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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취재파일] 공수처는 왜 이 시점에 윤석열을 입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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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까지 9개월…김진욱 "선거 임박 이유로 수사 안 하는 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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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2건. 어제(11일) 오후 기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접수된 고소‧고발과 진정 건수입니다. 이 중에는 현직 부장판사의 금품수수 의혹 고발 사건 등 비교적 사건 구조가 복잡하지 않은 사건들도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현직 부장판사는 공수처 수사 대상인데다, 다른 사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적 논란도 적어 공수처가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공수처는 수차례 고발인 조사 등의 절차를 진행했을 뿐 수사에 착수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다섯 달 동안 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한 사건을 보겠습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부당 특별채용 의혹(사건번호 : 2021년 공제 1호‧2호),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및 유출 의혹(3호),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4호), ▲김학의 전 법무차관 불법 출국금지 관련 수사외압 의혹(공제 5호‧6호)입니다. 모두 공수처가 자체적으로 시작한 사건이 아니라, 다른 기관으로부터 넘겨받았거나 넘겨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사건입니다. 공수처의 선택적 수사는 매번 빈축을 샀습니다. 양측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고, 수사 상황에 따라 정치권에서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내용들이기 때문입니다. 수사 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오래 사건을 갖고 있다 보니 수사를 뭉갠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고, '수사방해처', '정권수호처' 라는 꼬리표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윤석열 수사 담당 부서 당황…김진욱도 부담 느끼는 듯"



이런 가운데 공수처가 지난 4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에도 착수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윤 전 총장을 고발한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 대표가 윤 전 총장 입건 사실과 사건번호(공제 7호‧8호) 내용을 공수처로부터 들은 뒤, 이를 언론에 알린 것입니다.

고발인이 제기한 의혹은 2가지입니다. 하나는 윤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있던 2019년 5월, 옵티머스 펀드사기 수사를 부실하게 지휘했다는 의혹. 다른 하나는 검찰총장 재직 당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재판에서 검찰이 재소자들 진술을 회유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를 방해했다는 내용입니다. 한 전 총리 관련 사건은 앞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윤 전 총장의 비위 혐의로 판단해 징계에 착수했던 내용인데,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와 검찰 수사까지 거쳐 무혐의로 결론 났습니다.

윤 전 총장 수사 착수를 결정한 공수처 내부 분위기는 어떨까요. 특히 윤 전 총장 수사 착수 사실이 알려진 뒤 정치권에서 "윤석열에 날개를 달아줄까봐 우려된다"라거나 "윤석열 죽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라는 등의 여·야 공세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사건을 배당받은 공수처 수사3부(최석규 부장검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고 하고, 김진욱 공수처장도 각종 언론 보도가 쏟아지자 다소 난처하고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수사 담당 부서가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표면적 이유는 수사할 여건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부족한 인력으로 이미 이규원 검사 관련 의혹과 이성윤 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을 수사 중인 상황인데, 여기에 윤 전 총장 관련 의혹 수사까지 맡으려면 적잖이 부담이 된다는 것입니다. 대다수 공수처 파견 검찰 수사관들은 다음 달(7월)이면 임기가 끝나 검찰로 돌아가게 됩니다.

열악한 상황에서 힘들게 수사를 하더라도 윤 전 총장 수사에 대해 공수처가 내릴 수 있는 결론 모두 공교롭게도 부담 요소입니다. ①윤석열을 기소한다. ②윤석열을 불기소(무혐의) 처분한다. ③대선 전 결론을 내지 않는다. 어떤 결과든 그 후폭풍에 대해서는 수사 착수를 최종 결정한 김진욱 처장이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김진욱 처장이 난처해하고 부담감을 느낀다는 말이 공수처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입니다.

수사에 착수만 했을 뿐인데도 '공수처가 유력 대권 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윤 전 총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배경이 무엇이냐'를 놓고 해석이 분분합니다. 공수처 관계자는 "고발 사건 처리 절차 상 입건만 돼 있을 뿐"이라며 말을 아꼈지만, 수사기관의 수사 행위가 정치적 상황과 맞물리는 상황에서 공수처는 정치적 논란을 불식하기 위해 납득할 만한 수사 착수 배경과 타당성에 대해 일정 부분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김진욱 "선거 임박 이유로 수사 안 하는 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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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률적으로 선거에 임박해서 모든 수사를 안 하는 것은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지난 2월 25일 오전 10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포럼에서 김진욱 공수처장이 밝힌 말입니다. 넉 달 전 김 처장의 발언인데, 공수처가 최근 윤 전 총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게 된 배경과 윤 전 총장 수사에 대한 김 처장의 고심을 미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어서 소개합니다. 김 처장이 위와 같은 말을 꺼내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관훈포럼 내용 中>

질문 : 특히 올해 대선 앞둔 국면이라 여야 정치권은 공수처 수사 대상과 결과에 따라 이해득실을 조절하면서 민감하게 반응할 텐데, 공수처 1호 수사 사건 선정시 어떤 요소들을 판단 기준으로 고려하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김진욱 :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마 여야 정치권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선거거든요. 그리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공수처가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영향을 미칠 만한 사건을, 그렇게 해서 중립성 논란을 자초하는 그런 일은 피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중략) …선거 끝나고 수사해도 되는 사건을 선거 앞두고 수사하고 발표도 하고, 그래서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것은 가장 정치적인 중립성을 의심받는 경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른 질문자가 '대선'에서 '대선 후보자 수사 시점'으로 범주를 좁혀서 구체적 질의를 이어가니, 김 처장 답변의 뉘앙스가 살짝 변합니다. 위 대화에 곧바로 이어지는 추가 질의와 이에 대한 김 처장의 답변입니다.
질문 : 그렇다면 내년 3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 고위공직자 출신 대선 주자가 나올 개연성이 있는데 공수처가 선거 이후로 미루겠다는 의미인가.

