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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얀센 백신 재고떨이 해프닝… 광우병 사태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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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최고의 순방이었고, 최고의 회담이었습니다.” 지난 5월 23일 귀국길의 문재인 대통령은 3박 5일의 한미 정상회담 일정을 이렇게 총평했다. 한미 동맹 재확인, 안보·경제·백신 파트너십 강화 등 트럼프 행정부 이전의 정상적인 양국 관계가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준 계기였다.

특히 회담의 하이라이트는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군 55만 장병에게 접종할 얀센 백신을 공여하겠다고 발표한 순간이었다. 오래지 않아 공여 백신 물량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얀센 백신을 실은 우리 공군의 공중급유수송기 KC-330이 한밤중에 공항에 도착해 백신이 하역되는 장면은 자못 감격스러웠다.

그런데 일선 병원들에 백신이 배송되면서 이상한 얘기가 돌았다. 백신 유효 기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같은 시점에 미국이 보유한 얀센 백신 수백만 회분의 유효 기간이 6월 23일에 끝나며,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한국에 보낸 101만 회분도 대부분 이에 해당한다는 외신이 전해졌다.

불편한 진실처럼 얀센 백신 재고떨이 논란이 퍼져 나갔다. 필자 역시 불편함을 느낀 이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곧바로 전문가들이 나섰다. “백신은 시간이 흐르면 일정 부분 약효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나 그 마지노선이 유효 기간까지이므로 전혀 문제없다.” 때맞추어 6월 10일 미 식품의약국(FDA)은 얀센 백신 유효 기간을 1.5개월 연장했다.

이상이 얀센 백신 도입을 둘러싸고 지금까지 나름 긴박하게 전개되었던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백신이 예정대로 들어왔고 큰 탈 없이 접종이 진행되었기에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가는 일이다. 하지만 그 안에 몇 가지 중요하게 짚고 넘어갈 점들이 있다.

첫째, 얀센 백신 공여는 재고떨이였나? 안 팔리고 남은 물건을 치운다는 의미에서 금번 얀센 백신 공여는 재고떨이가 맞는다. 이를 두고 공여된 백신에 의학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답변은 오히려 어이없는 동문서답이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국민의 선호도가 높아서 물량이 부족한 백신을 타국에 공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국민이 선호하지 않는, 그래서 물량이 남아도는 백신을 타국에 공여하는 게 당연하다. 남아도는 백신이건 유효 기간이 임박한 백신이건, 우리가 필요해서 받은 것이고 고마운 일이었다.

조선일보

30세 이상 예비군·민방위 등에 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얀센 백신 접종이 시작된 10일 오전 유성구 코젤병원에서 시민들이 백신 접종을 받고 있다./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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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굴욕 외교였나? 이번 일을 한미 동맹의 공고함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대단한 외교 성과인 양 포장하는 일은 가당치 않다. 한미 동맹이 고작 유효 기간이 다 된 백신을 주고받으며 생색을 내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굴욕 외교로 보는 것도 온당치 않다. 정상회담에서 많은 것을 얻어낸 미국 정부가 이 건으로 체면치레를 하려 했다손 치자. 그 면전에서 문제를 지적하며 트집을 잡는 일이야말로 하수 외교다.

오히려 한미 정부 양측,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암묵적 교감 속에 금번 백신 공여 건을 과학과 서사가 결합된 외교 이벤트로 승화시켰다. 얀센 백신의 경우 여성을 중심으로 희소 혈전증 부작용이 보고되었다. 미국 측은 한미 동맹의 상징으로 우리 군 장병에게 이 백신을 공여하겠다고 했고, 우리는 그 뜻을 살려 30세 이상 예비군, 민방위 대원, 군 관련 종사자 등에게 이를 접종키로 했다. 결국 부작용 위험이 가장 낮은 중·장년 남성층을 접종 대상자로 선정한 셈이다. 그 대상자들은 처음으로 군대 다녀온 덕 본다는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이 내막을 몰랐을 리 없다.

더 나아가 백신을 받으면서 우리는 역으로 국가적 역량을 과시했다. 미국 내에서 유효 기간이 임박한 백신을 필요한 나라에 보내라는 여론이 일었지만, 상대 국가들이 신속하게 운송·배송·접종을 마칠 능력이 없어 실행 못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크고 작은 혼선에도 불구하고 예약, 백신 공수 및 의료 현장 배송, 접종의 전 과정을 신속하게 수행해 공여자를 탄복시켰다. 높은 국민 의식과 우수한 의료 시스템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이번 얀센 백신 재고떨이 논란을 겪으며 자연스레 2008년 광우병 사태를 떠올리게 된다. 그해 4월 한미 정상회담 직후 온 나라가 광우병 괴담과 굴욕적 쇠고기 협상 논란에 휘말렸다. 공포와 분노 속에 유치원생들과 유모차 주부들까지 시위에 나서면서 국정이 마비되고 국가 이미지는 추락했다. 2021년 6월 백신 괴담과 굴욕 외교 논란이 재연되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과학적 지식으로 하나 되어 백신 접종에 나섰다. 우방과 멋진 외교적 서사를 만들면서 국격과 실리를 동시에 챙겼다. 한국 사회가 이렇듯 성숙했다.

[윤석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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