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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공공주도 재개발 후보지에 여전한 ‘신축 허가’… “법 공백에 막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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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주도 재개발 사업 후보지로 선정한 지역에서 여전히 신축허가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축건물에 입주한 사람들은 분양권을 얻을 수 없는데도 허가가 나고 있어 만약 이 지역이 실제로 개발될 경우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민들은 후보지로 지정된 시점부터 자치구가 신축행위를 제한해야한다고 요구하지만, 자치구에서는 법 공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14일 조선비즈가 건축행정시스템(세움터) 건축물신고현황을 분석한 결과, 후보지 발표일인 3월 31일부터 지난 6월 3일까지 은평구·도봉구·영등포구·금천구의 1차 후보지 21곳에 신축허가가 난 사례는 총 11건으로 집계됐다. 자치구별로 보면 ▲은평구 7건 ▲도봉구 1건 ▲영등포구 3건 ▲금천구 0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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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 불광동의 한 건축현장. 기사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음/최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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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동안 허가신고된 건수(10건)과 비슷한 수준이다. 작년의 경우 ▲은평구 5건 ▲도봉구 2건 ▲영등포구 3건 ▲금천구 0건 등이었다. 3월 이후 후보지로 지정된 곳이 있는데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신축허가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후보지 3곳(불광근린공원 인근, 불광 329-32지역, 연신내 역세권)이 몰려있는 불광동은 신고건수가 작년 2건에서 올해 6건으로 늘어 가장 크게 증가했다. 이 중 불광근린공원 인근은 주민 동의율 67%를 넘어 본지구 지정요건을 갖췄다. 연신내 역세권은 63%, 불광 329-32 지역은 40% 이상의 주민이 동의하는 등 나머지 지역에서도 요건 충족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아직 동의율 10%만 넘기면 되는 예정지구 지정도 되지 않은 상태다. 관련 법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보지로 지정된 지역에 새로 들어서는 건물은 현금청산 대상이다. 공공주도 재개발의 경우 권리산정일이 대책발표일(2월 4일)로 정해졌기 때문에 이날 이후 건물을 짓는 경우 입주권을 받을 수 없다. 건물 소유주는 감정평가액 만큼만 보상을 받고 나가야 하며, 완성된 건물을 되팔아 시세차익을 얻으려고 해도 곧 재개발이 될 지역의 매물을 구입하는 사람이 드물어 수익을 남기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이처럼 신축허가가 늘어나는 것을 두고 주민들은 분양받은 사람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대책발표일 이후 단독주택이나 나대지를 다세대 주택으로 건축해 지분을 분할하는 경우, 이 건축물에 대해서는 분양권을 주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그런데도 이를 잘 알지 못하는 외지인이 분양권을 받을 수 있다고 기대해 부동산을 사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신축허가가 난 11곳 중 단독주택 용도로 허가가 난 2곳을 제외하면 전부 공동주택이나 오피스텔 용도다. 재개발 지역에 세입자가 들어오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빌라를 매매하려는 사람이 아닌 단순 월세수입이 필요한 임대사업자들이 이 지역에 선뜻 발을 들이기 어렵다는 것이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의 견해다.

실제로 공공재개발 후보지인 신길1구역에서는 권리산정일 이후 지어진 신축빌라를 분양받았다가 피해를 본 사례가 발생한 바 있다. 박종덕 추진위원장은 “신길1구역의 경우 국토부가 권리산정일을 작년 9월21일로 지정했는데도 신축빌라가 계속 늘어 분양사기를 당한 사람이 10명 정도 된다”며 “이분들은 분양권을 받을 수 없어 온전히 피해를 떠안게 됐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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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29일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재건축ㆍ재개발 교란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근절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한 29일 오후 서울 용산의 한 건물에서 바라본 서울 용산구 동자동 일대 재개발 추진 지역의 모습./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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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이처럼 신축건물이 늘어날 경우 재개발 절차가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입주자들 입장에서는 재개발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분양권을 받지 못하므로 아예 재개발을 무산시키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의 민간재개발을 추진하자고 할 수도 있다”며 “신길1구역에도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기존 주민들 입장에서는 이익금이 줄어든다는 우려도 있다. 신축 건물은 전체 지구의 감정 평가액을 높여 재개발이 완료된 이후 얻게 될 시세차익을 낮춘다. 여기서 권리산정일까지 늦춰진다면 조합원이 늘어나 주민 각자에게 돌아가는 이익금은 더 줄어들 수 있다. 권리산정일이 늦춰지지 않더라도 현금청산을 하게되면 총 사업비가 늘어나 이익금이 줄어든다.

정부도 이런 점을 감안해 일정 시점이 지나면 재개발 지구에 신축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문제는 허가 제한일을 예정지구 지정일로 정하고 있어, 후보지로 선정되더라도 예정지구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새로 건물을 짓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후보지가 예정지구로 지정되려면 주민 동의율 10%를 넘겨야 하고, 국토교통부에서 진행하는 사전 적격성 조사도 통과해야 한다.

은평구청 관계자는 “예정지구로 지정되지 않으면 개인의 사유재산에 대해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을 권한은 없다”며 “투기세력을 차단하기 위해서 후보지로 선정되면 신축행위를 제한해야한다고 하는 분들도 있는데, 법에 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집을 못 짓게 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건축행위를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건축법 18조에 따르면 국토부 장관이나 시도지사가 지역계획에 특히 필요한 경우 건축허가나 건축허가를 받은 건축물의 착공을 제한할 수 있다. 서울시는 이 법에 근거해 1·2차 공공재개발 후보지인 장위8구역 등 14곳에 대해 건축허가를 제한하기로 했다. 그러나 공공주도 재개발은 이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박합수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허가를 내주는 구청 입장에서는 예정지구가 지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건축행위를 제한할 수는 없다”며 “정부가 빨리 법령사항을 정비해 건축 착공 제한지역을 지정, 투자목적의 건축에 대해 인허가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최온정 기자(warmhear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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