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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서역 투루판에서 ‘시신깔개’로 쓴 7세기 당나라 문서 첫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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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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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분리 전 시신깔개, 아스타나 230호 무덤, 당 703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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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 투루판(吐魯番) 지역에서 시신깔개로 사용한 7세기 당나라 ‘관문서(官文書)’가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4일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실에서 시작한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 - 실크로드 경계의 삶’ 전시에서 ‘오타니 컬렉션’으로 알려진 유물 중 투루판 지역 문서와 비석을 처음으로 선보인다고 밝혔다.

오타니 컬렉션은 일본의 승려 오타니 고즈이(大谷光瑞, 1876~1948)가 조직한 ‘오타니 탐험대’가 20세기 초 세 차례에 걸쳐 중앙아시아 일대에서 수집한 유물을 뜻한다. 이중에는 구입품도 있지만, 상당수는 발굴이라는 미명 아래 무단 반출된 것들이다. 조선총독부에 넘어간 유물들은 일본이 패망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 됐다.

이번 전시에 나온 유물 6건 19점은 오타니 탐험대의 대원 요시카와 고이치로(吉川小一郞, 1885-1978)가 1912년 투루판 지역에서 수집한 것이다. 투루판 국씨고창국(麴氏高昌國) 시기인 6세기 말부터 당(唐) 왕조 지배기인 7세기 말에 만들어졌다.

시신깔개로 사용한 문서는 아스타나 230호 무덤에서 출토됐다. 고대 투루판에선 시신을 매장할 때 나무 관 대신에 갈대 줄기를 엮고 문서로 싼 깔개를 썼다고 한다. 박물관에서 지난해 시신깔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시신깔개 문서가 기존에 알려진 한 종류가 아니라 두 종류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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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9년도 전국의 예산 집행 지침에 관한 문서를 이은 모습.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장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장박물관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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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9년도 전국의 예산 집행 지침에 관한 문서, 아스타나 230호 무덤, 당 679년.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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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한 부병 병사 관련 문서, 아스타나 230호 무덤, 당 675-679년 추정.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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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과 같은 문서가 중국 신장박물관과 일본 류코쿠대학에도 소장되어 있다. 오타니 탐험대가 부장품을 거두어 가는 과정에서 뜯겨나간 것이다. 조사를 통해 이번에 확인된 두 종류의 문서가 중국이 소장하고 있는 문서조각과 연결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한·중·일 소장 문서의 전체 내용과 시신깔개의 제작 과정을 복원했다.

문서는 ‘679년도 전국의 예산 집행 지침에 관한 문서’와 675~677년 작성한 것으로 판단되는 ‘도주한 병사 관련 문서’이다. 각각 2점씩 총 4점이 확인됐다.

예산 문서는 영남도(嶺南道·광둥성을 중심으로 한 중국 남부) 등에서 거둔 세금의 보관과 운송 방법, 외국 사신 접대 비용 문제, 해충 제거 작업 시 포상 재원 조달 문제를 다뤘다. 당 전기 국가재정 운용의 구체적 실례를 살펴볼 수 있는 문서이다. 병사에 관한 문서는 서주도독부가 고창현으로부터 보고 받은 ‘도주한 부병 병사 관련 문서’이다. 이 두 종류의 문서는 한국에 현존하는 유일한 당나라 관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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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거사의 대장경 조성 업적을 새긴 비편, 고창고성, 당 695-697년 추정.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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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선 투루판 중심지인 고창고성(高昌故城)에서 발견된 ‘강거사(康居士)의 대장경(大藏經) 조성 업적을 새긴 비편’도 처음 공개한다. 강거사는 강국(康國·사마르칸트) 출신의 소그드인 지도자였으나, 7세기 중반 당나라로 귀순하여 투루판에 터전을 잡고 높은 지위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말년에 공덕을 쌓기 위해 대장경을 필사하는 사업을 벌였고, 해당 경전 목록을 새긴 이 비를 세웠다.

비에 새겨진 경전 목록 대부분은 동시기 유통된 <대당내전록(大唐內典錄)> 제8권에 수록된 장안(長安) 서명사(西明寺)의 대장경 목록과 완벽히 일치한다. 나머지는 <대주간정중경목록(大周刊定衆經目錄)>에서 선별한 최신 번역 경전으로 확인됐다. 비의 앞뒷면에는 당시 818부 4039권 이상의 경전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비의 몸돌 높이는 2.8m에 달했다. 이 비는 6~7세기 투루판 지역 비석 가운데 실물로 현존하는 유일한 예다. 강거사 대장경의 실제 경전들을 향후 투루판 지역에서 찾아낼 수 있는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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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 묘표, 아스타나-카라호자 무덤, 국씨고창국, 538년 추정.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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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선 무덤 주인의 이름과 이력 등을 기록한 벽돌판인 묘전(墓塼)도 전시한다. 당시 사람들은 훗날 무덤이 허물어진 뒤라도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묘전을 제작해 무덤의 널방 입구나 통로에 뒀다. 문헌으로 알 수 없는 국씨고창국의 독자적 연호와 관제, 동시기 사람들의 생사관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다. 일제강점기 조사에서 누락됐던 일부 조각들을 접합한 것을 비롯해 묘전 6점의 해석문을 공개한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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