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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분수대] 하인리히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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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강기헌 산업1팀 기자


직장인이라면 그와 친숙하다. 산업 안전보건 교육에 꼭 등장하는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1885~1962)다. 산업재해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하인리히 법칙을 만든 이가 바로 그다.

보험사 트래블러스 점검 부서에서 일하던 하인리히는 1931년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란 책을 출판한다. 그는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이유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했다. 1건의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토대에는 29건의 경미한 산업재해와 300건의 부상자 없는 사고가 놓여있다고 봤다. 1대 29대 300의 법칙으로, 17년간 산업 재해를 지켜본 그의 결론이었다.

하인리히는 사소한 사고를 줄이면 중대 재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산업재해 도미노 이론으로 발전한다. 하인리히에 따르면 산업재해는 사회적 환경→노동자의 실수→위험한 행동 및 기계적 위험→사고를 거치며 발생한다. 도미노 한 조각만 제거해도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연결고리를 차단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하인리히 법칙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그가 분석대상으로 삼은 7만5000건의 데이터 중 일부는 관리자의 취사선택을 거친 가공된 데이터라는 게 핵심이다. 산업구조도 크게 변했다. 전기·건설·자동차가 핵심을 차지하던 1930년대와 현재는 크게 다르다. 이런 약점에도 하인리히의 연구는 산업재해를 논하는 데 있어 빠지지 않는다. 경험을 바탕으로 산업재해를 차단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인리히의 해석을 빌리자면 광주 54번 버스 참사와 이천 물류창고 화재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산업재해였다. 54번 버스 참사는 2019년 잠원동 철거 사고와 닮은꼴이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는 2008년 냉동창고 화재와 화재 원인 등이 겹친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무엇보다 강조한 정부에서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건 경험에서 배운 게 없다는 걸 뜻한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보면 향후 대응 과정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사업장 특별점검에 나선다. 국회는 관련법 개정을 통해 처벌 수위를 높이고 각종 점검사항을 늘린다. 현장과 유리된 보여주기식 행정의 한계다. 특별점검이나 법 개정보다 경험의 분석이 우선이다. 경험에서 배우지 못한 나라에 미래는 없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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