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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데스크 칼럼] 반기업정서를 부추기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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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올 3월 국내 대표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의 회장을 맡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반기업정서가 왜 생겼는지 원인을 파악해보자는 것이다.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반감이 크면 결국 기업에 대한 규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언제부터 기업과 기업인을 싫어하게 됐는지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0년대말, 1950년대에도 기업에 대한 반감이 컸을 정도로 반기업정서의 뿌리는 깊다. 대기업을 싫어하는 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실시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대기업을 ‘매우’ 또는 ‘꽤’ 신뢰한다는 비율은 각각 7%와 12%에 불과했다.

기업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제품을 생산한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일자리는 우리 자부심의 가장 큰 원천 중 하나이며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기업에 대한 반감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김수한·이명진 고려대 교수가 쓴 ‘한국사회의 반기업문화’는 사람들이 기업과 기업인을 싫어하게 된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봤다. 하나는 기업과 기업인이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특혜를 누렸던 점이다. 이승만 정부는 한국전쟁의 복구과정에서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줬고, 이후 박정희 정부와 군부 통치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특혜로 성장한 기업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기업과 기업인을 신뢰하지 않았다.

또 하나는 국가와 정치세력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기업정서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한 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권의 목표를 달성하고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재벌정서를 조장하고 이용했다. 김영삼 정부 때도 전 정권에서 성장한 기업인에 대한 ‘단죄’가 이뤄졌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대기업이 지목돼 많은 기업이 퇴출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뇌물을 준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아 수감됐지만, 지금은 대기업이 과거처럼 정권과 유착해 특혜를 누리기 힘든 세상이 됐다. 그러나 정권 교체 후 전 정권과 가까웠던 기업과 기업인을 처벌하고 지지자를 결집하기 위해 반기업정서를 이용하는 ‘전통’은 문재인 정부까지 이어졌다.

김 교수와 이 교수는 “국가와 지배적 정치세력은 한국인의 마음속에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반감을 심어주는 역할을 했다. 모든 정권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과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 및 기업가와 의도적인 갈등과 타협을 반복했다”고 했다.

기업이 존속하려면 사회 구성원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데, 반기업정서는 신뢰를 깎아먹는 주범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정치권 등 특정 세력이 반기업정서를 더는 이용하지 않길 기대하는 것보다 스스로 변하는 게 빠를 것이다. 고려대 한국사회연구소와 한국리서치가 2012년에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기업이 수익환원, 고용, 윤리경영, 동반성장 등의 책임을 다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반기업정서 해소를 위해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는 최태원 회장이 어떤 해답을 들고나올지 주목된다.

전재호 산업부장(je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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