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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3년 뒤엔 낚싯배로 쓰면 불법…물길 잃은 572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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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 사고방지 등 이유로 구획어업 어선 낚싯배 제외 시행령 개정

뒤늦게 안 어민들 반발 “공청회·협의 없이 일방적 개정…생계 막막”


한겨레

해양수산부가 낚시 관리 및 육성법 시행령을 개정해 낚시업을 못 할 처지에 놓인 구획어업 어민들이 지난달 25일 보령 오천항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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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어족자원 보호와 사고 방지 등을 위해 관리선을 낚싯배에서 제외하도록 시행령을 개정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관련 어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관리선 어민들과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생존권이 위협받는다며 시행령 재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충남 오천항·대천항 관리선 낚싯배 어민들이 꾸린 ‘생존권 사수 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5일 긴급회의를 열어 “보령 선적 낚시어선 366척 중 절반인 186척이 관리선(구획어업 어선)이고, 이 가운데 87척은 귀어인이 연리 2%에 5년 거치 10년 균등분할 상환 조건의 정책자금을 대출받아 마련한 것”이라며 “정부가 관리선의 낚싯배 진입을 막은 개정 시행령을 재개정하지 않으면 어민들은 수백억원대의 빚을 떠안고 파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된 시행령 조항은 ‘낚시 관리 및 육성법’(낚시관리법) 시행령의 낚싯배의 요건(제16조 1항)이다. 정부는 2019년 2월 이 조항을 ‘어업허가를 받은 어선(허가선)이거나 관리선으로 총톤수 10톤 미만의 동력 어선’에서 ‘어업허가를 받은 어선으로서 총톤수 10톤 미만의 동력 어선’으로 바꿨다. 관리선은 낚싯배에서 제외한 것인데, 다만 기존 낚시업 신고를 한 관리선은 5년 동안(2024년 2월7일까지) 적용을 유예했다.

지난해 연말 현재 바다를 끼고 있는 전국 11개 광역자치단체에 신고된 낚싯배(허가선·관리선) 4536척 가운데 관리선은 572척이다. 관리선은 주목망 등 고정식 어구를 이용해 조업하는 구획어업 관리선과 양식장 관리선으로 나뉜다.

관리선이 286척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충남에서 주민들이 시행령이 개정된 지 2년여 만에 대책위를 꾸린 이유는, 지난해 말 보령시가 보낸 시행령 주요 내용 문건을 통해 관리선이 낚싯배에서 제외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는 시행령 개정을 앞두고 2018년 7월 지방자치단체 등에 의견 수렴 공문을 보내며 ‘낚시어선의 안전관리 강화를 위해 개정이 필요하다. 관리선은 허가 정수가 없어 낚시어선업 진입이 우려돼 낚시어선업 신고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는데, 여기서 ‘관리선’을 ‘양식장 관리선’으로 알았다는 게 어민들의 항변이다. 이들은 “구획어업은 수산업법 시행령·규칙 등에서 어구의 종류와 전국 시·도별로 모두 4570건의 허가 건수를 명시하고 있다. 충남은 583건(고정망 기준)이 허가돼 있다. 따라서 구획어업 관리선은 허가 정수가 있다”고 주장한다.

김희중 대책위원장은 “해양수산부는 법령을 개정하면 관리선 어민의 직접 피해가 있을 것이 예상되는데도 관리선 어민과 공청회나 협의를 하지 않았다. 내용을 알았다면 우리를 죽이는 개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겠느냐”며 “본래 허가 난 구획어업을 하면 될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귀어인은 조업이 가능한 어민이 아니고, 낚싯배로 전환하기 전 지정돼 있던 구획어장은 물고기가 들지 않아 황폐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낚싯배를 못 하면 귀어인의 절반이 파산할 것”이라고 호소했다.

충남도와 보령시는 최근 해양수산부에 시행령 재개정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해양수산부는 ‘불허’ 방침에 변함이 없다고 회신했다. 해양수산부 수산자원과는 “구획어업 허가는 어구(그물)에 있는 것이므로 구획어업 관리선(배)에 허가 정수가 있다는 어민 주장은 잘못이다. 따라서 허가 정수가 없는 관리선을 낚시어선에서 제외한다는 개정안 주요 내용 역시 해석을 달리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전북 군산의 양식장 관리선 낚싯배 어민들은 시행령 개정에 반발해 2019년 5월 헌법소원을 냈다. 김순 군산낚시어선협회 회장은 “군산시가 양식장 1㏊당 관리선 1척을 둘 수 있다고 조례를 제정했고, 관리선은 낚싯배를 할 수 있다고 해 양식장 관리선 84척이 낚싯배를 해왔다”며 “개정 시행령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평등권,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침해해 헌법소원을 냈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구획어선이 관리선인지 △허가 정수가 있는지 △법령 개정 결과가 개정 이유에 부합하는지 △개정으로 발생하는 피해 대응이 적절한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는 태도다.

충남도로부터 법률 해석을 의뢰받은 장언석, 김바올 변호사는 “정수로 관리되는 연안어업이고 어구(어선)에 허가 처분되므로 낚싯배 신고가 가능하다”고 해석했다. 태안기름유출사고 피해대책위원회 법률고문을 지낸 여운철 변호사는 “충남지역 관리선 어민들이 개정 시행령에 반발하지 않은 것은 정부의 개정안 의견 수렴 과정이 미흡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들이 권리를 회복하려면 법제처와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내어 시행령 수정을 요구하고 헌법소원을 내는 등 법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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