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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빅데이터로 최적치료 길 찾고 AI가 신약후보 옥석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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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사이언스 리포트]〈3〉빅데이터-AI가 바꿀 미래의학

동아일보

그래픽=강동영 기자 kyd1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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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한 병원에서 뇌경색 진단을 받아 대형 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환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환자의 가족은 상당히 분주해지게 된다. 무엇보다 대형 병원에 제출할 의료 기록을 모두 챙겨야 한다. 한 가지라도 빠뜨리면 다시 병원에 와야 할 수도 있다.

이르면 2, 3년 안에 이런 불편이 어느 정도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저장 공간인 클라우드에 환자 임상 데이터와 유전체 데이터, 개인 건강 기록 등을 저장해놓고 어느 병원에서든 꺼내 쓸 수 있는 시스템이 깔리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 중복 처방과 중복 검사도 크게 줄어 진료비도 아낄 수 있다. 이런 시스템은 고려대의료원이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다. 정부 과제로 시작했지만 별도로 수백억 원을 투입했다. 개발 인력을 포함해 70여 명이 2년 동안 시스템 개발에 매달렸다. 클라우드 기반 정밀의료병원정보시스템(P-HIS)이다.

○ 정밀의료병원정보시스템으로 의료정보 통합

병원마다 병원정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사용하는 시스템은 다르다. 이 때문에 A병원에 저장된 환자의 의료정보를 B병원에선 바로 꺼내 쓸 수 없다.

하지만 여러 병원이 클라우드 기반 P-HIS를 사용하면 이런 불편이 사라진다. 표준화 작업을 통해 시스템에 사용되는 용어와 코드를 통일하기 때문이다. A병원에 저장된 환자의 임상 데이터와 유전체 데이터, 개인 건강기록까지 B병원에서 쉽게 꺼내 쓸 수 있게 된다.

추가로 환자들은 휴대 단말기 등을 통해 수년 동안의 진료 이력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는 이 시스템이 적용된 고려대의료원의 데이터만 가능하다. 하지만 향후 다른 병원에 이 시스템이 적용되면 그 병원의 데이터까지 한꺼번에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P-HIS는 정밀 의료를 위한 일종의 플랫폼이다. 블록을 끼워 넣듯 여러 소프트웨어를 장착하면 활용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가령 응급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면 응급 환자의 상태를 병원 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이버 닥터’가 암이나 용종에 대해 조언해주는 소프트웨어를 착용하면 질병 예방에 활용할 수도 있다.

환자 데이터는 보안 시스템으로 철저히 보호된다. 프로젝트 책임자인 이상헌 고려대 P-HIS개발사업단장(안암병원 재활의학과 교수)은 “보안시스템 전문인력이 24시간 대기해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외부의 전문기업과 협업해 신뢰해도 된다”고 말했다.

클라우드 기반 P-HIS 도입 사업은 순항 중이다. 4월 고려대 안암병원에 처음으로 이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어 7월 고려대 구로병원, 9월 고려대 안산병원에서도 도입한다. 이어 500병상 규모 이상의 전국 병원에 이 시스템을 확산한다. 이미 몇몇 대학병원은 시스템 도입을 검토 중이다. 고려대의료원 내에 이 사업을 담당할 벤처기업도 만들었다.

○빅데이터 구축 작업에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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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스템을 도입할 때의 장점은 또 있다. 병원의 모든 의료 데이터를 표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작업이 어느 정도 완료되면 이른바 의료 빅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이 단장은 “환자들이 개별적으로 얻는 편의는 이 시스템으로 얻는 이점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 시스템을 통해 여러 병원의 의료 데이터를 표준화하면 개인별로 맞춤형 정밀 의료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표준화 작업을 통해 확보한 의료 빅데이터에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하면 환자의 상태에 맞는 최적의 맞춤 치료법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이 사업이 정부의 국책 프로젝트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병원의 참여가 저조하다면 의료 빅데이터 확보는 불가능해진다. 이에 대해 이 단장은 “국내 대형 대학병원 10곳의 데이터만 확보해도 전체 질병 데이터의 30% 정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단장은 또 “5년 이내에 질병별로 국내 환자의 40∼50%까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환자들에겐 어떤 이익이 돌아갈까.

무엇보다 전국 병원의 데이터를 토대로 환자 유형별로 최고의 치료법을 도출할 수 있다. 치료 성적이 대폭 좋아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질병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사전 검사 비용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가령 현재 50만 원 수준인 유전체 검사 비용은 5년 후 20만 원 선으로 떨어질 것으로 이 교수는 예상했다.

○개인에게 맞춘 정밀의료도 가능해져

손장욱 고려대의료원 AI센터장(안암병원 감염내과 교수)은 “빅데이터와 AI 기술이 결합하면 의료환경은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손 센터장은 당뇨병 환자의 경우 몸에 장치 하나만 부착하면 모든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혈당이 어떻게 변하는지, 조절이 안 되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차원을 넘어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 상태인지도 AI가 파악해서 알려준다는 것이다. 손 센터장은 “혈당, 혈압, 심부전 등의 분야에서 가장 먼저 이런 시스템이 일상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 센터장은 규제가 완화되고 기업들의 투자가 활발해진다면 3∼5년 내에 이런 식의 개인 맞춤형 의료 장비가 일상화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P-HIS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경우 AI 활용도는 더욱 커진다. 국가 전체의 질병 지도를 만들고 효과적인 예방법까지 도출할 수 있게 된다. 유전자나 생활 습관을 분석하면 어떤 사람이 질병에 더 잘 걸리는지도 예측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부분적이나마 이런 형태의 대규모 연구를 진행했다. 미국과 달리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정착돼 있는 한국에서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게 손 센터장의 설명이다. 이 연구를 강화하기 위해 고려대의료원은 8월 서울 정릉에 문을 여는 메디사이언스파크에 의료 빅데이터와 AI를 관리하고 연구하는 센터를 따로 운영하기로 했다.

○AI 이용해 신약도 개발

손 센터장은 “의료 빅데이터와 AI 기술의 발전은 환자 개인뿐 아니라 산업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활용해 신약을 개발해 글로벌 시장으로 가려는 벤처 기업도 늘어난다는 분석이다. 실제 AI 기술을 활용해 신약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최준 고려대 안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도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와 공동 연구를 통해 신약 개발을 위한 플랫폼을 만들었다.

최 교수팀은 먼저 문헌 조사를 통해 난청 치료에 효과가 있는 후보 물질 4000여 개를 선별했다. 이를 다시 분석해 400여 개로 줄였고, 최종 60개로 압축했다. 하지만 60개의 물질 중에서 어떤 것이 실제 효능이 가장 좋은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때 AI 딥러닝 기술을 활용했다. 동물 실험,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여부 등 국내외 데이터를 학습한 뒤 AI가 순위를 매겼다. 현재 최 교수는 상위 30여 개의 후보 물질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이 중 하나의 후보 물질에서 효과가 높게 나타나 신약 개발 가능성이 커졌다.

최 교수는 “신약 개발은 15년 정도 걸리지만 AI 기술을 활용하면 절반 혹은 3분의 1 정도로 줄일 수 있다. 더불어 개발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최 교수의 경우에도 AI가 후보 물질 랭킹을 매겨준 덕분에 전체 연구 기간의 3분의 1 정도를 줄였다.

최 교수는 “신약 개발에 AI 기술을 활용하면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다”며 “우리가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동아일보-고려대의료원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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