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68781981 0182021061568781981 09 0902001 column 7.1.3-HOTFIX 18 매일경제 0 false true false false 1623683221000

직장을 지옥으로 만드는 사람들 [매경포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철학자 사르트르는 타인이 곧 지옥이라고 했다. 직장은 우리가 하루 중 타인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니, 언제든지 지옥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지난달 극단적 선택으로 이승을 떠난 두 사람에게 직장은 분명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중 한 사람은 성추행에 고통받은 공군 중사이며, 다른 한 사람은 업무상 고통을 메모로 남긴 네이버 직원이다.

시인 마야 안젤루의 말이 기억난다. "내가 깨닫기로, 사람들은 당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잊을 것이고 당신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도 잊을 것이나, 당신이 안겨준 느낌만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분명히 그렇다. 남들은 가해의 말과 행동을 잊으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 고통의 느낌은 영원히 남는다. 그 공군 중사는 자신의 영혼에 각인된 수치심과 모욕감, 무력감의 고통을 절대 잊지 못했을 것이다. 그 상처들은 그가 당한 수모의 순간을 수시로 기억나게 했을 것이다. 자기 존재를 지우지 않고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거였다. 고통은 망각이 아니라 치유의 대상이다.

기회는 있었다. 그의 직장인 공군이 인간으로서 그의 존엄을 회복하도록 도울 수 있었다. 그가 때때로 그 고통에 가위눌리겠지만, 그에게 가해진 잔인한 행동과 말을 기억 밖으로 조금씩 지워내며 삶을 살아갈 힘을 내도록 도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직장은 그 기회를 뭉개버렸다. 그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인간으로서 그의 존엄을 무시한 것이다. 지휘 계통에 있던 자들이 걱정한 건 피해자의 고통이 아니라 자신들이 져야 할 지휘·관리 책임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까지 든다. 방조와 묵인 은폐의 흔적들이 그 증거다.

인간은 조직에서 홀로 됐다고 느낄 때 영혼이 상한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가 자책하게 된다. 세상이 무력한 자신을 비웃는 것 같다. 그 외로움과 자책은 존재의 작은 불빛마저 꺼뜨린다. 그러므로 직장을 지옥으로 만든 건 가해자만이 아니다. 그 가해를 방치하고 피해자를 홀로 내버려 둔 자들은 지옥을 만든 공범이다.

국내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이라는 네이버는 또 어떤가. 네이버 노동조합이 지난달 25일 발표한 성명이 사실이라면 네이버 경영자들 역시 지옥을 만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노조는 "고인은 지나친 업무 지시로 인해 야간·휴일·휴가 가릴 것 없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렸으며, 상급자의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업무 지시와 모욕적인 언행, 해결할 수 없는 무리한 업무 지시로 고통받았다"고 했다. 특히 노조는 "2년 가까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고인과 동료들이 다양한 행동을 취했음에도 문제를 묵살한 회사의 방조와 묵인 역시 고인의 비극적 선택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회사의 방조는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는 직원의 마지막 희망을 짓밟는다. 직장 내 악행 연구에 10년 이상을 바친 크리스틴 포래스 맥도너 경영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아버지를 그 예로 든다. 그의 아버지는 2명의 악독한 상사 밑에서 10년을 버텼다. 결국 사장에게 상사의 비행을 고발했으나 그 상사는 오히려 승진했다. 포래스의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그의 회사가 그의 마지막 희망을 죽임으로써 그를 쓰러지게 한 것이다. 노조에 따르면 네이버 역시 고인에게 고통을 안겼다는 주장이 나오는 상사를 승진시켰다고 한다. 네이버 이해진 창업자와 한성숙 대표는 회사의 방조와 묵인을 묻는 노조의 지적에 답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사측은 "조사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지난 목요일 분당 네이버 사옥 1층에 노조가 고인을 위해 마련한 추모 공간을 찾아갔다. 근조 리본을 옷핀에 꽂아 추모벽에 걸었다. 나 역시 관리자의 시간이 있었다. 심한 말도 했다. 추모 벽 앞에 서니 후회와 자책이 밀려온다. 적어도 지옥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김인수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