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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취재썰]2030은 왜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에 분노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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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증식 행로 밟은 김 전 장관

재임 중 '집값 잡는다' 했지만 급등

JTBC는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2001년 첫 집을 장만한 뒤 재산을 불려간 과정을 보도했습니다. 김 전 장관, 화려한 이력에 비해 참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소위 '금수저'가 아닌, 그저 보통 사람들이 조금씩 재산을 모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길을 걸었습니다.

역설적으로 김 전 장관이 걸어온 길에 주목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김 전 장관은 부모 세대가 공식처럼 만들었던 보통 사람들의 자산 증식 방법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장관 취임한 직후엔 걸어온 길과 다른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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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뉴스룸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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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개인의 삶은 다른 영역입니다. 수험생이 비틀어진 입시 제도를 비판하더라도 자신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늘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비판하더라도 한 사람의 경제인으로서 대출을 받고, 집을 늘려나갈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취임 초 김 전 장관이 던진 메시지는 확정적이고 강력했습니다. '공급은 충분하다'고 단정했고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취지로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정부가 던진 메시지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공신력 있는 신호로 받아들인 겁니다. 그런데 정작 김 전 장관 발언 이후 집값은 계속 올랐습니다.

거처를 마련하고 살아가는 일은 삶의 기본적인 조건입니다. 평범한 이들은 자산 증식의 기회를 놓친 걸 넘어 생존의 기본 조건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됐습니다.

김 전 장관 재임 기간 내내 전국 부동산은 급등세가 이어졌습니다. 진영이나 경제관의 차이를 떠나 현실 인식과 정책 일관성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그때마다 김 전 장관은 “시장은 안정적”이라며 현실과 동떨어진 말을 반복했습니다.

결국 3년 반 사이 정책은 극에서 극으로 옮겨 갔습니다. '공급은 충분하다'던 게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새 굽겠다”고 말입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김 전 장관, 초기엔 “공급 충분하다”며 규제 중심 부동산 정책

김 전 장관은 취임 당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도 과열 양상의 원인을 공급 부족에서 찾는 분들이 계신 것 같습니다.” (2017년 6월,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사 중)

공급은 충분하다는 겁니다. 실제 취임 직후 규제 위주로 부동산 정책을 폈습니다. 공급보다는 규제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투기지구·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을 지정했고, LTV와 DTI 기준을 강화했습니다. 대출로 집 사기 어렵게 만든 겁니다.

사는 집이 아니면 팔라고도 했습니다. 다주택자들이 불편하게 될 것이라며, 시간을 줄 테니 팔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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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꼭 필요해서 사는 것 아니라면 집을 파는 게 좋겠다. 내년 4월까지 우리가 시간을 드렸거든요. 자기가 사는 집들이 아닌 집은 좀 파시고, 파는 길을 열어드린 거고.” (2017년 8월, 청와대 인터뷰 영상 중)

◇수도권 집값 계속 오르는데도 “전국적으로 부동산 안정” 발언 논란도

그런데 수도권 집값은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이쯤 되니 규제와 함께 공급 필요성도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공급엔 문제가 없고, 투기꾼들 때문에 빚어지는 국지적인 상승만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부동산 시장은 줄곧 안정세'라고도 했습니다.

“전국적으로 부동산 가격은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강남을 비롯한 재건축 지역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전셋값도 유례없이 안정된 상태입니다.” (2018년, 국회 국토교통위)

정말 그랬나요. 아마 대다수는 아니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공급 부족 아니라더니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새 만들겠다” 발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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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상황은 점점 악화됐습니다.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 주택 가격, 전월세가 다 올랐습니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던 김 전 장관, 임기 후반에야 결국 입장을 바꿨습니다.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습니다.” (2020년 11월, 국회 국토교통위)

180도 바뀐 입장. 이번에는 갑자기 다양한 공급 대책을 쏟아냈습니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것일까요.

