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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법의 심판대 오른 MB

공수처 칼날 위 오른 尹 위기?···DJ·MB땐 檢수사 되레 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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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와 함께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되면서, 정치권이 그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진은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 참석한 윤 전 총장의 모습. 우상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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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에 공식 착수하면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이재명 경기지사와 함께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에서 선두를 다투는 유력 후보이기 때문이다.

대선 유력 후보가 수사 대상이 된 건 2007년 ‘BBK 사건’ 이후 14년 만이다. 2012년 대선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른바 ‘NLL 대화록’ 사건을 둘러싼 고소·고발로 수사가 이뤄졌으나, 후보가 직접 연루된 사건은 아니었다. 대선 후보를 겨냥한 수사는 때론 고발인의 의도와 다르게 해당 후보에 유리한 결과로 이어진 적도 적지 않다. 정치권이 윤 전 총장 사건의 향배에 주목하는 이유다.



1997년 : ‘DJ 비자금’ 사건…검찰총장 “수사 유보”



고소·고발 사건이 대선판을 본격적으로 흔든 첫 사건은 1997년 ‘김대중 비자금’ 의혹이다.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의 강삼재 사무총장은 1997년 10월 7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평화민주당이라고 배서된 1억 원짜리 자기앞수표 사본을 제시하며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했다. 신한국당은 후속 폭로를 이어가다, 같은 달 16일 김대중 당시 국민회의 후보를 직접 검찰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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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정 검찰총장이 1997년 10월 김대중 새정국민회의 총재의 비자금 의혹 고발사건에 대해 "수사를 유보한다"고 밝히는 모습. 김태정 총장은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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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은 고발장 접수 닷새 후인 21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DJ 비자금 수사를 15대 대선 이후로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대선 전에 수사를 끝내는 것이 불가능하고, 정치자금 수사는 양쪽 모두 해야 한다는 형평론을 내세웠다. 김 전 총장은 “독자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했지만, 정치권에선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검찰의 ‘수사 유보’ 결정은 여권 분열로 이어졌다.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총재는 다음 날 “검찰이 3김 정치의 압력에 굴복했다”며 김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고, 청와대가 즉각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신한국당 내홍이 시작됐다. 이후 YS의 측근이자 ‘DJ 비자금’ 사건의 첫 폭로자였던 강 사무총장은 “이 총재의 지시로 폭로가 이뤄졌다”고 밝힌 뒤 한동안 칩거하기도 했다. 대선 결과는 김대중 40.27%, 이회창 38.75%, 이인제 19.21%였다.



2002년 : 무혐의였으나…昌 상처입힌 ‘병풍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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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업 씨가 2002년 7월 이회창 후보 아들 정연씨의 병역비리 의혹에 대한 기자회견을 서울지검 기자실에서 하는 모습.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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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에선 이회창 후보의 아들 정연 씨의 병역비리의혹, 이른바 ‘병풍(兵風)’ 사건이 선거판을 뒤흔들었다. 김대중 정부 검·군 병역비리합동수사반 수사에 민간인 신분으로 참여했던 부사관 출신 김대업 씨의 폭로가 발단이었다. 김 씨는 2002년 7월 31일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의 부인 한인옥 여사가 아들 정연 씨의 병역면제 과정에 연루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김 씨와 한나라당 간에 고소·고발이 빗발치자, 검찰은 이번엔 대규모 수사에 착수했다. 80여일간 고소·고발 당사자 20명과 참고인 144명이 소환됐다. 하지만 결론은 무혐의였다. 이 후보 아들의 병적기록표 위·변조 여부, 병역문제 은폐대책회의 여부, 금품 수수 의혹 등 모든 의혹이 ‘증거 없음’으로 결론 났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은 이 후보에게 유리할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이 후보는 병풍의 여파를 이기지 못했다. 2002년 12월 19일 대선 결과는 노무현 48.91%, 이회창 46.59%였다. 의혹을 제기했던 김대업 씨는 검찰 출석을 거부하다 대선이 끝난 뒤인 2003년 1월 검찰에 다시 출두했고, 법원은 명예훼손, 수사관 사칭, 무고 등 혐의를 인정해 김 씨에게 징역 1년 10개월을 선고했다.



2007년 : ‘무혐의’ BBK 수사…민주, 기록적 참패



2007년 대선을 흔든 이슈는 이명박 후보의 이른바 ‘BBK 의혹’이었다. 첫 의혹 제기는 당내 경쟁자였던 박근혜 후보 측에서 시작했다. 최경환 당시 박 후보 캠프 상황실장은 2007년 6월 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후보가 사실상 BBK 공동대표”라고 주장했다. 이후 이 후보 측은 박 후보 측을 검찰에 고소했고, 검찰은 고소 취하 이후에도 “국민이 궁금해하는 의혹을 풀어 줘야 한다”며 수사를 강행했다.

한나라당 경선 이후엔 대통합민주신당이 네거티브 공세를 이어갔다. ‘정권 심판론’이 거셌던 당시 대선에서 ‘BBK 의혹’은 이명박 대세론을 저지할 최후의 카드로 꼽혔기 때문이다. 여야는 BBK 사건 관련 국정감사 증인 채택 문제로 충돌했고, BBK 사건 핵심 인물인 김경준 씨가 대선 30일여 일을 앞두고 국내로 송환되면서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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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대선을 이틀 앞두고 대통합민주신당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2001년 광운대학교 강연에서 "BBK를 설립했다"고 발언한 동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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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2주 전 발표된 검찰의 수사 결과는 ‘무혐의’였다. 검찰은 “이 후보가 주가조작·횡령에 가담한 증거가 없다”면서 “주식회사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증거도 없다”고 발표했다. 당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측은 검찰 수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며 공세를 이어갔으나,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선 결과는 이명박 48.67%, 정동영 26.15%로, 민주당 계열 정당의 사상 최대 참패였다.

당시 선거 결과를 두고 현재 여권에서도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네거티브에 매몰돼 스스로 무너졌던, 실패한 선거 캠페인”(민주당 중진 의원)란 평가가 나온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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