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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백신 맞았다고 쉰다? 다른 나라 얘기죠" 백신휴가도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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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코로나19 백신 휴가제 도입 권고

삼성·LG 등 대기업 위주 도입 이뤄져

중소기업, 5인 미만 사업체 차질

"휴가는 커녕 백신 맞을 시간도 없어" 현장선 분통

전문가 "재정 지원 통해 중소기업 백신 휴가 안착 도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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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기업에 '백신 휴가' 도입을 권고했지만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중소 기업 및 영세 업체는 차질을 빚고 있어, 백신 휴가의 양극화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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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경기도 김포 한 포장기계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는 김모(25) 씨는 코로나19 백신 휴가에 대해 "사측에서 보장해 줄 것 같지 않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 씨가 일하는 곳은 고용 인원이 채 50명을 넘지 않는 중소 기업으로, 직원들은 단순 기계 조립뿐 아니라 설치 작업·시운전·유지보수도 겸하기 때문에 초과 근무와 출장이 필수적이다. 김 씨는 "직원 중 한 명이라도 공백이 생기면 업무가 다 뒤엉킬 정도로 빡빡한 스케줄"이라며 "설령 백신 휴가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주변에 눈치 보이고 미안해서 제대로 못 쓸 것 같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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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관계 없음.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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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수월한 백신 접종을 위해 기업에 '백신 휴가' 도입을 권고했지만, 일부 기업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기업, 중견기업에서는 빠르게 백신 휴가가 도입되는 반면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중소 기업 및 영세 업체는 차질을 빚고 있어, 백신 휴가의 양극화 현상이 우려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 4월1일부터 백신 휴가를 도입한 바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고용노동부, 인사혁신처 등 유관부처와 협의를 거쳐 마련한 '백신 휴가 활성화 방안'을 보면, 백신의 이상반응이 대개 접종 후 10시간 이내 시작되는 점을 고려해 접종 다음날 의사소견서 없이 1~2일의 유급휴가·병가 등을 부여하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정부 기관이 아닌 일반 사기업의 경우 백신 휴가 사용은 '권고사항'이다. 정부가 사기업의 백신 휴가 도입을 강제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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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동작구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가 설치된 사당종합체육관에서 시민들이 접종실로 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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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대기업들은 이미 대부분 백신 휴가를 도입한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가장 먼저 접종 직원을 대상으로 유급 휴가제를 도입했으며, LG그룹, SK하이닉스 등이 뒤따랐다. 코로나19로 업황에 큰 타격을 입은 롯데그룹·현대백화점그룹·신세계그룹 또한 최근 유급 백신 휴가 도입을 결정했다.


모든 기업이 백신 휴가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구직 사이트 '사람인'이 기업 903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기업 중 51.1%가 '백신 휴가를 부여하거나 부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체 기업 가운데 약 절반만이 백신 휴가 부여를 계획하고 있는 셈이다.


백신 휴가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응답한 기업들(48.9%)은 그 이유로 '인력 부족 우려'(41.2%)를 가장 많이 들었다.


특히 중소 기업과 5인 미만 영세 사업장 등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업체들의 경우 백신 휴가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대기업과 중소 기업 사이 백신 휴가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경기도 한 중소 디자인 업체에서 근무하는 A(30) 씨는 "우리는 매달 일감을 수주해서 마감 기한을 정해 놓고 작업을 하는데, 항상 시간이 부족해서 과로에 시달린다"라며 "평상시에도 휴가는 커녕 정시퇴근도 힘든 상황이었는데 이 와중에 백신 휴가를 쓰는 게 가능하겠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음식점에서 근무하는 B(32) 씨는 "사실상 2교대 근무에 가까운 요식업계에서 백신 휴가는 다른 나라 얘기에 가까울 것"이라며 "백신 휴가가 문제가 아니라, 백신을 맞으러 갈 시간 자체가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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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 관찰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시민들. / 사진=연합뉴스


사기업 내 백신 휴가가 보편화되지 않으면 백신 예방접종 계획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백신 부작용을 우려한 직장인들이 접종 예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으로 불편함을 겪은 사람이 많다는 사실도 백신 휴가가 필요한 이유다. 앞서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2월26일 이후 백신을 접종 받은 1만8000명 중 32%가 불편감을 호소했고, 이 중 2.7%는 의료기관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신을 맞은 10명 중 3명은 백신 이상반응을 느꼈다는 뜻이다.


근육통·발열·현기증 등 신체 기능에 영향을 주는 이상증세가 있는 상태로 무리하게 일을 하면, 더 큰 증세로 악화하거나 안전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전문가는 중소기업이 원활하게 백신 휴가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정 운영에 있어 정부의 우선순위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것이고, 따라서 지금은 백신 접종을 최대한 빨리 완료해 코로나19를 종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며 "그걸 위해서는 백신 휴가제가 중소기업과 영세 업체까지 도입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점에서 정부는 재정 지원을 통해 중소기업이 휴가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며 "현재 코로나 손실보상제 등으로 쓰이는 재정을 이쪽(백신 휴가제 지원)에 돌려 집중하는 것이 더 맞는 우선순위라고 본다"고 조언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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