셨다”며 “다행히 득표율이 기준을 넘어 비용을 보전받긴 했지만 돈을 못 돌려드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구현모·이지안·조희연 기자 li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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