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전 세계가 "통화 좀" 매달렸다…연봉 236억 '백신 대통령'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후후월드]

중앙일보

앨버트 불라 화이자 CEO가 2019년 1월 화이자 창립 170주년 기념 행사에서 직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페이스북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새벽 3시에 전화 벨이 울린다. 이스라엘에 사는 N이다. 이렇게 N의 전화는 서른 차례나 이어졌다. 유럽의 V는 한 달째 문자다. 정말 집요하다. 일본 S는 아랫사람까지 동원해 전화를 걸어온다.

마치 사생팬에 시달리는 어느 스타의 이야기같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런 연락을 받은 이는 앨버트 불라 화이자 CEO(최고경영자, 60)다. N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V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유럽연합) 집행위원장, S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세계 여러 나라가 '화이자 확보전'에 뛰어 들면서 불라 CEO는 세계 지도자들이 앞다퉈 연락하는 상대가 됐다. 아스트라제네카(AZ), 얀센 백신에 혈전 문제가 터지면서 더욱 치열해졌다. "이젠 돈을 싸들고 가도 먼저 구해오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앙일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미국에 있는 화이자 제조 공장을 찾았다. 연단에서 불라 CEO가 연설을 하는 동안 바이든 대통령이 뒤편에서 듣고 있다.[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3월 화이자가 독일 기업 바이오엔테크와 손잡고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 개발에 나섰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전까지 mRNA 백신이 개발돼 상용화 된 적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이자 백신은 개발 시작 9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세상에 나왔다. 미국과 영국에서 긴급 사용이 승인된 최초의 코로나19 백신이 됐다. 임상 예방 효과 95%. 실제로 국민 대부분이나 상당수가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 이스라엘·영국·미국에선 접종 이후 확진자가 눈에 띄게 급감했다. 화이자 백신의 힘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부 돈 거절하고, 중소기업과 손 잡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든 중심엔 불라 CEO가 있다. 화이자는 창사 172년, 임직원이 9만명이나 되는 미국의 '공룡 제약사'. 2019년 1월 화이자 CEO에 오른 그는 취임 약 1년 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20억 달러(약 2조 2000억원) 투입을 즉시 결정했다. 그는 지난 3월 미 포춘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고 결심 이유를 밝혔다.

중앙일보

지난 4월 화이자 벨기에 공장에서 연설하는 불라 CEO. [로이터=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막대한 투자금이 드는데도 화이자는 다른 백신 개발사들과 달리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불라 CEO는 포춘지에 "정부 돈을 받는다면 그들이 간섭하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정부 돈을 받는 순간, 모든 일에 정치적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대신 그는 무명의 중소기업이지만, mRNA 백신 개발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엔테크와 의기투합했다. 불라 CEO와 우구르 사힌 바이오엔테크 CEO는 자주 통화하며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함께하고, 양사의 직원들도 이처럼 자유롭게 대화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줬다고 한다.

불라 CEO는 백신 제조 공정에 필요한 생산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사힌 CEO와 함께 오스트리아의 한 중소기업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회사 내 관료주의를 없애지 않는다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게 그의 경영 철학이다.

중앙일보

개발 돌입 9개월 만에 세상에 나온 화이자 백신.[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 수의사에서 '연봉 237억' 美 공룡 제약사 CEO로



중앙일보

불라 CEO가 2019년 화이자 창립 170년, 뉴욕 증시 상장 7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종을 울리고 있다. [트위터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의 파격 행보는 성과로 돌아왔다. 최근 화이자는 올해 코로나19 백신으로만 260억 달러(약 29조 3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지난 2월초 발표한 당초 전망치보다 73%나 늘어난 액수다. 지난달 중순까지 체결한 계약을 반영하면 올해 팔릴 코로나19 백신은 16억회 분이라고 한다. 백신 매출이 견인해 올해 화이자의 전체 매출액은 725억 달러(약 81조 8000억원)에 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화이자의 평균 연매출은 50조원 정도였다.

12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불라 CEO의 지난해 연봉은 2100만 달러(약 237억원)로, 2019년 1790만 달러(약 202억원)보다 17% 올랐다.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던 불라 CEO는 최근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면제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지난 5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재권에 면제에 찬성하자 이틀 만인 7일 사원들에게 "지재권 면제는 기업들의 의욕을 꺾어 모험을 하지 않게 만들 것"이라는 서한을 보냈다.

중앙일보

불라 CEO가(오른쪽에서 두 번째) 화이자 벨기에 공장을 방문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에게 설명하고 있다.[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뼛속까지 비즈니스맨일 것 같지만, 그는 원래 수의사였다. 또 미국 거대 제약사를 이끌고 있지만, 그리스 도시 테살로니키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며 부모님이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생존자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대 수의학과를 졸업했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리스의 한 대학병원에서 5년간 수의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다. 동물의 체외수정, 인공수정, 배아이식 등이 그의 전문 분야였다.

그러다 34세였던 1993년 화이자에 수의학 기술부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005~2009년 유럽·아프리카·중동 등에서 동물보건부문 사장으로 근무했고, 2009~2010년 유럽·아프리카·아시아태평양 담당 사장을 지냈다. 글로벌 백신 부문 대표와 화이자 COO(최고운영책임자)를 거쳐 연봉 수백억원을 받는 CEO가 됐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자녀 …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중앙일보

불라 CEO가 지난 3월 화이자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트위터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는 작은 나라 태생,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자녀란 성장 환경이 현재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포춘지와의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체포됐지만 살아 남았고, 아버지는 숨어서 살아 남았다"면서 "하지만 그들의 형제와 부모 모두 몰살당했다. 그 사건이 내 정체성을 확립해 줬다"고 고백했다. 이어 "유대인 대학살 때 유대인 인구가 거의 말살될 뻔한 나라에서, 유대인으로 살았던 나는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했으며 사회에서 훨씬 더 융통성 있게 행동해야 하는 생존법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모국 그리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다. 자신의 고향인 테살로니키에 화이자 연구 시설을 세울 계획이다. 그리스 주재 미국 대사로부터 '가장 선구적인 그리스 지도자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가족으로는 12세 연하의 아내 마이리암 불라(48), 아들과 딸이 있다.

하지만 불라 CEO는 적절치 못한 처사로 도마에 올랐다. 그는 지난해 11월 화이자가 백신 임상 결과가 긍정적이라고 밝힌 당일 보유한 자사 주식의 60%를 560만 달러(약 63억원)에 팔아치웠다. CEO가 자사주를 팔기로 한 날에 맞춰 화이자가 임상 결과를 발표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악시오스는 “매각은 완벽하게 합법적으로 이뤄졌지만, 사람들이 보기엔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중앙일보

불라 CEO가 오는 11월 출간하는 책. 9개월 간의 백신 개발 스토리를 담는다고 한다.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2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불라 CEO는 오는 11월 그간의 백신 개발 스토리를 담은 책을 출간한다. 그는 "화이자의 성공이 '운' 때문이 아니라 '용기·탁월함·공정함 ·즐거움' 네 가지 단순한 가치에 의해 주도된 준비'인 점을 되짚어 본다"고 소개했다. 판매 수익금은 모두 기부한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은 『문샷(Moonshot):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9개월 간의 레이스』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 [독자 여러분과 함께 만드는 국제뉴스]

알고 싶은 국제뉴스가 있으신가요?

알리고 싶은 지구촌 소식이 있으시다고요?

중앙일보 국제팀에 보내주시면 저희가 전하겠습니다.

-참여 : jglobal@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