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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편집장 레터] “나는 몰랐다” 더는 먹히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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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오억’ ‘허버허버’ ‘보이루’ ‘아몰랑’ ‘오또케’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 ‘아몰랑’과 ‘오또케’는 안다. ‘아몰랑’은 ‘아 몰라~’고 ‘오또케’는 ‘어떻게’ 아냐” 했다 망신만 당했습니다.

이 레터를 읽는 많은 분이 저와 비슷한 수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특히 기업 경영자나 책임자급이 저와 같은 답변을 했다가는 이제 ‘시대에 뒤떨어지는 무지렁이’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최근 불거진 수많은 젠더 갈등 이슈에서 “마케팅 담당자 혹은 대표는 이 같은 내용이 의미하는 바를 전혀 알지 못했다”는 변명은 일절 먹혀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분노를 더욱 자극했죠. 결국 대표나 담당 윗선이 모두 해당 보직에서 떠나는 등의 중징계 조치가 취해지고서야 비로소 사태가 해결의 단계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으려면 젠더 관련 용어와 상징을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조오억’ ‘허버허버’가 남성혐오의 표현이라면, ‘보이루’ ‘아몰랑’ ‘오또케’는 여성혐오 단어라네요. ‘허버허버’는 남성이 음식을 급하게 먹는 모습을 빗댄 비하 표현이고, ‘아주 많다’는 의미로 쓰였던 ‘오조오억’은 남성 정자가 쓸데없이 5조5억개나 된다는 뜻을 내포한 혐오 표현이라고 합니다. ‘아몰랑’과 ‘오또케’는 논리가 막히면 ‘아 몰랑’ 하면서 도망간다는 의미, ‘오또케’는 ‘오또케 오또케’ 하면서 남성에게 의존하려는 여성이라는 편견이 담긴 단어라 하고요.

‘보이루’는 뭐냐고요? 최근 ‘보이루’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구독자 400만명의 인기 아프리카TV BJ 보겸이 ‘모 교수를 소송하겠다’고 밝히면서 새삼 화제가 됐습니다. 2019년 당시 가톨릭대 강사였던 윤지선 씨가 ‘관음충의 발생학’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보겸이라는 유튜버에 의해 전파된 ‘보이루’라는 용어는 ‘○○+하이루(Hi의 의미)’의 합성어로, 초등학교 남학생부터 20~30대 젊은이에 이르기까지 여성혐오 용어 놀이의 유행어처럼 사용되었다’는 각주를 달았습니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보겸이 계속적으로 항의하자 ‘이 용어는 보겸이 ‘보겸+하이루’를 합성해 인사말처럼 사용하며 시작되다가…전파된 표현이다’라고 수정했죠.

여기서 “그런데 왜?”라는 질문은 존재할 자리가 없습니다. “나는 논란의 실체와 상관없이 ‘오조오억’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는데, 일부 커뮤니티 이용자 반발에 밀려 그 단어를 쓰지 말란 것인가”라고 잠시 생각했다면 생각을 바꾸기 바랍니다. 그냥 해당 단어를 퇴출하면 됩니다.

X세대로서 잘 이해가 안 가는 최근 젠더 갈등의 진짜 원인은 ‘청년 실업’과 ‘육아 고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나마 없는 일자리 ‘여성 할당제’라는 이름으로 여성이 다 가져간다는 피해 의식과 ‘독박 육아’에 지친 ‘1982년생 김지영’들이 ‘이렇게는 못 살겠다’ 내지르는 아우성일지도요. 결국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고, 육아 인프라를 대폭 확충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의 열쇠일지 모릅니다. 서로 몰려다니며 좌표 찍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그런 것 말고요.

[김소연 부장 sky6592@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3호 (2021.06.16~2021.06.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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