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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3층짜리 청년 셰어하우스, 종부세 1300만원에 문닫을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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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임대사업자 법인 규제에

정부가 장려하던 셰어하우스도

종부세 폭탄, 위기의 사회주택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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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주택협동조합이 소유하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의 주택 '하심재'의 모습. 마을과 함께 쓰는 공유공간을 두고 8가구가 사는 이 집에 올해 종부세 4600만원이 부과될 예정이다. [사진 노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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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대안적 주거모델로 장려하던 주택협동조합, 셰어하우스 등이 정부의 세금폭탄 규제로 존립 위기에 놓였다. 지난해 7·10 대책에서 임대사업 법인을 대상으로 종부세 최고세율 6%를 부과하겠다고 한 데 따른 후폭풍이다.

비영리 주거모델로 집 소유권을 협동조합에 두고 임차인(조합원)의 주거 안전성과 공동체 생활을 강조하는 주택협동조합과 정부가 청년을 위한 주거정책으로 장려하던 셰어하우스도 결국 임대사업 법인으로 분류돼 이 정부가 얘기하는 '투기꾼'과 동일한 규제를 받게 됐다. 이에 따라 올해 연말에 수천만 원대의 종부세 고지를 받게 될 곳이 수두룩하다.

정상적으로 임대주택을 공급하던 법인의 타격도 크다. 이렇게 가다가는 민간 임대주택 시장이 고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기노채 한국주택도시협동조합연합회장은 “정부 정책에 디테일이 없다 보니 서민만 죽어 나간다”며 “정부가 국민을 저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극장 운영하는 협동조합주택 올해 종부세 4600만원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2016년 지어진 하의재는 총 8가구가 사는 5층 규모의 다세대주택이다. 이 집의 소유자는 하나의 주택협동조합으로 조합원인 8명의 세입자는 살고 싶을 때까지 살며 지역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서울시가 일부 출자한 한국사회투자에서 17억원가량 저리로 융자받고, 조합원의 평균 임대보증금 1억5000만원을 토대로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공적 자금을 지원받은 만큼 지어질 때부터 건물(대지면적 380.9㎡)의 절반가량(지하 1층~지상 2층)을 마을극장, 공동육아공간 등 마을과 함께 쓰는 공간으로 디자인했다. 지상 3층~5층에 여덟 가구의 집(평균 전용면적 49.5㎡)이 있다.

이런 하의재가 올해 연말 4600만원의 종부세 고지서를 받게 됐다. 종부세의 20%인 농어촌특별세와 재산세 등을 합하면 보유세가 최대 7000만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덟 가구를 합한 주택의 공시가격은 올해 16억원이다. 4년짜리 단기임대주택으로 등록했지만, 지난해 7·10대책으로 단기임대 유형이 폐지되면서 자동 말소됐다. 비영리 주거공동체인 하나의 주택협동조합은 졸지에 8채의 집을 가진 다주택 법인으로 종부세율 6%가 적용되는 고강도 규제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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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 대책 후 달라진 주택 임대사업자 제도.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강선규 하나의 협동조합주택 초대 이사장은 “올해 8년짜리 장기임대 등록을 하려 했으나 의무사항인 임대보증보험 가입이 안 돼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세입자의 보증금 보호를 위해 지난해 8월 18일 이후 신규 등록하는 임대사업자의 경우 임대보증보험에 의무가입하도록 했는데 하의재는 대출금 비중이 높은 것이 문제가 됐다. 강 이사장은 “대출금이 공시가의 60% 이상일 경우 보증보험에 들 수 없다”며 “세밀하지 못한 정책이 부동산으로 돈 벌기보다 공동체적인 삶을 택한 사람들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말했다.



셰어하우스 사업자도 규제 대상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3층 규모의 셰어하우스(대지면적 112.2㎡)는 올해 종부세 1300만원을 내야 한다. 이곳 사정도 하의재와 비슷하다. 함께 주택협동조합이 한국사회투자의 융자를 받아 다가구 주택을 매입해 운영하는 이곳도 지난해 임대주택 등록이 자동 말소됐고 대출금 비중 탓에 보증보험에 들 수 없어 임대주택 재등록이 어려운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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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주택협동조합이 소유하고 있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 셰어하우스의 모습. [사진 함께 주택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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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는 총 5가구가 산다. 1층은 세 명이 거주하는 셰어하우스로, 1인당 보증금 1000만원에 월 임대료가 34만원이다.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고, 조합원이 살고 싶을 때까지 살 수 있다. 박종숙 함께 주택협동조합 초대이사장은 “3층 통틀어 월 임대료 수익이 230만원인데 80%를 융자금 원금 일부와 이자로, 나머지는 수선 및 장기수선충당금 및 세금으로 쓰는 비영리 운영 구조”라고 전했다.

정부는 2017년 12월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하며 청년 임대료 부담을 낮추기 위해 2022년까지 셰어하우스를 5만 가구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현장 상황은 거꾸로다. 임대주택사업 법인 규제로 셰어하우스가 줄어들고 있다. 기노채 한국 주택 도시협동조합연합회장은 “사회적 협동조합 희망동네가 대출금 규제로 계획하던 다가구 주택을 매입하지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해 내가 대신 구매해 희망동네에 주택 운영을 위탁하려 했다가 종부세 부담에 결국 사무실로 용도 변경했다”며 “정부 규제에 청년 20명의 보금자리가 사라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룸 임대사업자도 사업 포기



원룸 임대사업을 30년째 하는 홍흥석(60) 씨는 최근 법인으로 소유하고 있던 원룸 550가구 중 100가구를 매각했다. 전세 매물만 골라 전세가보다 값을 더 낮춰 팔았다. 서울 은평구 진관동 구파발역 인근에 있는 원룸(전용면적 22㎡)의 경우 전세가가 1억3500만~1억4000만원인데 매매가는 1억2500만원이다. 홍 씨는 “월세 물건은 사가는 사람이 없고, 전세매물은 전세가보다 값을 낮추니 다 팔렸다”며 “법인 임대 매물이라 안심했던 세입자들이 집이 개인한테 전세가보다 더 싸게 팔리니 불안해하고 있지만 세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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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임대주택 사업자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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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 등록말소된 임대주택.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홍 씨는 나머지 350가구 월세 물건도 차차 정리하고 다른 사업을 할 생각이다. 한 채당 연간 임대료 수익이 400만원 선인데 종부세가 700만원에 달해서다. 홍 씨는 “정부의 무차별 규제로 임차인이 가장 선호하는 형태인 전세가 소멸해 결국 서민의 주거 비용이 올라가게 될 것”며 “임대주택 중에서도 월 일정 수익을 보고 투자하는 ‘채권형 주택’과 집을 팔아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주식형 주택’을 구분해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상적으로 임대사업을 해온 다주택 법인의 경우 피해 구제책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투기세력을 척결하겠다는 단 하나의 명분으로 무리하게 세법 개정을 한 결과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장려했던 사회적 임대주택 법인조차 위험에 빠뜨린 단견을 반성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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