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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러시아가 더 위협적” 英·佛·獨, 중국 압박수위 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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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중국 몰아붙이자” 했지만 유럽 정상들은 온도차

14일(현지 시각)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가 끝난 후 기자회견장에 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나토가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구조적 도전’으로 명시한 데 동의하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지나치게 중국을 몰아붙이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가 담긴 발언이었다. 마크롱은 “중국은 북대서양에 있지 않다”고도 했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30회원국 정상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주도로 중국을 군사적 차원에서 강하게 견제하기로 했지만, 일부 불협화음도 나오고 있다. 바이든의 대중(對中) 강공론에 맞선 ‘수위 조절론’이 유럽 정상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나토는 공동성명에서 “중국이 국제 질서에 구조적 도전을 야기한다”고 했지만,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나토 정상들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 의견이 그다지 수렴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유럽 정상들은 거대한 중국 시장과 멀어지게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나토에서 바이든이 독주하는 흐름에 대해서도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럽에는 피부에 와 닿는 군사적 위협이 중국보다는 러시아라는 현실을 바이든에게 전달하려는 의지도 엿보인다.

마크롱은 이날 “중국과의 관계는 단순한 군사적인 문제가 아니다”라며 “경제, 전략, 가치, 기술에 관한 것이라 군사 문제보다 더 광범위하다”고 했다. 중국과의 경제 교류가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의사 표시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테러와의 싸움, 러시아와 관련된 안보 문제에도 (나토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도 했다.

조선일보

바이든의 대중국 강공론과 온도 차이 보이는 유럽 정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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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바이든의 대중 강공론에 대해 일정 부분 불편하다는 의사 표시를 했다. 메르켈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무엇보다 러시아가 (나토에) 큰 도전”이라고 했다. 이날 공동성명에 중국은 10번 언급되고 러시아가 62번 언급된 것은 메르켈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결과인 것으로 알려졌다. 메르켈은 “사이버 공격에서 중국이 러시아와 손잡을 경우 위협적일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 문제의 중요성을 과대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중국에 대한 수위 조절론을 거론한 것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중국과의 관계는 위험과 보상이 모두 존재한다”며 “누구도 중국과 신냉전으로 가기를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영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올해 안에 퀸엘리자베스 항공모함을 동북아에 배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존슨은 바이든의 강경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선을 긋는 모양새다.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도 성명을 내고 “발트해 연안 국가들이 직면한 위험(러시아)이 있다”고 했다. 스웨덴, 핀란드 등 러시아의 위협을 체감하는 북유럽 국가들은 중국 위협론을 그다지 공감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압박이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유럽 정상들과 분명한 인식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11~13일 열린 G7(주요 7국) 정상회의 후 공동성명 초안에는 중국을 겨냥한 보다 강력한 문구가 있었지만 조율 과정에서 다소 수위가 낮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은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관련해 공동성명이 더 강력하기를 원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그렇다”고 답하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유럽 정상들과의 일부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은 이번 유럽 순방에서 중국에 맞선 서방 진영의 공조 체제를 다시 가동하는 성과를 거뒀다. 단적으로 G7 국가 중에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처음으로 참가를 선언했던 이탈리아가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중국은 바이든과 나토의 압박에 대해 “위협론을 과장하지 말라”며 반발했다. EU 주재 중국 사절단은 이날 입장문을 발표해 “우리는 시종일관 방어적인 국방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사절단은 올해 중국 국방 예산이 GDP(국내총생산)의 1.3%에 불과한 2090억달러(약 234조원)라는 점, 나토 회원국 국방 예산이 중국보다 5.6배 많다는 점, 나토의 핵 탄두가 중국보다 20배 많다는 점 등을 열거했다. 중국 사절단은 “우리는 누구에게도 구조적인 도전을 하지 않겠지만 누군가 우리에게 구조적인 도전을 한다면 무관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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