김진욱 : 선거 시점과 임박하지 않은 상당히 떨어진 시점인지, 그다음에 그 범죄 혐의가 어떤 혐의인지, 굉장히 위중한 혐의인지 아니면 그래도 상대적으로 위중하다는 것이 공직자로서의 지위와 직권과 관련된 범죄로써 더 큰 고위공직에 진출하는 데에 허용할 수 없을, 정의의 요청 상 이런 경우인지, 아니면 그 범죄가 그런 것과는 별 상관없고 별로 그렇게 위중한 범죄는 아닌 경우인지…. 여러 가지 형량을 해서 그 부분을 따져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일률적으로 선거에 임박해서는 모든 수사를 안 한다. 이것도 또 정의의 요청에는 부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포럼에서 김 처장이 내놓은 답변을 보면, 공수처가 유력 대선 주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수사 착수 기준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뻔한 얘기이지만 김 처장의 답변에 비춰보면 ▲'선거 시점'과 ▲'혐의의 위중한 정도', 이렇게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제반 상황을 비교 형량해서 따져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며 중간에 두루뭉술하게 언급하기는 했지만 김 처장은 나름의 기준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공수처 분석조사담당검사가 지난 서너 달 동안 기록 검토를 거친 뒤, 김 처장이 최종적으로 윤 전 총장 수사에 착수해도 좋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절차적으로 입건만 해놨다"라는 공수처 일부 관계자들의 소극적인 해명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넉 달 전 김진욱 처장의 발언에 비춰보건대, 김 처장은 대선을 9개월 앞둔 시점에서 윤 전 총장 수사가 위 두 가지 기준(▲선거 시점과 ▲혐의의 위중한 정도)에 부합한다고 판단을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쌓여가는 민감한 사건들…김진욱, 조만간 입장 밝히나



공수처에는 윤 전 총장 의혹을 비롯해 정치권과 연결될 수 있는 민감한 사건들이 하나씩 쌓여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2016년 불거졌던 '엘시티 인허가 특혜 관련 정관계 로비 의혹'을 겨냥한 수사에도 착수했습니다. 윤대진 당시 차장검사 등 검사 13명이 수사를 제대로 했는지를 들여다 보겠다는 취지입니다. 이번 엘시티 의혹까지 포함하면 사건번호는 어느덧 '2021년 공제 9호'까지 부여된 상태입니다.

공수처 직원들 사이에서는 "사건은 계속 들어오고 사람은 없고 감당이 되겠나"라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가 오고 간다 합니다. 윤 전 총장에 대한 수사 착수에 대해서도 "이미 무혐의 처분된 사건인데 새로운 증거가 없으면 수사가 어려워 보인다"라거나 "반드시 기소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민감한 사건이니 빨리 털어버리자는 거겠지",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아니냐"라는 반응이 공수처 내부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수사의 목표 중 하나는 재판에 넘겨 유죄를 입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다소 비관적인 전망이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

수사 실무자도 아닌, 제한적인 정보만 제공받는 대변인실을 통해 "아무 것도 확인해드릴 수 없다"라는 원론적 멘트만 반복해 내보내도록 지시할 것이 아니라, 쌓여만 가는 민감한 사건들에 대해 김진욱 처장이나 여운국 차장 등 지휘부가 공수처 조직 내부의 바닥 민심과 외부 의견을 충분히 듣고, 언론에도 피의사실 공표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정 부분 설명에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공수처의 권한이 주권자인 국민께 받은 것이라면 그 권한을 받은 공수처는 당연히 이러한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되새기며 권한 행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권한 행사를 성찰적 권한 행사라 부르고자 합니다. 성찰적 권한 행사라면 권한을 맡겨주신 국민 앞에서 항상 겸손하게 자신의 권한을 절제하며 행사할 것입니다. 수사와 기소라는 중요한 결정을 하기에 앞서서 이러한 결정이 주권자인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결정인지, 헌법과 법, 그리고 양심에 따른 결정인지 항상 되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권자인 국민 앞에서 결코 오만한 권력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김진욱 공수처장 1월 취임사> 중-


김 처장은 취임사에서 '성찰적 권한 행사'를 강조했습니다. 절제되고 엄격한 공수처 수사 권한 행사를 강조한 것으로 읽힙니다. 검찰과 경찰의 지난 과오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공수처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옥상옥', '정권수호처'라는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 처장이 취임 일성(一聲)에서 밝힌 대로 수사와 기소라는 중요한 결정을 하기에 앞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결정을 하고 있는지, 공수처의 수사권 행사가 헌법, 양심에 어긋나는 부분이 없는지 돌아봐야 할 시점입니다.

(사진=연합뉴스)
배준우 기자(gat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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