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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개인적 친분’ 있어 도와줬다는데, 그 대상은 왜 하필 국회의원인가 [“존경하는 재판장님” 사법농단, 법정의 기록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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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과 법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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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법원 도입 추진하던 양승태 대법원, 국회의원 관련 재판 검토해줘
검 “입법에 도움받으려는 목적”…임종헌 “대국회 업무의 하나였을 뿐”
의원 지인 아들 ‘벌금형 선처 청탁’ 의혹엔 “단순한 절차적 배려에 불과”

사법농단 사건에는 국회의원이 여러 군데 등장한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사실 중엔 법원행정처 심의관 등에게 국회의원 관련 재판에 대해 검토시키고, 그 재판에 개입한 혐의가 있다. 거론되는 국회의원은 총 6명이다. 홍일표·유동수·서영교·이군현·노철래·전병헌 의원으로 이 중 유동수·서영교 의원은 현직이다. 3명은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3명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다.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임 전 차장 재판에서 서류증거 조사를 통해 이 부분 심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회의원은 법원 예산을 편성하고, 법원 조직이나 재판과 관련된 법률을 만드는 권한을 갖고 있다. 특히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하던 ‘양승태 대법원’이 국회와 척을 질 수는 없었다. 반대로 선거법을 어겨 재판에 넘겨진 국회의원들의 사건은 법원이 심리한다. 의원직이 유지되느냐, 상실되느냐가 판사 결정에 달려 있다. 국회의원은 입법으로 법원을 돕고, 법원은 재판으로 국회의원을 도우려고 했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임 전 차장은 국회의원들 재판에 관여한 이유로 ‘개인적인 친분’을 내세우고 있다. 친분관계가 있어서 선의로 검토했을 뿐, 재판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등의 개입은 없었다는 것이다. 또 대국회 대응은 법원행정처의 중요한 업무여서 국회의원들의 요청이나 민원에 관심 갖는 것은 당연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국회의원과 법원의 친분관계, 그들의 업무관계는 바깥으로 알려지지 않은 채 서로에게만 좋은 쪽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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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 유동수 민주당 의원, 홍일표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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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안과 무관, 친분으로 도왔을 뿐”

문제가 된 사건들은 대체로 국회의원이 법원행정처 쪽에 ‘한 번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시작됐다. 홍일표 전 의원도 마찬가지였다. 2015년과 2016년 부탁을 받은 임 전 차장은 홍 전 의원이 피고였던 사해행위 취소소송과, 홍 전 의원이 피의자였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 대해 검토를 지시했다.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 심의관 이국현 판사와 양형위원회 양형지원단장이던 구민경 판사가 검토 문건을 작성했다.

사해행위 취소소송 관련 문건에는 사건 쟁점과 전망이 기재돼 있다.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문건에는 유죄가 선고될 경우 예상 형량 분석과 함께, 홍 전 의원의 방어 방법으로 ‘입금된 자금의 흐름을 명백히 하고 기부자의 2차 진술을 탄핵함’과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유동수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016년 11월 1심에서 벌금 300만원의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자, 임 전 차장은 이번에는 양형이 적정한지 여부를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 양형 검토 문건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사실상 압력에 의한 소극적 가담이고, 상대방의 적극적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한 것에 해당해서 추가 특별 감경인자가 있는 경우에는 감경이 가능하지만 판결문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100만원 미만의 형을 선고하기에는 부담스럽다.”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이었던 박상언 판사는 양형 검토 문건을 유 의원과 15년지기로 가족끼리 가깝게 지내는 관계인 특허법원의 권동주 전 판사에게 e메일로 보냈다. “기본적으로는 내부용입니다. 후보자가 직접 현금 교부(한) 사안이어서 쉽지 않지만, 적절히 활용하셔서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랍니다.”(e메일) 박 판사는 검찰 조사에서 권 전 판사에게 문건을 보낸 이유에 관해 “권 전 판사가 유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상담해줬을 것 같아서 참고하라고 보낸 것”이라고 진술했다. 문건은 권 전 판사를 통해 유 의원 쪽 변호사에게 전달됐다.

검찰과 임 전 차장이 일차적으로 부딪치는 쟁점은 임 전 차장이 국회의원들 재판 검토 지시를 한 목적이다. 검찰은 국회의원들을 통해 법원의 정책 추진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즉 독립이 보장돼야 할 재판을 반대급부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홍 전 의원은 다름 아닌 상고법원 법안을 대표발의한 당사자이고, 법안을 심의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여당 측 간사였다. 2015년 3월 법원행정처 문건엔 홍 전 의원에 대해 “적극적인 역할, 활동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는 표현이 나온다.

검찰은 또 홍 전 의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호소하며 다른 국회의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법정에서 공개했는데, 이 편지를 법원행정처에서 대신 써줬다면서 홍 전 의원을 상고법원 도입에 활용한 정황이라고 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이었던 유 의원은 특허청의 무효증거 제출제한 제도 추진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던 법원행정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위치였다. 법원행정처는 특허청을 질책하는 질의 내용을 유 의원에게 만들어 줬고, 유 의원은 실제 국회 업무보고에서 특허청에 그 내용을 질의했다고 검찰은 지적했다. 법원행정처 문건엔 유 의원에 대해 ‘송영길과도 대학 동기로 절친’이라는 문구가 있고, 권 전 판사는 특허청 대응과 유 의원 협조를 임 전 차장에게 직접 e메일로 보고했다.

