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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밖에선 굶는데 뷔페상 차린 격"···미국 12세 접종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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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규의 아하, 아메리카]

미국 CDC 승인, 12~15세 접종 시작

다른 나라 성인 접종보다 급한지 의문

효과 불투명해도 백신 기부 中과 대조

중앙일보

13t세의 헥터 가르시아가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에 마련된 접종소에서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맞고 있다.[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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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5세도 백신 접종 가능. 지금 예약 접수. 현장 방문 접종도 가능."

13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에 있는 약국 체인인 CVS 매장 앞에 새로운 푯말이 붙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전날 화이자-바이오엔테크의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수 있는 연령을 12세 이상으로 확대하라고 권고하자마자 청소년 대상 접종을 시작했다.

로셸 원렌스키 CDC 국장은 이 결정을 발표하면서 "의료 종사자들이 이 연령대 인구에 백신 접종을 곧바로 개시해도 좋다고 권고한다"고 알렸다.

이날 고등학생 아들과 접종소를 찾은 리즈 크루스는 "학교에 보내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컸다"면서 "CDC 발표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곧장 접종하러 찾아왔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12세~15세면 미국에선 7~10학년, 한국으로 따지면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정도다. 미국 내 1700만 명 정도며, 전체 인구의 5.3%를 차지한다.

청소년에 대한 백신 접종이 미국 사회 전체의 정상화를 앞당길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학생들이 등교하게 되면서 공교육이 정상화되는 것은 물론, 집 안에서 아이들을 돌보느라 손발이 묶였던 학부모들 역시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될 거란 이야기다.

어메시 아달자 존스 홉킨스 보건안전센터 박사는 뉴욕타임스(NYT)에 "어린이들은 일반적으로 코로나19에 걸려도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하지 않는 게 사실이지만, 백신을 맞을 수 없어 방역에 혼란을 빚어 왔다"면서 "이 연령대에 접종이 시작되면서 정상 생활로의 완전한 복귀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이유로 백신 사용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NYT는 전했다.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청소년에게 놔줄 정도로 충분한 백신이 있다면, 절체절명의 상황에 있는 다른 나라에 먼저 나눠주는 게 옳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그동안 미국 정부와 방역전문가는 글로벌 백신 공급을 두고 비행기 내 산소마스크에 자주 비교했다.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미국이 먼저 산소마스크를 써 호흡을 확보한 뒤 다른 나라에 마스크를 씌워 주는 게 맞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성인의 절반 이상이 1회 이상 백신을 접종한 상황에서 12세 이상 청소년용으로까지 백신을 확보해 두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이런 백신 공급 상황을 두고 크레이그 스펜서 콜롬비아 의대 박사는 "바깥의 사람은 굶주리고 있는데, 뷔페 상을 차려 놓고선 또 음식을 가져와 냉장고에 넣어두는 격"이라고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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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시데스 윌리엄스(13)는 지난 14일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을 마친 뒤 이를 입증하는 '파우치 아우치'라는 스티커를 받아 가슴에 붙이고 있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을 모티브로 만든 스티커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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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미국 내 '백신 불신'도 문제다. 최근 카이저패밀리 재단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 아이에게 코로나19 백신을 맞히지 않겠다"거나 "학교 차원의 지시가 있어야 맞히겠다"고 응답한 학부모가 40% 이상이었다.

당장 방역 당국이 각 주의 일선 학교에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라고 지시할 수도 없다. 현재 화이자 백신이 미 식품의약국(FDA)과 CDC로부터 승인받은 것은 긴급 사용 허가다. 정식 사용 허가를 받기까지는 앞으로 몇 달이 더 걸릴 수 있다. 따라서 이때까지는 혹시 모를 문제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학교들이 화이자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지 않을 거란 전망이 많다.

이런 문제로 인해 12세 이상 청소년을 위해 마련한 백신이 사용되지 않고 쌓여있게 되면 미국 정부 입장에선 큰 부담이다.

특히 한번 초저온 냉동고에서 꺼낸 화이자 백신의 유통기한은 단 5일이다. 현장에 배포됐다가 대량 폐기되기라도 하면, 국제사회의 눈총은 더 따가워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행동을 서두르게 하는 것은 중국이다. 미국이 자국민 우선주의를 취하고 있는 동안, 중국은 개발도상국 위주로 1330만 회 분량의 시노팜 백신을 기부했다.

지난달 말에는 시노백과 캔시노 등 중국 백신 생산업체들이 "세계적인 백신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백신 기술을 이전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며 선수를 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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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기부한 코로나19 백신이 군용기를 통해 지난 12일 방글라데시 다카로 옮겨지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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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두고 영국의 경제 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들이 백신 외교전에서 중국과 러시아에 밀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백신의 효과에는 의문이 제기되지만, 외교적인 효과는 분명한 셈이다.

13일 디 애틀랜틱은 "미국이 국제사회의 요청을 질질 끌수록 위험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미국의 백신 민족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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