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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타당 vs 과도" 위험한 콜라보 규제 갑론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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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영 기자]

구두약 초콜릿, 딱풀 사탕, 우유 같은 바디워시…. 앞으로는 도 넘은 콜라보 제품을 보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지난 1일 식품이 아닌 제품을 식품처럼 표시·광고하는 것을 막는 개정안이 발의돼서다. 식약처는 논란이 이어지는 만큼 규제 도입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업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조심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과도한 규제"란 볼멘소리도 나온다. '펀 마케팅'은 정말 수위가 높아야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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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이 아닌 제품을 식품처럼 표시·광고하는 것을 막는 법안이 추진된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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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가에서 식품업체와 비식품업체가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내는 건 흔한 일이다. 소비할 때 재미를 추구하는 펀슈머(fun+con sumer)를 잡기 위한 펀 마케팅의 일환인데, '치킨과 슬리퍼' '밀가루와 패딩' '초콜릿과 화장품' 등 흥미로운 결합 사례는 숱하다. 하지만 재미의 반대편에선 그림자도 짙어졌다. 괴상한 콜라보 제품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콜라보 수위'에 경고등이 켜진 건 지난 2~3월이다. '딱풀' 모양을 본뜬 사탕, 유성매직 모양의 음료수, 구두약과 비슷한 원형 캔에 든 초콜릿 등의 제품이 출시되자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때 문제가 제기된 제품 대부분은 시중에서 판매되지 않았지만 '무리수' 콜라보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패키지 디자인을 우유갑과 흡사하게 만든 바디워시 제품과 소주병 모양의 방향제가 나오면서다.

펀슈머를 타깃으로 한 제품이지만 정작 소비자가 웃은 것만은 아니었다. "식품처럼 생긴 화학제품을 어린이 등 취약계층이 식품으로 착각하고 먹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 탓이었다.

결국 국회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규제의 칼을 빼들었다. 논란이 이어지자 과도한 콜라보 제품 출시를 막고 나선 거다. 지난 1일 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김성주 의원은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이하 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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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자는 '식품이 아닌 상호·상표·용기 또는 포장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을 사용해 물품을 오인·혼동할 수 있는 표시 광고'를 금지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기준이나 제품군 등은 정하지 않았다.

식약처는 향후 공청회를 열고 업계와 전문가의 입장을 모아 세부 규정을 마련할 예정이다. 김성주 의원은 "소비자를 배려하지 않는 과도한 펀슈머 식품은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될 소지가 있다"며 "개정안을 통해 무분별하게 출시되는 펀슈머 식품을 향한 경각심을 고취하고, 국민의 건강과 식생활 안전을 보호하고자 한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국회가 규제 법안을 내놓은 게 처음은 아니다. 논란이 한창이었던 지난 3월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이 '김성주 발의안'과 유사한 내용의 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을 먼저 발의했다. 인지 능력이 낮은 어린이 등이 '구두약·목공풀·손세정제 등을 먹을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도록 식품에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생활화학 제품을 표시·광고하는 걸 금지하는 법안이었다.

콜라보 제품은 아니지만 식품과 유사한 화학품의 제재에 나선 사례도 있다. 최근 식약처는 8월 1일부터 의약외품인 외용소독제에 식품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있는 용기나 포장 사용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뚜껑 달린 파우치 용기'에 담긴 소용량 손소독제는 앞으로 판매할 수 없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음료수나 마시는 젤리 중에 뚜껑 달린 파우치 용기에 담긴 제품이 많아 착각할 수 있어서다.[※참고: 다이어트용 곤약젤리, 아이스크림 '설레임' 등의 용기가 뚜껑 달린 파우치다.] 실제로 2020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외용소독제 관련 사고 중 11건이 소독제를 삼킨 경우였다.

유통업체들은 도 넘은 콜라보 제품을 향해 쏟아지는 지적을 수용하면서도 억울하다는 입장도 토로하고 있다. 식품업체 한 관계자는 식품이 아닌 콜라보 제품을 두고 "겉면 색상이나 디자인을 식품과 유사하게 만드는 것이지, 패키지 자체가 다르고 이중삼중으로 마개를 달기도 한다"며 "식품이 아닌 제품에는 '먹지 말라'는 경고 문구를 눈에 띄게 넣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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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유 바디워시'처럼 식품을 닮은 화학제품만 위험한 게 아니다. '딱풀 사탕'처럼 식품에 화학제품 패키지를 입히는 경우도 안전하지 않다. 어린이 등이 실제 화학제품을 보고 '먹어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다. 게다가 과도한 콜라보를 해야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것도 아니다. '괴상함'보단 '흥미로움'에 초점을 맞춘 콜라보 제품 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건 이종異種 콜라보 붐을 일으킨 대한제분이다.

이 회사는 '밀'이라는 재료를 이용한 맥주, '하얀색'을 차용한 화장품·패딩, '밀가루 포대' 모양을 담은 공책 등 곰표 밀가루의 이미지와 특성을 살린 콜라보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20년 11월 모나미와 동화약품의 콜라보도 벤치마킹할 만하다.

당시 모나미 153볼펜에는 활명수의 상징인 초록색을, 450mL 대용량 활명수에는 153볼펜의 상징인 흰색과 검은색을 적용했다. 재미와 디자인, 의미를 모두 담은 콜라보 제품이었다. [※참고: 다만 모나미가 지난 2월 GS25와 출시한 '매직 스파클링' 음료수는 패키지가 지나치게 유성매직과 흡사한 탓에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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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등 취약계층은 식품과 유사한 생활화학 제품을 착각하고 섭취할 위험이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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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이번 콜라보 규제 움직임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재미가 소비의 중요한 기준이 된 지금은 콜라보 자체를 막을 순 없다"며 "다만 업계서도 비식품을 식품과 지나치게 똑같이 만드는 건 지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가 기업이 펀 마케팅을 할 때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시월 건국대(소비자정보학) 교수는 "제품의 기준을 세분화하면 기업에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고, 세밀한 마케팅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이라며 "안전이 보장돼 소비자 후생 면에서도 장기적으로 낫다"고 설명했다.

심지영 더스쿠프 기자

jeeyeong.shi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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