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청와대 앞 사람들] "역대 대통령을 어진 초상화로…인간적 면모를 탐구했어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안서진 작가가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갤러리도스 자신의 개인전의 문재인 대통령 초상화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 이윤식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대통령에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잖아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대통령들을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우리 전통인 조선시대 어진(御眞) 양식을 사용하면서도 각 대통령의 인물됨에 집중하려 했어요."

이달 9일부터 14일까지 청와대 앞 갤러리 '도스'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 12명을 어진 양식으로 그린 초상화 전시회 'The President'가 열렸습니다. 한국화 화가인 안서진 작가(29)의 개인전입니다. 역대 대통령을 한국화로 그리고, 그 전시회를 청와대 코 앞에서 열 생각을 한 작가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주말인 지난 12일 오전, 청와대 춘추문 맞은 편 갤러리 도스에서 안 작가를 만났습니다.

◆"대통령은 고독한 자리…사람들이 친숙하게 접했으면"


40~50대 여성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안서진 작가는 20대 여성이었습니다. 그가 2016년 조선 25대 왕 철종 어진의 복원화를 그렸다는 설명을 미리 듣고 중년의 화가를 상상했었는데, 해당 프로젝트는 그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학부 시절 했던 것이었습니다.

기자와 만난 안 작가는 왜 역대 대통령들을 그리게 됐는지, 오래 숙고해 온 그의 생각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대통령은 한 나라의 통치자라는 영광스러운 직책이지만, 그만큼 내면으로는 굉장히 외로움과 고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국가 원수로서 자신의 속마음을 누구에게 쉽게 내비칠수 있겠어요? 대통령의 숙명일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퇴임 이후 대통령에게도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권력자로서 굉장히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것 같아요."

이런 문제의식은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계기가 됐습니다.

"사람들이 역대 대통령들을 꼭 지도자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 친숙하게 여겼으면 했어요. 대통령기록관이 아닌 이렇게 누구나 올 수 있는 갤러리에서 초상화를 볼수 있는 전시를 기획한 이유예요."

◆이승만부터 이어 온 서양식 대통령 초상화…전통양식 접목 시도


매일경제

안서진 작가가 어진 양식으로 그린 박근혜 전 대통령(왼쪽)과 문재인 대통령 초상화. 안 작가는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유일한 여성인 박 전 대통령 초상화에 더 자연스러움이 묻어나지 않았나 싶다"며 "문 대통령은 미소로 고난을 이겨낸 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림 = 안서진 작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안 작가의 설명은 '임금의 초상화'인 조선시대 어진 양식을 쓴 데까지로 이어졌습니다. 안 작가는 "현대 미술의 중심지 미국과 영국도 국가원수의 초상화는 자기네 전통 방식인 유화로 그린다"며 "우리나라는 일제강점으로 인해 전통이 끊겼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 때부터 서양화 초상화 양식이 유지돼 온 것으로 안다. 만약 우리 전통이 이어졌다면 대통령 초상화는 어진 형태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대통령을 왕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원수인만큼 예우로서는 최고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화 방식과 서양의 초상화가 어떻게 다른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미술 문외한인 기자가 보기에 인물의 표정이 세밀하게 표현된 게 서양화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 작가는 "표현 방식부터 다르다. 가령 외곽선을 서양화는 면으로 처리하지만 동양화는 선으로 그린다"고 설명했습니다.

안 작가는 이번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조선시대 어진과 조선 후기 사대부들의 초상화를 주로 참조했습니다. 그는 "조선시대 초상화는 숙종부터 경종, 영조를 거쳐 정조에 이르는 18세기가 절정기"라며 "그때 방식을 토대로 재해석하면서 현대적 미감도 반영했다"고 했습니다.

