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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층별 해체계획 없는데 '적합'···그 건물 철거 계획 엉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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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별 해체계획 빠져…작업자 임의 판단 가능성



“해체계획서 자체가 부실” 층별 철거계획 빠져



중앙일보

11일 오전 광주 학동 재개발지역 철거건물 붕괴 사고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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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참사와 관련 무너진 건물의 해체계획서가 하자 투성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안전한 철거를 담보하기 위해 층별 철거 계획과 장비 투입·동선, 타격 및 철거 지점 등을 명시해야 하지만 해당 계획서엔 중요 요소가 빠져있었다. 부실한 계획서 탓에 현장 작업자가 임의적 판단으로 철거를 진행했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1일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이 확보한 ‘학동 4구역 철거 허가 건물 철거공사 계획’ 발췌본에 따르면 이번에 붕괴된 건물은 지난달 10일 A건축사로부터 안전성과 철거 계획이 모두 ‘적합’한 것으로 기재됐다. 건물 도면과 벽면 강도, 외벽을 어떤 순서로 철거할 것인지도 기재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층별 해체 계획은 부실했다. 국토교통부의 건축물 해체계획서 지침에는 해체 순서별 안전성을 포함, 철거 진행과정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과거 작업장 사진 버젓이 기재…검토는 “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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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17명 사상자 낸 광주 재건축 건물 붕괴사고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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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기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는 “이번에 붕괴된 건물은 해체계획서부터가 잘못됐다”며 “굴착기가 적재물에 올라 상층부(3층~5층)를 철거하고, 나머지 하층부(1층~2층)를 해체한다는 일반적인 공법에 대한 설명만 있을 뿐 층별 철거계획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어 “안전한 건물 철거를 위해서는 층별 건물 도면에 장비 투입 방향과 타격 지점, 구조안전계획을 별도로 작성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굴착기 기사 등 현장 작업자의 임의 판단에 의해 작업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체계획서에는 실제 철거할 건물 사진이 아닌 기존 공사장 사진으로 작업 계획을 작성했는데, 계획서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광주시 동구청 확인 결과 해당 업체는 철거 순서를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계획서상 철거업체는 건물 5층 최상층부터 철거를 시작해 순차적으로 하향식 해체작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붕괴 건물 인근 주민들의 증언과 현장 사진 등을 살펴보면 상층부가 아닌 건물 중간부터 철거작업이 진행된 정황이 확인되고 있다.

건물 중간부터 해체된 탓에 건물 하층부가 상층부 하중을 못 이겨 도로를 향해 무너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구청도 감리업체가 현장을 관리하지 않는 상태에서 철거 업체가 규정을 어기고 하층부터 철거를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향식 철거 원칙 어기고 밑둥부터 건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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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중앙일보가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붕괴 건물의 해체계획서. 이 문서에 후면이 아닌 좌측벽부터 먼저 철거해야 한다는 시공업체의 설명이 담겨있다. [사진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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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벽 철거 순서도 계획서와 달랐다. 애초 건물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좌측→후면→정면→우측 순서로 철거해야 했지만 철거업체는 후면 벽부터 철거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전면부가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경찰은 건물 붕괴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이날 공사 관계자 등 14명을 조사한 결과 일부 혐의가 확인된 공사관계자 등 4명을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하고 출국 금지했다.

경찰은 건설산업기본법상 재하도급 금지 규정 위반 여부 및 시공사와 조합, 그리고 철거업체 간 계약 과정에서의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파악할 방침이다. 철거기업의 재하도급 여부도 수사 대상이다. 재하도급은 원청에서 하청으로 계약이 중복되면서 2~3차로 계약한 업체들이 공사비용을 아끼기 위해 부실공사를 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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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 건물 붕괴 사고 현장에서 붕괴된 건물에 매몰됐던 45인승 시내버스가 대형 트레일러에 인양되고 있다. 해당 버스는 소속 회사인 대창운수 차고지로 이송될 예정이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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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관계자는 “감식결과와 압수자료 분석 등을 통해 철거계획서에 따라 철거가 됐는지, 공사관계자들이 안전관련 규정을 준수했는지 따져보겠다”고 했다.

광주광역시=최종권·진창일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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