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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티나게 팔리는 똑똑해지는 약’…효과 있을까? [KISTI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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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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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에 실린 ‘공자대성침중방(孔子大聖枕中方)’이라는 조약법이 있다. 이 방법에 따라 만든 한방약을 먹으면 매일 천 마디의 말을 기억할 수 있게 되어 공자만큼 똑똑해질 수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동의보감에는 과거 시험 전날에 복용하면 장원급제를 한다는 장원환(壯元丸), 주자가 공부 중에 복용했다는 주자독서환(朱子讀書丸) 등 총 12가지의 ‘총명탕’ 제조법이 실려 있다. 이를 통해 옛사람들이 똑똑해지는 약에 대해 얼마나 큰 관심을 두고 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똑똑해지는 약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리탈린, 덱세드린, 애더랄, 모다피닐 등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원래는 2000년대 초에 집중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ADHD)를 치료하거나 기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약이지만 집중력과 기억력을 높여주는 부가 기능이 있다고 입소문을 타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건강한 일반인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작년에 한 연구기관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15개 국가를 대상으로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에게 약리학적 효과를 통하여 기억력과 집중력을 높이고 인지 능력을 향상하는 ‘스마트 약’을 복용한 적 있는지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14%에 달하는 사람들이 과거 12개월 동안 적어도 한번은 스마트 약을 먹은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2015년에 조사했을 때는 5%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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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딱히 질환이 없는데도,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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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이토록 스마트 약이 주목 받는 걸까? 건강한 사람들이 너도, 나도 스마트 약을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공통으로 과도한 경쟁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스마트 약 열풍을 불러 왔다고 지적한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 나가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강박에 가까운 경쟁의식이 스마트 약 열풍을 불러왔으며 이 약을 먹음으로써 감수해야 할지도 모르는 부작용까지도 무의식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접 성적 경쟁을 벌여야 하는 학생들이 가장 먼저 스마트 약 열풍에 편승했다. 먹으면 성적이 오른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너도나도 스마트 약을 먹기 시작했다. 소문만으로도 성적에 목매는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기 충분했는데 과학적 검증을 거쳐 스마트 약의 효과가 부분적으로 입증되자 이제는 일반 직장인과 심지어 과학자들까지 스마트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의사들마저도 고난도 수술을 집도하기 전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스마트 약을 복용한다.

하지만 스마트 약의 남용은 크게 두 가지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하나는 공정한 경쟁이 가능할지에 관한 윤리적인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부작용에 관한 문제이다. 그리고 이 두 문제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영화 ‘리미트리스’의 주인공 ‘에디 모라’는 무능한 작가다. 슬럼프에 빠진 그는 마감 전날인데도 한 장의 원고도 쓰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스마트 약 ‘NZT-48’을 한 알 먹고 나서 그의 인생은 180도 뒤바뀌게 된다. 거짓말처럼 그의 뇌의 모든 부분이 100% 활성화되자 그렇게 골머리를 썩이던 원고를 순식간에 써 내려가는 것은 물론 어려운 수학 공식을 푸는데도 막힘이 없으며 비비 꼬여 있던 인간관계까지 합리적인 능변을 통해 순식간에 해결해버린다. 이제 그는 ‘NZT-48’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물론 현실의 스마트 약은 ‘NZT-48’처럼 극적인 효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기껏해야 몇 시간 정도 기억력과 집중력을 높여줄 뿐이다.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 ‘에디 모라’처럼 약의 효과를 몸으로 체험한 사람은 점점 약에 의존하게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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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미트리스에서는 스마트 약으로 인생이 바뀌는 인물 에디 모라를 통해 인간 존재의 한계와 능력의 확장 문제를 논의한다. [출처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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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미국과 유럽, 그리고 호주를 포함한 9개 나라에서 조사한 결과 스마트 약 복용률이 하락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한번 약을 먹기 시작하면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약을 찾게 되며 그 간격은 점점 짧아지고 이윽고 주기적으로 약을 먹게 된다.

이렇게 되면 날마다 약을 먹을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생기게 된다. 스마트 약의 도움을 받아 높은 작업 효율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성공을 거둘 것이며 이를 통해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일 것이다. 반면 매일 약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경쟁에 임할 수밖에 없으며 낮은 작업 효율은 낮은 소득으로 이어지게 된다.

부작용에 대한 고려도 충분하지 않다. 비록 스마트 약을 파는 업계 관계자들과 연구자들은 스마트 약이 쾌락을 주지는 않기 때문에 중독성은 없다고 하지만 장기적 측면에서 봤을 때는 이마저도 확실치 않다. 스마트 약을 빈번하게 복용하다 보면 약을 먹지 않았을 때 스스로가 무능력하게 느껴진다는 호소가 끊이지 않고 있다.

스마트 약이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한 지 채 20년이 지나지 않았다. 미래에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확실치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스마트 약 시장의 확장 속도에는 거침이 없다. 지금이야말로 더 늦기 전에 스마트 약 사용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 이형석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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