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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영화 ‘쿠사마 야요이:무한의 세계’…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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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라이프

자신의 시그니처 도트 무늬로 스프레이 페인팅을 하고있는 쿠사마 야요이


죽어가던 나오시마를 예술 섬으로 만든 방파제 위의 노란 호박. 검정색 점이 무수히 찍힌 거대한 호박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지만 정작 대중은 작가 ‘쿠사마 야요이(92세, Kusama Yayoi)’의 실체는 잘 모른다. 작품가가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전 세계 모든 대륙에서 판매되는 유일한 작가, 여성 아티스트 역대 경매가 1위, 미술 전시 세계 최다 관람객 동원. 영화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는 트라우마, 성차별과 인종의 편견을 깨뜨린 현대 미술 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독보적인 작품 스타일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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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예술계에 존재하는 오래된 편견과 억압의 상징, ‘여자’, ‘동양인’. 하물며 1960년대라면 말해 무엇 할까.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유명한 작가 쿠사마 야요이는 지금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예술가다. 쿠사마 야요이의 명작 ‘호박’, ‘무한 그물’, ‘무한 거울의 방’ 시리즈부터 92세의 나이에도 건재한 모습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근래의 모습까지, 현존 최고의 아티스트 쿠사마 야요이의 삶과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는 다큐가 개봉했다.

제34회 선댄스영화제와 제4회 크리틱스초이스 다큐멘터리어워즈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 및 노미네이트되고 로튼토마토 신선도 94%, 팝콘 지수 92%를 기록한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가 바로 그것. 쿠사마 야요이 하면 떠오르는 스테디셀링 작품들을 비롯해 초기 회화, 설치 미술, 해프닝까지 어느 갤러리에서도 한번에 만나보지 못할 작품을 ‘쿠사마 야요이’라는 위대한 도슨트의 목소리로 만나볼 수 있다.

▶쿠사마 야요이 “죽지 말고 끝까지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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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관객은 ‘무한 거울의 방’을 보기 위해 몇 시간째 줄을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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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의 뉴욕 미술계는 여성 아트 딜러조차 여성 작가의 작품을 꺼릴 만큼 서양 남성 작가가 업계의 주를 이루던 시절이었다. 1960년대 후반, 쿠사마 야요이는 설치 미술을 시작으로 영화, 행위 예술 등에 ‘무한성’을 접목, 마침내 그 유명한 ‘호박’으로 정점을 찍지만, 1960년대, 앤디 워홀과 클래스 올덴버그 등 유명 남성 작가에게 아이디어를 뺏기고, 지원마저 끊기자 고국으로 돌아온다. 1989년 뉴욕에서 열린 ‘쿠사마 야요이: 회고전’을 기점으로 큰 성공을 거둔 쿠사마 야요이의 75달러짜리 작품은 이제 75만 달러에 팔리고 있고, 관객들은 ‘무한 거울의 방’에 들어가기 위해 몇 시간째 긴 줄을 선다. “죽은 전시가 죽은 미술을 소개하는 동안 살아있는 작가들은 죽어간다”며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알몸 시위를 벌이던 젊은 쿠사마는 90대가 된 지금 병원과 작업실을 오가며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영화는 두 번의 자살 시도와 함께 유명 작가 조지아 오키프에게 편지를 쓰는 당돌함, 기모노에 달러를 숨긴 채 입국해 뉴욕 미술가에 자신을 당당히 알리는 패기도 보여준다. 자신을 압도하는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반복적인 점과 그물을 그리며 극복하고, 최초의 동성애자 결혼식과 반전운동을 기획하며, 전위적인 행위예술 누드 퍼포먼스로 보수적인 미술계에 돌을 던지는 젊은 작가로서의 모습도 함께 말이다. 쿠사마 야요이를 ‘땡땡이 무늬를 많이 그리는 미친 작가’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들에게 영화는 ‘유명하지만 아무도 몰랐던 그녀’를 제대로 보여준다. 상처를 작품으로 탄생시키며 자신을 위로한 쿠사마 야요이는 영화 속에서 “이제 예술의 힘을 활용하여 세상을 더 평화로운 곳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쿠사마 야요이 “전 결국 저의 심리적 문제들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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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억 원에 팔린 쿠사마 야요이 ‘무한그물Infinity Nets(GKSG)’(사진 제공 서울옥션), 2013년 자신의 고향인 나가노현 마쓰모토 시립미술관에 전시된 쿠사마 야요이의 물방울 무늬 꽃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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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마 야요이는 아버지의 외도라는 어릴 적 트라우마와 강박에서 영감을 받은 ‘점’과 ‘반복’을 모티브 삼아 ‘집적: 1,000척의 배’ 등 수많은 명작을 탄생시켰다. 무한한 그물을 10m가 넘는 캔버스에 그린 ‘태평양’, 남근을 형상화한 ‘Arm Chair’ 등도 그중 하나. 작품 ‘호박’에서 쿠사마 야요이는 자신의 강박적 집착을 표현한 점을 반복, 이를 호박의 표면에 가득 메움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한다. 영화를 통해 쿠사마 야요이의 레전드 명작들 중 인기 돌풍을 일으켰던 ‘호박’을 비롯해 제주 본태 박물관에 전시된 ‘무한 거울의 방’, 그리고 ‘무한 그물’ 등 모두가 알고 있는 유명 미술품을 비롯,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초기작들까지 77분 동안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지난해 한국에서 3분기 국내 미술품 경매 낙찰가 해외 아티스트 1위를 기록한 그녀는 뉴욕 현대 미술관과 휘트니 미술관, 프랑스 파리 퐁피두 센터와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등 전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개최 중이다. 초창기부터 현재의 작품까지, 어느 갤러리에서도 마주하지 못할 작품 리스트뿐만 아니라, 고군분투했던 예술가로서의 고뇌와 서양 남성 위주의 현대 미술계에서 동양인 여성 아티스트로 살아남기까지의 과정이 극적으로 등장한다. 강박과 트라우마마저 예술로 승화시킨 비하인드 스토리를 영상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글 박찬은 기자 사진 오드(AUD), 매경DB,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83호 (21.06.1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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