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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법 개정 운동하시라" 재판장 비아냥댄 임종헌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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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이 15일 재판에서 형사소송법에 따라 증거서류를 모두 낭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 안되면 법 개정 운동하시라"고 재판장에 '으름장'을 놨다. 사진은 지난해 7월 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는 임 전 차장의 모습. /이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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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서류 '낭독' 해야…공정한 재판 요구"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이 형사소송법에 따라 증거서류를 모두 낭독해야 한다며 "정 안되면 법 개정 운동하시라"고 재판장에 비아냥대는 태도를 보였다. 재판장이 받아들이지 않자 "공정한 재판이 아니라는 의혹이 해소된 뒤 재판이 진행돼야 한다"며 상당수 증거를 동의하지 않았다.

◆"증거서류, 요지 고지 아닌 '모두 낭독'해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15일 오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99차 공판을 열고 "서증조사는 서증 요지를 고지하는 방법으로 진행하겠다"라고 밝혔다.

임 전 차장 측 변호인 임정수 변호사(법무법인 신지)는 이러한 서증조사 방식이 형사소송법에 위배된다고 반발했다. 형사소송법 292조는 '검사, 피고인 또는 변호인의 신청에 따라 증거서류를 조사하는 때에는 신청인이 이를 낭독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고지'에 그치는 조사 방식은 법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임 변호사는 "증거서류 요지 고지가 원칙이고 낭독이 예외였던 형사소송법이 개정된 건 증거서류 조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반성하고 개선하기 위한 입법적 결단"이라며 "형사소송법에 따라 증거서류 모두 반드시 낭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거서류를 모두 낭독하게 된다면 이미 3년을 바라보는 임 전 차장의 재판 시계는 더욱 느리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임 변호사는 '재판 지연 목적'이라는 비판을 우려했는지 "재판은 나아가야 하고 저 역시 뒤로 가는 재판은 원하지 않는다. 저도 유한한 인생을 살고 있다"며 "그러나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요지 고지'라는 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옛날에 임관되거나 재임용된 판사님은 '옛날 법 배웠나 보다' 싶지만,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판하시는 판사님이라면 현행법에 따라 진행해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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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은 15일 재판에서 증거조사 방식을 두고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판하시는 판사님이라면 현행법에 따라 진행해달라"고 주장했다. 사진은 2018년 10월 피의자 시절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임 전 차장의 모습. /임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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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 고지, 정말 현행 형사소송법 위반일까

이날 재판부가 밝힌 '요지 고지' 방식은 지난해 4월 7일 31번째 공판에서 이미 공지한 내용이다. 이후 진행된 대부분 서증조사는 검찰이 증거서류 요지를 고지한 뒤 변호인이 의견을 밝히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사건 특성상 법원행정처 생산 문건의 경우 문건 제목과 작성자 이름만으로도 내용과 입증 취지가 뚜렷하기 때문에 중심 내용만 낭독하고 지나가는 일도 잦았다. 이러한 방식은 정말 '옛날 법밖에 모르는' 조사법일까.

임 변호사의 설명대로 증거서류 조사 방식에 관한 조항인 형사소송법 292조 1항과 2항은 각각 '증거를 낭독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때에 따라 내용 고지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 292조 3항 '재판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제1항 및 제2항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고지하는 방법으로 조사할 수 있다'는 조항이 법적 근거다. 재판장 윤종섭 부장판사는 "형사소송법은 재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 내용 고지 방법으로 증거조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며 "이 법원은 그동안 증거서류 핵심내용을 고지한 뒤 변호인에게 의견 진술 기회를 충분히 보장해 피고인이 유리한 부분을 부각되도록 했다"고 밝혔다.

윤 부장판사는 발언 도중 여러 차례 말을 멈추고 자료를 검토하는 등 신중하고 꼼꼼하게 '해명'했지만, 임 전 차장 측은 성에 차지 않았다. 임 변호사는 "법의 원칙을 지키지 못한 이유를 말해달라"며 거듭 '낭독 원칙'을 강조했다. 임 변호사는 "모든 증거서류를 읽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입법자가 이걸 몰라서 낭독하라고 했겠느냐. 어디 길 가는 장사꾼, 나무꾼 모셔서 만든 거(개정안) 아니다"라며 "효율성 내세우지 말고 제대로 하라는 건데 그럼에도 내용 고지만 하도록 지휘한다면 제가 담당한 파트 증거는 모두 부동의 의견을 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 말씀은 법에 있는 대로 하자는 것이다. 정 안되면 법 개정운동 하셔야죠, 뭐"라고 말했다.

◆"헌법에 따라 공정한 재판 해달라"는 林, 결국 증거 부동의

윤 부장판사는 내용 고지 방식 역시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라고 거듭 설명했다. 그는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 내용 고지 방식으로 진행하는 건 형사소송법이 정한 증거조사 방법으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를 판단할 주체는 재판장으로 이해된다"라며 "법에 따라 하자는 말씀에 공감하지 않으실 분이 이 법정 어디에 있겠느냐. 재판장 의견을 한 번 더 살펴봐 주시고 재고해달라.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임 변호사는 "편의적인 발상"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재판장을 향한 변호인의 열띤 공세를 묵묵히 듣던 임 전 차장도 입을 열었다. 임 전 차장은 "피고인(본인)은 2016년 사법등기국장으로서 형사소송법 개정 과정을 지켜본 경험이 있다. 과거 조서재판의 여러 폐해를 극복하고 실질적인 공판중심주의를 재판 현장에서 구현하기 위해, 비경제적이라도 재판장의 생생한 심증 형성을 위해서라는 입법적 결단이 있었다"며 "소송경제와 심리 효율성에만 방점을 두고 구 형사소송법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건 위법의 소지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윤 부장판사 역시 "낭독이든 고지든 법정에서 쌍방 공방을 거쳐 실체적 진실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증거조사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 글자도 빠짐없이 읽는 게 재판부가 증거 가치를 파악하는데 얼마나 도움 될 지 의문"이라며 기존 의견을 고수하자 결국 임 전 차장 측은 '증거 부동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날 서증조사가 예정된 5·6 파트 증거를 동의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해당 파트는 판사 커뮤니티 '이판사판야단법석' 카페 사찰과 '정운호 게이트' 의혹에 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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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은 15일 재판에서 헌법과 법률에 따른 공정한 재판을 요구했다. 사진은 대법원. /남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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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변호사는 부동의 사유를 정리해 의견서로 내달라는 재판부 요구에도 "의견을 정리해서 낼 생각이 없다. 부동의 이유를 설명해야 할 의무가 없다"고 응수했다. 그는 "변호인으로서 대한민국 헌법과 형사소송법, 원칙에 따른 공정한 재판을 요구한다. 적어도 원칙에 맞는 재판이 아니라는 의심, 공정한 재판이 아니라는 의혹이 해소된 뒤 재판이 진행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의 의뢰인 임 전 차장은 양승태 대법원의 이익을 위해 헌법상 법관의 독립과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 혐의를 받는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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