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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한-일 약식회담 거부, ‘외교 문외한’ 스가 총리에게 부메랑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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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국의 거듭된 ‘화해 메시지’ 또다시 거부

양국 관계 개선보다 국내 보수 여론 의식한 듯

국제사회에 한-일관계 악화는 ‘일본 탓’ 인상 남겨


한겨레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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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영국 콘웰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맞춰 열기로 했던 한-일 정상 간 ‘약식회담’에 응하지 않는 외교적 결례를 범한 것으로 드러나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코로나19 대응 문제 등으로 정권 지지율이 30% 초반으로 급락한 상황에서 한-일 관계 개선보다 한국에 적대적인 국내 보수 여론을 우선시한 대응으로 해석된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9월 스가 총리가 취임한 뒤 일관되게 양국 관계를 개선하자고 거듭 화해의 손을 내밀어 왔다. 지난해 11월엔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등이 스가 총리를 만나 도쿄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 한국이 협력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1절 기념사에서도 “역지사지의 자세로 머리를 맞대자”며 “한국은 도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협력할 것”이라며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약식회담을 통해서도 7월 말에 열리는 도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하면서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으려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임 아베 신조 총리가 2018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만큼, 그에 대한 답방 차원에서 도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고 이를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등 한-일 간 현안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뚫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스가 총리는 회담 직후 일본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한국이 전 징용공 문제와 관련해 해결책을 제시할 것을 다시 한 번 요구한다”는 차가운 반응을 보이는 데 그쳤다. 취임 직후 유지해 온 “일한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는 계기를 한국이 만들어 달라”는 강경한 입장이 한 치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

이를 두고 일본에선 스가 총리가 그동안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한국 정부의 선 조처를 요구해 온 만큼 한국이 일본에 납득할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회담에 나서기는 힘들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실제 일본 언론들은 이번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일 정상회담 또는 한-일 정상회담을 열지를 두고 “정부가 조정하고 있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중요한 외교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관련 정보를 언론에 슬쩍 흘린 뒤 여론 동향을 살폈던 셈이다. 이후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회담 일정이 시작되기 직전인 11일 기자회견에서 한-미 정상의 접촉이 이뤄질 것이냐는 질문에 이번 회담은 “비어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나라와 양자 회담을 할지는 이후 조정해야 한다. 현시점에선 정해진 게 없다”는 애매한 반응을 보였었다. 결국, 일본의 최종 판단은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약식회담에 응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사실에 반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이날 오후 정례 기자회견에서 “일방적인 정보 발신이므로 유감이다. 바로 한국에 항의했다. 이번 G7 정상회의는 스케쥴 상황에 의해 일-한 정상회담을 실시하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회담이 불발된 것이 ‘고의’가 아닌 ‘시간 부족’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조금의 의전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정상 외교’에서 약속된 회담이 쌍방 모두의 양해 없이 취소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게다가 스가 총리는 13일 일본 기자들과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이 전날 두 차례나 자신에게 다가왔다는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시간이 없으니 10분이든 30분이든 상황에 맞게 하자”고 실무선에서 합의가 됐었다고 거듭 밝혔다.

그 때문에 아시아에선 일본 홀로 참석해 온 G7 정상회의라는 국제 무대에서 스가 총리가 문 대통령과 얼굴을 마주하지 싶지 않았을 것이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3일 일본이 ”한국 등을 초청국으로 부르는 것은 상관없지만, G7의 틀을 확대하는 데는 반대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G7에 한국 등을 넣어 확대하고 싶다는 계획을 밝히자 한국은 G7 국가들과 “대중, 대북관이 다르다”며 강하게 반대했었다.

하지만, 이번 외교적 결례는 스가 총리에게 부메랑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7년 8개월에 걸친 장기 정권을 유지하며 미-일 동맹 강화 등 여러 성과를 남긴 아베 전 총리와 달리 스가 총리는 일본 내에서도 ‘외교 문외한’이라 알려져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 조처와 한국의 한-일 군사비밀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으로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던 2019년 11월 아세안+3 정상회의가 열리던 타이 방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 후 소파로 이끌자 11분 정도 자연스레 환담에 응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스가 총리는 처음 임하는 본격적 다자외교 무대에서 미국 등 G7 정상들에게 한-일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것은 ‘일본 탓’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말았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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