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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일)

이슈 5세대 이동통신

한국 ‘세계 첫 5G’…그 위 달릴 콘텐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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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콘텐트 등 SW경쟁력 부족

LTE 때도 구글·넷플릭스 등만 수혜

“도로 깔아놨더니 수입차만 달리는 꼴”

전문가 “AI 등 표준특허 확보해야”



코어테크가 미래다 ③ 5G



2월 23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자율주행 기술 기업인 ‘모셔널’이 개발한 차량이 등장했다. 이날 모셔널은 운전자 없이 교차로를 통과하고, 비보호 좌회전을 하는 등 성공적으로 시험주행을 마쳤다. 시장에선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모셔널은 현대자동차와 미국 앱티브가 합작 투자한 회사다.

현대차가 미국에서 자율주행차 시범 주행을 한 것은 국내에서 ‘두 가지 장벽’에 가로막혀서다. 국내에선 규정상 운전석에 반드시 운전자가 탑승해야 한다. 미국은 ‘무인 자율주행’ 테스트를 허용하고 있다. 덕분에 미국에선 모셔널 말고도 크루즈(GM), 웨이모(구글), 오토X(알리바바) 등이 무인주행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또 다른 이유는 기술적 한계다. 익명을 원한 한 자율주행차 전문가는 “국내에는 현대차와 함께 세계무대로 진출할 만한 수준의 자율주행 전문 기업이 사실상 없다”며 “이것이 한국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5세대(5G) 이동통신 핵심사업의 현주소”라고 진단했다.

전문가의 한국 5G 산업 강·약점과 위협·기회요인(SWOT) 분석 결과는 인프라 경쟁력 확보, 서비스·콘텐트 열세로 요약된다. 〈그래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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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5G 산업의 위협과 기회 요인.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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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천(KAIST 명예교수) 영국 러프버러대 교수는 “모든 5G 비즈니스 영역이 ‘디지털 플랫폼 혁명’으로 가고 있다”며 “서비스나 콘텐트에서 성공 모델이 나오지 않으면 LTE 때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문 교수가 말하는 ‘LTE 실패’는 세계 최고의 인프라를 보유하고도 국내시장에서조차 구글·넷플릭스 등 외국계 플랫폼 기업이 오히려 혜택을 받은 전례를 가리킨다. “고속도로(통신망) 깔아놨더니 수입차(해외 플랫폼)만 달린다”는 비유가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대외 환경은 더 치열해졌다. 미국과 중국이 통신기술을 중심으로 노골적으로 패권 경쟁에 나서고 있어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월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 공급망 확보에 관한 행정명령’ 구현을 위한 법안을 발효했다. 북한·중국·러시아·이란·쿠바·베네수엘라를 적국으로 규정한다는 내용이다.

연원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사실상 중국의 모든 ICT 기업이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된 것”이라며 “한국으로선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시험대에 선 것이기도 하다. 중국은 중국판 뉴딜인 ‘양신일중(兩新一重)’ 계획에 따라 2025년까지 10조 위안(약 1700조원)을 5G와 인공지능(AI)·산업인터넷 등 7대 인프라에 투입하고 있다. 연 부연구위원은 “이 같은 막대한 투자와 미·중 간 기술 경쟁은 국내 기업에 커다란 위협요소”라고 말했다.

미·중 패권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코어테크’(핵심 기술) 확보가 필수적이다. 한국은 5G 표준특허 분야에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다. 김동구 5G포럼 집행위원장은 “5G에 접목되는 인공지능(AI)·위성·방송·센싱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코어테크를 확보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정부는 글로벌 표준에 한국 기술이 도입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중 경쟁 속에서 한국이 ‘고슴도치 전략’을 구사하기 위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슴도치 전략이란 강대국이 자국도 피해를 볼 수 있어 공격을 주저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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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5G 표준특허 승인 비중.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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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현실은 정반대다. 기술 생태계도 열악하지만 정부의 ‘엇박자 행정’과 규제 환경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대표적인 게 자율주행차 기술 방식 논란이다. 국토교통부는 와이파이 기반의 근거리전용통신(DSRC) 방식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5G 기반의 차량사물셀룰러통신(CV2X) 방식을 각각 적용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CV2X를 표준으로 삼고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글로벌 동향에 맞지 않는다면 신속하고 과감하게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핑퐁 행정’도 여전하다. 2018년 국내 기업이 만든 가상현실(VR) 영화 ‘화이트 래빗’이 칸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이 작품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브로 만든 체험형 VR 영화인데, VR헤드셋 같은 장비를 착용하고 시청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극장에서는 개봉하지 못했다. 컴퓨터에서 구동된다는 이유로 ‘게임’으로 분류돼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 심의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신(전 청와대 미래전략수석) 연세대 교수는 “대부분의 신사업은 기존 산업군과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이런 갈등을 조정하기는커녕 증폭시키는 꼴”이라며 “특히 새로운 서비스를 시도하자 전 사회적인 비난이 쏟아졌던 ‘타다’ 사건 이후 ‘안전한 창업’만 하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미국과 중국은 멀찌감치 앞서가고 있다. 특히 두 나라는 5G 콘텐트를 제작·소비할 수 있는 플랫폼을 선점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 바이트댄스가 운영하는 ‘틱톡’은 전 세계 9억 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에는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로블록스’가 있다.

김경진·권유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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