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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깜짝 세대교체 뒤엔…4연속 선거참패 ‘폐허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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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현상’ 탈바꿈하는 보수 ②

박근혜 탄핵뒤 계파 힘잃어

2030 향한 혁신 목소리 반향


한겨레

14일 오후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이준석 신임 당대표(아래 왼쪽)가 의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들어서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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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9년 11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청년 정책·비전 발표 간담회를 ‘화요일 오후 2시’에 열어 뭇매를 맞았다. 장소는 ‘힙한’ 홍대로 골랐지만 그 시각, 그 장소에서 청년들을 위한 정책을 제안할 ‘진짜 청년’은 없었다. 한 참가자는 “이 시간에 간담회를 한다는 것은 정상적으로 사회생활하는 청년들은 오지 말란 이야기”라며 “부르면 오는 여의도 청년, 금수저, 혹은 백수만 청년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불과 1년 반이 지난 2021년 6월. 국민의힘 당원은 서른 여섯살 이준석 대표를 선택했다. 20·30대 청년층의 국민의힘 지지율도 상승세다. 청년 당원도 늘고 있다. 그야말로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다.

‘보수정당에서 먼저 터진 세대교체 신호탄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 이 대표 선출은 60대·영남권·기득권 정당으로 분류되던 국민의힘 내부의 세대교체를 넘어, 여의도 전반의 분위기를 바꿔놓고 있다. 특히 변화보다는 가진 것을 지켜내는 ‘안정감’을 중시했던 보수정당에서 먼저 ‘혁신’을 말하게 된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역설적이게도 2017년 탄핵 사태 뒤 2020년 21대 총선까지 전국 선거에서 4연속 참패한 최악의 상황이 세대교체를 이끌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탄핵 뒤 사분오열해 102석으로 쪼그라든 국민의힘에는 당의 주도권을 잡을 무게감 있는 다선도, 힘센 계파도 없었다. 지난해 6월 당 수습을 위해 꾸려진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는 지도부에 초선·청년 몫을 이례적으로 늘리며 밭을 갈아엎었다. 비대위원엔 김병민(39)·김재섭(35)·정원석(33) 원외 당협위원장을 발탁했고, 경제혁신위원장과 약자와의 동행위원장에 각각 초선 윤희숙·김미애 의원을 발탁하면서 활력을 불어넣었다. 당내에서는 “중진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볼멘소리도 나왔지만, 초선 등용의 성과는 적지 않았다. 실제로 이번 전당대회 초반 ‘새바람’을 견인한 데는 이 대표와 함께 초선으로 당권에 도전했던 김웅 의원과 김은혜 의원의 역할도 주효했다.

‘스윙보터’된 20·30대 전면에…‘이준석 대세론’ 끌어올리며 정치 효능감 높아져


보수의 세대교체가 가능했던 데는 ‘폐허의 역설’ 때문만은 아니다. 이 대표 등 보수 진영의 전략가들이 20~30대 청년들의 기득권 정치에 대한 환멸과 좌절에 재빠르게 응답하며 세력화시킨 결과다.

6·11 전당대회보다 두 달 앞선 4·7 보궐선거는 20~30대가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스윙보터’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알린 중요한 사건이었다. 부동산 자산 폭등 등 문재인 정부의 실정은 20~30대를 ‘공정’을 화두로 내세운 ‘정치 고관여층’으로 빠르게 변모시켰다. 이준석 대표는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선거운동을 하면서 길거리의 청년들을 선거차량에 불러올려 마이크를 쥐여줬다. 미리 짜놓은 각본이 아닌 ‘자유발언’을 통해 청년들은 문재인 정부 성토에 목소리를 높였다.

재보궐 선거 뒤 온라인상에는 보수 정치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밈(meme)도 확대됐다. 이 대표는 지하철과 따릉이를 타고 다니며,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하고,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동네형’으로 인식되면서 팬덤을 키워갔다. 보수 정당에 모처럼 불어온 ‘젊은 바람’을 이 대표는 놓치지 않았다. 그는 ‘공정한 경쟁’ ‘능력에 따른 인정과 대우’를 주장하며 청년들의 표심을 파고 들었다. ‘안티 페미니즘’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청년 유권자들을 성별에 따라 가르는 전략을 구사해 20대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를 기반으로 대세론에 날개를 달았다.

이 대표가 사흘 만에 1억5000만원 한도인 당 대표 경선 후보 후원금을 모두 채운 것도 엠제트(MZ)세대의 지지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청년들은 이 대표가 당선된 뒤엔 온라인상에 국민의힘 입당신청서를 인증하는 글을 올리며 ‘이준석 대세론’을 받치고 있다. 이런 여론이 미디어를 통해 증폭되면서 당원을 움직였다. 20·30대 젊은 층이 온라인에서 시작된 바람을 토대로, 여론과 언론은 물론 보수정당 ‘당심’까지 움직일 수 있다는 정치적 효능감을 얻은 것은 향후 정치 판도의 대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반짝 ‘셀럽’ 아닌 시스템 구축하려면…


“우리나라는 정당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노쇠한 이미지를 상쇄시키기 위해 행사 사진에 등장할 청년들 머릿수를 채울 수 있도록 동원하는 시스템만 딱 갖추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원정당’의 디엔에이(DNA)가 젊은 세대 충원에까지 파고들었고, 동원에 충실한 기존 인재상이 그대로 복제돼 버린 셈이다. 혹여 능력 있는 젊은 인재가 들어와서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그것이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닌지 전전긍긍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2017년 바른정당 때부터 청년정치학교를 운영해온 3선 출신 김세연 전 의원은 지난 2월 펴낸 책 <리셋 대한민국>에서 우리나라 청년 정치를 위한 해법을 이렇게 진단했다. 그러면서 “타성과 구태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접근방법으로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는 데 나서야 한다”며 “청년세대에서 가진 ‘보수정당은 구리다’는 인식을 깰 수 있어야 생존이 가능하다”고 짚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준석이라는 간판을 단 보수정당은 ‘산뜻’해진 걸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이 대표 체제에서 ‘세대교체’의 틀을 마련해두지 않으면 또다시 누군가 ‘정치 셀럽’ 이미지만 소비하고 회귀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 10년 보수 정당의 붕괴 속에서도 자력으로 생존했다. 새로운 시스템과 정치 문화가 안착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이준석들’의 출현은 먼 미래가 될지 모른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한겨레>에 “이 대표를 청년 정치 그룹의 대표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이 대표 당선이 세대교체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라며 “키를 잡게 된 이 대표가 다음 지방선거나 총선에서 공천 시스템을 바꾸거나, 당직 임명을 하는 과정에서 정당 내 청년 자원을 뽑아 올리는 등 당내 청년 세력화를 통해 결과를 내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세대교체’가 차기 대선의 주요 의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은 유효하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정치적 이념을 갖기보다 사안별로 시시비비를 따지고, 개인 이해관계에 따라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내놓는 20·30대 나름의 ‘정치 영역’을 이젠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이념적 접근으로는 이들의 마음을 잡기 어려울 것이다. 각 정당은 상당한 합리성을 갖추는 방향으로 세대교체 경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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