시장 상황은 항상 동일했는데 김 전 장관의 현실 인식만 3년 반 사이에 바뀌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김 전 장관에게 어떤 통계 자료와 수치가 보고됐는지, 뭘 보고 현실을 판단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국토부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기초적인 자료 외에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예전 국회 발언을 보면 김 전 장관이 충분한 정보를 공급받지 못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송언석 위원 : “공동주택 실거래가격지수라고 하는 항목이 있습니다. 거기 들어가 보시면 매매 실거래가지수는 40.9%가 상승한 것으로 나오고 매매 평균 가격은 44.7% 그리고 매매 중위 가격은 42.7% 상승했다는 게 쉽게 확인이 될 수 있습니다. 혹시 장관님, 이 통계 보고받으신 적 있으신가요?”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 : “없습니다. 밑의 3개는 제가 처음 봅니다.” (2020년 8월, 국회 국토교통위)

◇보통 사람의 자산 증식 행로 그대로 밟은 김 전 장관 부동산 일대기

이미 김 전 장관은 퇴임했고 부동산 시장은 갈 길 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희는 한번 되짚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생활인 김현미는 부동산을 어떻게 대하고 운영해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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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장관이 거쳐온 주택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 확인했습니다. 시작은 2001년 11월 산 경기 고양시 대화동 84.88㎡(20평대) 크기 단지형 빌라였습니다. 당시 1억 원 중후반대에 거래되던 집입니다. 김 전 장관은 약 6천만 원을 대출받아 이 집을 샀습니다.

이곳에서 3년 정도 살다 2004년 6월에 팔고 새집을 사서 이사를 갔습니다. 134㎡(40평대) 넓이의 또 다른 빌라입니다. 2억 원 중후반대에 거래됐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번엔 1억7760만 원 정도를 대출받았습니다.

여기서 10년 가까이 살다가 2014년 2월, 경기 고양시 덕이동 신축급 브랜드 아파트로 옮겼습니다. 당시 실거래가 5억 1900만원대, 이 중 2억 4천만 원 가량을 대출금으로 충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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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장관이 걸은 부동산 이력, 평범한 중산층 수준입니다. 서민들의 행로를 그대로 밟았습니다. 화려한 이력을 생각하면 소박하고도 소박합니다. 꼬박꼬박 월급 모으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 첫 집을 샀습니다.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다 브랜드 아파트로 옮겨갔습니다.

수백억 자산을 운용하거나 천문학적으로 비싼 고급 주택을 마련한 게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꿈꾸는 일반적인 길이죠. 월급 모은 걸로는 모자라니 매번 주택값 절반 정도를 대출로 메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생활인' 김현미는 국토부 장관 김현미가 된 뒤 이런 자신의 과거와 반대로 정책을 펼쳤습니다. 실은 대출받고 집 한 채 마련하는 게 '투기'로만 볼 수 없다는 걸 생활인 김현미는 알지 않았을까요.

◇극과 극을 달린 정책, 부족했던 현실 인식…이유 있는 2030 세대 분노

2030의 분노는 이 지점에서 발생했습니다. 부모 세대가 만들었고, 또 실행했던 그 공식대로 '내 집' 한 칸 마련하고 싶었을 뿐인데 현실은 그것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월급 모아 사기는 불가능해졌고 대출로 충당해볼까 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먼저 집 산 사람에 비교해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까지 나왔습니다.

이런 와중 부동산 정책을 책임지는 장관이 “'영끌'해서 집 사는 2030 안타깝다”라고 말하니 화가 날 수밖에요. 현실과도 맞지 않는 데다, 2030의 박탈감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었던 거죠. 김 전 장관이 집을 불려간 이력을 훑어본 이유입니다.

취재진은 2030세대의 심정을 듣기 위해 거리로 나갔습니다. 결혼을 앞둔 30대 최선호씨는 "윗세대는 이미 자산을 갖고 있지만 우리는 벼락거지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든 집 하나 얻어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영혼까지 끌어모으고 싶어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 전 장관 집 근처 공원에서 만난 또 다른 청년. 김 전 장관의 부동산 정책 관련 '인터뷰를 해달라'는 말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제가 지금 인터뷰를 하면 험한 말이 나올 거 같아 못 하겠습니다.” 거듭 설득했지만 끝내 실패했습니다.

숫자와 통계 그리고 정책은 누군가에게는 삶이고 꿈이었던 겁니다. 그게 무너진 세대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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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부 여당은 2030을 겨냥한 부동산 제도 개편에 나섰습니다. 공급 위주 대책은 물론 대출도 완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습니다.

뭐가 맞는 걸까요. 대출을 쉽게 하면 집값이 오르고 투기도 심해질 수 있습니다. 대출을 조이면 2030의 삶을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이 어딘가를 세심하게 찾아내는 게 정부의 역할일 겁니다. 생활인 김현미가 살 곳을 마련하고 조금씩 불려 나가는 동안 느꼈던 고민과 기쁨을 떠올렸다면 좀 더 세심한 정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앞으로도 장관은 바뀌고 정책은 달라지겠지만 2030은 살아가야 하니까요.

하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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