◆대통령 상징 '무궁화대훈장'…약식착용으로 거리감 줄여


매일경제

(왼쪽)안서진 작가가 그린 박정희 전 대통령 초상화. [그림=안서진 작가]. (오른쪽)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67년 자신의 취임 경축 연회장 참석 모습. 무궁화대훈장 전체를 착용했다. [사진 = 대통령기록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갤러리도스에 전시된 역대 대통령 초상화들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든 대통령들이 가슴에 똑같은 빨간색·금색의 훈장을 하나씩 달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최고 훈장인 '무궁화대훈장'입니다. 안 작가는 "초상화를 그리면서 각 대통령의 인물됨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대통령임을 나타내는 최소한의 상징물로 무궁화대훈장을 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무궁화대훈장은 대통령이 대통령 자신과 부인, 우방국의 국가원수와 그 영부인에게 수여할 수 있는 훈장입니다. 무궁화대훈장은 정장(뱃지), 경식장(목걸이), 부장(별 모양 장식), 금장(작은 뱃지) 등 총 4가지로 구성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런데 초상화 속 대통령들은 부장만 달고 있습니다. 대훈장을 전부 착장한 모습은 너무 권위적인 모습이기에, 거리감을 주지 않기 위해 부장만 단 모습으로 그렸다는 게 안 작가의 설명입니다.

안 작가는 각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세종시에 있는 대통령기록관을 드나들며 인물사진, 양복과 넥타이, 의자 등 여러 기록물을 연구했습니다. 또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 실록' 등 여러 책을 살피며 각 대통령의 삶을 공부했습니다. 초상화 하단부의 돗자리는 유일하게 작가가 자유롭게 창작역량을 발휘한 부분입니다. 안 작가는 "초상화는 인물에 대해 함부로 건들긴 힘들다. 돗자리는 그림 전체적으로 따졌을 때 부족한 색감과 디자인을 고려해 장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같은 여성으로서 박근혜 초상화가 가장 수월"


안 작가가 이번 전시회 작품 작업에 돌입한 것은 지난해 1월, 총 12점의 초상화를 완성하기까지 모두 1년 6개월이 소요됐습니다. 그리는데 가장 시간이 많이 소요된 인물로는 총 4개월이 걸린 이승만 전 대통령을 꼽았습니다. 안 작가는 "이 전 대통령은 첫 초상화다보니 이번 프로젝트의 기준이 됐다"며 "대통령의 위대한 기상이 느껴지게 그려야 할지 인간적 면모을 담아야 할지, 창작적 미감은 어디까지 넣어야 하는지 등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그리기 수월했던 인물'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꼽았습니다. 안 작가는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유일한 여성인 박 전 대통령 초상화에 더 자연스러움이 묻어나지 않았나 싶다"며 "주변에서도 박 전 대통령 초상화에 특히 똑같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文, 미소로 역경 극복했다고 생각해 웃는 모습"


현직인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서는 "미소가 특징"이라고 말했습니다. 안 작가는 "모든 대통령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역경이 많았을텐데, 그 역경을 어떻게 이겨냈느냐가 그 사람의 진짜 면목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문 대통령은 찾아본 기록물에서는 항상 미소를 띠고 있었다. 냉철하거나 강인한 면모로 역경을 이겨낸 대통령도 있지만, 문 대통령은 미소로 고난을 이겨낸 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초상화에서 문 대통령은 편하게 웃고 있습니다.

관람객들도 대통령을 소재로 한 작품에 흥미로운 반응이라고 합니다. 안 작가는 "대통령은 국민들이 공감대를 쉽게 형성할 수 있는 주제다. 관람객들 중에는 '흥미로운 전시'라고 반응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청와대 코 앞 갤러리다 보니 춘추관에서 일하는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다수 관람을 했다네요. 그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실제 자신이 본 문 대통령과 어떤 점이 같고 다른지 비교하는 반응이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효자동 139, 청와대 앞 분수대에는 매일 갖가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찾습니다. 집회금지구역인 이곳에서 피켓을 하나씩 들고 청와대를 향해 '1인시위'를 합니다. 종종 노숙농성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귀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요? 매주 토요일, 청와대 앞에서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이윤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