임 전 차장은 상고법원 도입 등 현안과 국회의원 재판 검토 지시는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피고인(임종헌)이 홍일표의 양형 등을 검토한 것은 피고인과 홍일표의 개인적 친분관계, 법원행정처의 대외 업무에서 국회의원 업무가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이지 재판을 사법부 조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 게 아닙니다.”(임 전 차장의 변호인 조남대 변호사)

임 전 차장 측은 홍 전 의원이 판사 출신이고 법원에 호의적이라 친분이 있었고, 자신이 대국회 업무를 담당하면서 재판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검토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상고법원 법안 발의는 홍 전 의원이 소신에 따라 자발적으로 했으며 재판 편의를 봐준 대가가 아니라고 했다. 유 의원 문건 작성 당시에는 특허청의 무효증거 제출제한 제도 추진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고, 유 의원을 면담할 때 사건 언급을 하다가 실수하지 않도록 단순히 참고할 자료로 작성했다고 했다. 또 재판 당사자인 국회의원 본인과의 대화 외에도, 다른 의원이 동료의 재판 상황을 물어오거나 당에서 소속 국회의원의 판결이 선고된 후 항의·반발을 하는 경우가 있어 대비용으로 국회의원 재판에 대해서는 법원행정처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건 내용을 놓고도 검찰과 임 전 차장 측은 입장이 다르다. 검찰은 소송의 일방당사자를 위해 이 같은 검토를 한 것 자체로도 사법행정의 정당한 범위를 넘어섰다고 봤다. 반면 임 전 차장 측은 문건의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 변호인은 “이 정도는 실무 경험이 있는 법조인이라면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며 “일반적인 쟁점을 기재한 것”이라고 했다. 또 중립적이거나, 오히려 국회의원에게 불리한 내용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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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위로 먹구름이 끼어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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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금형 선처’ 법원에 민원 한 국회의원

임 전 차장이 구체적으로 재판에 개입한 혐의는 어떨까.

“서영교 의원이 직접 이야기한 내용입니다. (…) 피고인이 강제추행의 의사가 없었으니 공연음란의 죄만 물어서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입니다.” 2015년 5월 국회 파견근무를 하던 김명수 판사가 임 전 차장에게 e메일을 보냈다. 서 의원 지인 아들의 강제추행 미수 사건 1심 판결이 선고되기 4일 전이었다. 서 의원은 당시 법사위 소속이었다.

임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 기획총괄심의관이던 이정민 판사에게 e메일을 전달했고, 이 판사는 담당 재판부에 연락했다. 임 전 차장은 자신은 1심 재판부에 벌금형 선처를 청탁한 적이 없고, 다만 변론을 재개해 변소 기회를 더 주는 절차적 배려 방법을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사건의 피고인 측은 실제로 변론 재개 신청서를 재판부에 냈다.

“벌금형 선처를 구하는 양형 청탁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단순한 절차적 배려에 불과한 변론 재개 후 변소를 좀 잘 들어달라고 말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그러한 아이디어를 (제가) 내고 국회 파견 판사를 통해서 서 의원실 보좌관에게 요청해 피고인으로 하여금 변론 재개 신청서 등을 낸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 (해당 사건의) 담당 판사는 이정민으로부터 두 차례 전화 연락을 받았는데, 변론 재개에 관한 말은 들었지만 벌금형 선처에 대한 내용은 전혀 듣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임 전 차장)

검찰은 이와 별도로 임 전 차장이 문용선 당시 서울북부지법 원장에게도 연락해 변론 재개 등을 요구했다고 파악했다.

2심 판결 선고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 시진국 전 판사가 작성한 ‘서영교 의원 민원 사건 개요’ 문건에도 서 의원 민원이 등장한다. 문건에는 ‘피고인의 경제적 사정이 어려우니 1심의 벌금형 감액이나 성폭력 이수명령 시간을 줄여주기를 원한다’는 내용과 함께 참고사항으로 ‘1심 단계에서도 서 의원이 차장님에게 부탁해 벌금형 선처를 받았다고 함. 서 의원실 보좌관 의견’이라고 적혀 있다. 임 전 차장 측 변호인은 “보좌관의 단순 추측”이라며 1심 때 담당 재판부에 벌금형 선처를 지시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2019년 7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던 시 전 판사는 이 문건에 대해 “임 전 차장도 ‘(서 의원이) 뭐 이런 것을 부탁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 섞인 취지로 알아보라고 했다”며 “저도 문건을 작성하며 ‘뭐 이런 것까지 하나’ 했는데 어쨌든 지시가 와서 최대한 간단히 요지만 적었다”고 했다. 시 전 판사는 “일방적인 서 의원의 청탁 내용이지 그것이 재판부에 전달되거나, 그 내용이 반영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서 의원 민원 처리도 개인적인 친분관계 때문일까. 임 전 차장은 법정에서 ‘홍일표 의원도, 서영교 의원도 친분관계를 앞세운다고 재판부에서 오해할 수 있다’며 부연했다. “서 의원은 상당히 친서민적 정치행보를 구사하는 분이고, 본인 스스로 자기 이름을 ‘서민의 영원한 다리가 되겠다’는 의미로 풀이하듯이 정치적 성향보다는 인간적인 면모 때문에 친해진 관계입니다. (서 의원이) 혹시 개인적인 만남을 하자고 제안할 때도 호텔이나 이런 고급식당에서는 절대로 안 만나고, 자기 지역구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지역구에 소재한 아주 서민적인 값싼 음식점에서 만나자고 하는 분입니다. 또 학생운동을 과거에 했음에도 불구하고 균형 감각이 있는 분이라서 친분을 가졌던 사이입니다.” 국회의원 재판 관련 혐의는 향후 증인신문을 통해 심리가 이어진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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