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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의혹이 사실로'…광주 건물 붕괴 참사, 속속 드러나는 무법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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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하도급·철거계획서 미이행·안전관리 부재 등 확인

브로커 조폭 연루설 의혹도…현재 7명 입건

뉴스1

지난 10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건물 붕괴 현장에서 국과수 관계자들이 합동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전날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되면서 주행 중이던 시내버스가 매몰,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2021.6.10/뉴스1 © News1 정다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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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5층 건물 붕괴 참사와 관련한 여러 의혹들이 속속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14일 광주경찰청 수사본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HDC현대산업개발 현장 관계자 3명, 철거업체 2곳 관계자 3명, 감리회사 대표 1명 등 7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입건됐다.

사고 직후 "무리하게 철거 공사가 진행됐다"는 주장이 나왔고, 이 부분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Δ불법 하도급 계약 Δ철거계획서 미이행 Δ안전관리 부실Δ사고 당일 안전보강 미조치 등이 사실로 드러났다.

사고 직후 업계에서 만연한 불법 하도급 문제가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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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C현대산업개발 권순호 대표이사가 지난 10일 오전 광주 학동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붕괴 사고 현장을 찾아 현장 브리핑을 통해 사과하고 있다. 2021.6.10/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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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업계에서 재하도급 문제로 인한 안전사고가 매번 발생했지만 중간에 이익을 남기고 다시 하도급 계약을 맺는 관행이 좀처럼 뿌리 뽑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동4구역 현장에서도 불법 재하도급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원청업체이자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은 철거공사를 한솔기업에 하청을 줬다. 계약상은 한솔기업이 직접 철거를 진행해야 하지만, 한솔기업은 20~30%가량의 수익을 남기고 다시 지역의 백솔건설이라는 철거업체에 재하도급을 줬다.

건설산업기본법 29조2항에 따라 한솔기업은 자신이 도급받은 건설공사의 일부를 동일한 업종에 해당하는 백솔건설에 하도급을 할 수 없다.

하지만 불법적인 재하도급 계약이 이뤄졌고, 현장에서 백솔건설이 철거를 진행했다.

하청에 하청을 거듭하면서 공사 예정가는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고, 원가 절감과 공기 단축을 위해 '날림 공사'가 자행됐다.

백솔건설 대표는 지난해 3월 광주 북구에서 비계구조물해체공사업 신규 면허를 취득한 뒤 곧바로 이번 대형 참사를 빚은 학동4구역 재개발 현장의 철거공사를 맡았다.

결국 예정가의 3분의 1이라는 낮은 가격으로 공사를 수주한 '초짜업체'가 비용절감을 위해 날림공사를 진행하면서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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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 건물이 붕괴하기 4시간여 전인 지난 9일 오전 11시 37분쯤 철거 공사 현장 모습. 건물 측면 상당 부분이 절단돼 나간 상태에서 굴삭기가 성토체 위에서 위태롭게 철거 작업을 하고 있다.(광주경찰청 제공)2021.6.10/뉴스1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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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하도급 계약을 맺은 초짜업체는 기본적인 안전관리도 시행하지 않았고, 지자체에 신고한 철거계획서를 철저히 무시한 채 공사를 진행했다.

한솔기업이 지난 5월14일 해체 허가 신청을 하며 광주 동구에 제출한 건물 해체계획서에 따르면 5층짜리 건물을 해체하기 위해서는 잔재물을 쌓아 그 위에서 굴삭기가 상층부터 해체 작업을 진행한다.

5층 외부벽→방벽(내부 격벽)→슬라브(바닥) 순서로 해체를 한 후 5층이 완전히 철거되면 다시 4층도 외부벽→방벽→슬라브 순으로 해체한다.

같은 방식으로 3층까지 해체가 완료되면 잔재물에서 지상으로 장비를 이동해 1~2층도 같은 방식으로 철거가 진행된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철거업체는 고층이 아닌 붕괴 위험이 높은 저층 외벽부터 뜯어내는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잔재물이 5층이 아닌 3~4층 부근까지 쌓여있었고, 외벽과 격벽, 슬라브 순서가 아닌 건물 외부에서 안쪽으로 갉아먹는 형식으로 철거가 이뤄졌다.

굴삭기가 건물 안쪽으로 진입하기도 했다는 굴삭기 기사의 진술도 확보된 상태다.

안전하게 건물을 해체하겠다며 제출한 계획서 내용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사실상 해체계획서는 지자체 신고를 위해 작성된 형식상의 문서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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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전 12시30분쯤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건물 붕괴 사고 현장에서 붕괴된 건물에 매몰됐던 45인승 시내버스가 대형 트레일러에 인양되고 있다. 해당 버스는 소속 회사인 대창운수 차고지로 이송될 예정이다.2021.6.10/뉴스1 © News1 정다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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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지자체는 해체계획서대로 공사가 진행되는지 확인하도록 감리자를 지정해 안전사고를 예방하도록 했다.

하지만 감리자는 현장에 없었다.

해체공사 감리자가 현장에 상주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감리자는 날림공사가 진행되는 현장을 방치했다.

비상식적인 공사가 자행됐지만 이를 불안히 여긴 시민들의 제보영상과 사진만 있을 뿐 감리자의 감리일지는 없었다.

현장 감리자는 사고 당일과 다음날까지 연락이 두절됐다가 "변호사를 대동해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감리자는 안전규정을 위반하고 건축사업무불성실 등을 이유로 경찰 고발됐고, 현재 입건된 상태다.

경찰이 감리자를 소환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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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4시22분쯤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 1동이 무너져 도로를 달리던 시내버스와 승용차 2대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21.6.9/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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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자의 안전 관리·감독이 없자 현장은 무법지대였다.

경찰은 사고 당일 "물을 뿌리던 중 굴삭기가 올라있던 흙더미가 무너졌고, 굴삭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후 건물이 무너졌다"는 굴착기 운전기사의 진술을 확보했다.

철거 공사 현장에 비산먼지가 날린다는 민원이 지속되자 평소보다 2배 많은 물을 뿌리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공사 관계자들이 "현대산업개발 측에서 물뿌리기용 고압 펌프를 2배로 늘리기를 지시했다"고 주장했지만 현대산업개발은 이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철거작업을 하던 중 건물과 연결된 와이어가 사고 당일 끊어졌지만 이를 보강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지난 8일 건물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흙더미와 건물 본체를 와이어로 연결했지만, 사고 당일인 11일 이 와이어가 끊어져 붕괴 위험이 있었지만 아무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은 굴삭기가 건물 전면부에 충격을 줬는지 여부와 안전보강 문제가 있었는지, 무너진 흙더미가 건물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 등에 대한 추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 조사로 진술이 확보되고 사실로 확인된 것 외에도 철거업체 계약에서 브로커 역할을 한 조폭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경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편 지난 9일 발생한 광주 건물 붕괴 사고로 9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현대산업개발과 하청업체, 감리업체 등 7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beyondb@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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