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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서로 다른 방향만 본다면 휴먼 에러는 괴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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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산업재해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산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언론 기사도 강경하다. ‘직원을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착취의 체제’가 문제고, ‘중대재해처벌법을 더욱 강하게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기업 규제와 처벌이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첩경인 듯한 인상을 준다.

안전 전문가들이 입버릇처럼 되풀이하는 말이 있다. ‘사고는 일어난다’는 것이다. 사고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대책을 수립하고 예방해야 한다는 의미지만, 사고는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미도 있다. 사고가 ‘당연한’ 이유를 알아야 사고를 피할 수 있다.

산업 현장 사고 원인은 크게 설비·기술·인적 요인으로 나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 원인 80%는 인적 요인 즉, ‘휴먼 에러’ 때문에 발생한다. 이 비율은 설비·기술 사고 예방이 높은 수준인 선진국일수록 높게 나타난다. 휴먼 에러는 간단히 말해 사람의 실수다. ‘실수’는 두 가지 특성을 갖는다. 하나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지극히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실수는 잘못이 아니다. 인간은 그런 것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실수를 저지른다. 연구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평균 하루 2번 실수를 한다. 그리고 전체 실수 5%는 비교적 심각한 결과로 이어진다.

실수가 주관적이라는 의미는 이렇다. 작업 특성, 개인 특성, 시간·공간 상황 등 예측하고 특정하기 어려운 ‘순간적 상태’에 따라 실수 빈도와 강도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휴먼 에러를 이해하기 어렵고, 감소시키기 어려운 이유다.

산업재해가 쉽게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기존의 안전 관리 방식만으로는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누구나 저지르기 마련이고 예측하기도 어려운 ‘실수’는 설비적, 기술적 안전 관리의 체계를 강화하고 정교화하는 기존의 기법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휴먼 에러는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작업자 개인 관점을 이해해야 사람에게 노출된 실수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다. 또한 실수가 발생하는 메커니즘과 실수가 발생하는 과정을 차단할 수 있는 실마리가 드러난다. 실수를 방지하는 작업 환경을 만들고, 실수의 가능성을 낮추는 것이 사고를 줄이는 방법이고, 새로운 안전 관리 방향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 구성원 개개인 참여와 통찰이 필수적이다. 편을 가르고 책임을 따지며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지혜와 통찰을 모아야만 가능하다. 필자가 알고 지내온 한 최고경영자는 “우리 직원 목숨을 담보로 사업을 할 생각은 없다”며 안전 투자를 늘리고 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해왔지만 결국 사고를 피하지 못했다. 너무 어이없는 사고에 최고경영자는 물론 직원까지도 모두 안타까워하고 허탈해했다. 산업재해는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는 범죄가 아니다. 관련된 모두가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고다. 인명을 경시하고, 안전 관리에 방만한 기업은 강하게 처벌받아야 한다. 하지만 소중한 생명을 지키고 기업의 건강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진지한 대책은 대립과 처벌이 아니라 융합과 조화에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매경이코노미

[김기홍 가온파트너스 대표]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3호 (2021.06.16~2021.06.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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