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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차별금지법’에서 발견하는 평등한 사회를 향한 의지[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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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슬아의 날씨와 얼굴

누구나 삶의 어떤 순간에는 반드시 소수자가 된다. 어쩌면 생의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젊거나 늙거나 어리다. 우리는 여자이거나 남자이거나 또 다른 성별일 수 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없었지만 어떤 국가의 어떤 지역에서 어떤 민족으로 태어나, 어떤 피부색을 가지고 어떤 언어를 쓰며 살아간다. 국적을 든든한 울타리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신체를 가졌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장애인이며, 장애인이 아닌 누군가도 언제든 장애를 갖게 될 수 있다. 또한 언제든 다치거나 아플 수 있다. 우리는 혼자 살거나 누군가와 함께 산다. 우리는 결혼하거나 결혼하지 않는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임신과 출산을 겪는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믿는다. 종교를 가질 수 있다. 각자의 사상과 정치적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자일 수 있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정규직이고 누군가는 비정규직이며 다양한 형태로 고용된다. 누군가는 교육받을 기회가 충분했고 누군가에겐 그 기회가 없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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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어떤 사회적 신분 안에 있다. 소극적으로 따져봐도 모두가 이 정체성들 중 최소한 반 이상에 해당된다. 생애주기는 우리로 하여금 이토록 다양한 자리에 서게 한다. 따라서 아래의 23가지 항목 중 어떤 것과도 상관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학력, 고용 형태, 병력 또는 건강 상태, 사회적 신분.’

여기 나열된 것들은 우리 모두와 유관한 정체성의 목록이다. 동시에 차별의 역사를 품은 정체성의 목록이다. 위 이유로 차별받아온 사람들이 무수했다는 의미다. 이것들이 차별임을 또렷하게 호명한 뒤 부당한 차별 사례를 가려내고 시정하려는 법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다. 이 항목들로부터 완전히 예외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은 모두의 존엄과 안전에 관한 이야기다.

잘못 알려진 것과는 달리 차별금지법에는 처벌 조항이 없다. 시정을 권고하고 명령할 수 있는 조항이 있을 뿐이다. 결코 합리적인 이유 없이 모든 영역에 적용되지 않는다.



누구나 삶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소수자가 될 수 있어
평등한 사회를 향한 촘촘한
의지가 바로 차별금지법안
귀찮음을 털고 청원 동참을



작년 6월 발의된 법안을 살펴보면 차별금지법이 적용될 명확한 영역이 제시되어있다. 그 네 가지 영역은 다음과 같다. 고용, 교육 및 직업 훈련, 재화 및 용역, 그리고 행정 서비스.

네 가지 모두 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꼭 거치게 되는 과정이다. 이렇게 필수불가결한 영역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포괄적인 차별을 금지하자는 것이 법안의 내용이다. 그러므로 차별금지법에서는 두 가지 곱셈이 이루어진다.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는 23가지의 기준×차별받지 않아야 할 4가지 영역’이라는 수식을 그려보면, 모든 사람의 삶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차별금지법안에서 내가 거듭 발견하는 것은 평등한 사회를 향한 꼼꼼한 의지다.

무엇이 차별인지에 대한 합의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재정비되어 왔다. 스스로를 차별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차별에 관한 기준을 계속해서 새롭게 알아가지 않는다면 구시대적인 차별 발언과 행동을 무심코 저지르기 쉽다.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섬세해질수록, 억울하게 배제되는 시민의 수가 줄어든다. 이를 위해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하는 제도가 차별금지법이다.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 뉴질랜드 등 여러 국가가 이미 도입한 법이다. 한국에서는 이미 15년 전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이 법을 제정하기 위한 여러 사람들의 노력은 길고도 지난하고도 눈물겹다. 이제는 반드시 제정되어야 할 법이다. 차별금지법을 대표발의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말한다.

“인권의 문제는 한정된 영역을 조각으로 나눠서 몫을 두고 다투는 파이가 아니에요. 오히려 모두의 권리가 지켜질 때 함께 확장되는 빅뱅 같은 개념이죠. 우주 공간이 넓어지는 것처럼요.” (황선우, <멋있으면 다 언니>, 이봄, 161쪽)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은 6월23일까지다. 10만명이 모이면 국민청원이 성립되므로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당장 직접적으로 힘을 보탤 수 있다. 인권 향상의 최대의 적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귀찮음’일지도 모른다. 국회 홈페이지 회원가입부터 청원 동의 버튼 클릭까지 약 1분이 걸린다. 1분짜리 귀찮음을 가볍게 극복하고 청원 버튼을 누르자. 청원 동의 링크 (https://bit.ly/equality100000)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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