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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女중사 죽음의 방관자들… 8명중 1명이라도 책임 다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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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조선일보

서욱 국방부 장관이 6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 모 중사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정상화 공군참모차장, 서욱 장관, 남영신 육군참모총장, 부석종 해군참모총장. /이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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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의 지휘 라인 책임자는 6명이다. 대대장·단장(각 2명), 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이들은 여군 이모 중사가 지난 3월 2일 성추행을 당한 뒤 5월 21일 극단 선택을 하기까지 어떠한 실효적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책임자는 2명 더 있다. 공군 양성평등센터장은 3월 5일 이 중사 성추행 사실을 알았음에도 국방부 훈령·지침을 어기고 4월 6일에야 국방부에 보고했다. 국선변호를 맡았던 공군 법무관은 3월 9일 선임 이후 한 번도 이 중사를 면담하지 않았다.

사건을 취재하면서 8명 중 단 1명만이라도 맡은 책임을 다했더라면 이 중사는 죽지 않았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누구도 이 중사 죽음에 진심으로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관련자가 많아 책임감이 분산된 탓이다. 심리학에선 이런 현상을 방관자 효과, 제노비스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28세 여성 키티 제노비스는 1964년 미국 뉴욕의 자기 집 근처에서 강도에게 살해당했다. 30분 이상 사투를 벌이면서 주변 40가구에 필사적으로 구조를 요청했지만 아무도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고(추후 일부 정정) 당시 미 언론은 보도했다. ‘내가 안 해도 남이 하겠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중사도 성추행 피해를 80일 동안 22차례 알렸지만 방관 속에서 죽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병영문화 개선 기구’ 설치를 지시하자 국방부는 ‘군검찰 수사심의위’를 발족했다. 과연 제도·법령이 미흡한 탓만 있었을까. 공군엔 양성평등센터뿐 아니라 ‘인권나래센터’라는 기구도 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성추행 사건을 ‘즉각 보고’하라는 국방부 훈령·지침도 있었다. 이 중사 죽음은 제도 안에 정위치했어야 할 책임자들이 자기 임무를 방기한 탓이 훨씬 크다. 양성평등센터장은 “지침을 미숙지했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라고 했다. 공군총장 대행은 “센터가 보고 절차를 못 지켰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국선변호 법무관은 딸을 잃은 아버지 앞에서 ‘하하하’ 웃었다. 최종 책임자인 국방부 장관은 보고 지연에 대해 “저도 이해가 안 된다”며 남 일처럼 얘기했다.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 때 전사자 6명은 끝까지 자기 위치를 지켰다. 조천형·황도현 중사는 숨을 거두고도 함포 방아쇠를 놓지 않았다. 의무병 박동혁 병장은 전우들을 치료하다가 총탄 100발 이상을 맞았다. 반면 세월호 참사 때 선장은 승객을 선실에 방치한 채 속옷 바람으로 먼저 배를 탈출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경영진은 수시간 전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도 영업을 강행했다. 이번 참극에서 군 책임자들의 태도는 연평해전이 아니라 세월호·삼풍 때와 닮았다. 이 중사의 죽음을 부른 무능하고 무책임한 방관자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원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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