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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백신 생산국’ 인도는 어쩌다 ‘코로나 지옥’ 됐나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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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힌두교 최대 축제 ‘쿰브 멜라’ 치명타

전국서 온 수백만명 뒤엉켰다가 흩어져

감염 급속 확산… 하루 사망자 4000명 ‘훌쩍’

화장장 모자라 주차장·공원·공터 등 활용

지구촌 신규 환자 2명 중 1명은 인도인

치료제 암시장에서 8∼20배 값에 거래

모디 총리 주변 예스맨만… 각종 경고 무시

정부, 1차유행 진정에 샴페인 일찍 터트려

각종 봉쇄 완화하자 국민 경각심도 풀려

세계 최대 백신생산국 불구 1차 접종 10%

5월 지방의회선거 2차 유행 뇌관 지목

마스크 쓰지 않은 수천명 유세장에 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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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코로나19 일일 신규 사망자가 사상 처음으로 4000명대로 올라선 지난 8일(현지시간) 우타르프라데시주 알라하바드의 화장장에서 한 희생자 유가족이 고인을 떠나보내며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 알라하바드=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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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인도에서는 힌두교 최대 축제 ‘쿰브 멜라’가 열렸다. 갠지스강 상류 도시 하리드와르 등 4대 성지에는 힌두교도들이 물밀 듯 몰렸다. 강물에 몸을 담그면 죄가 사라지고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쉬워진다고 믿는 이들은 마스크를 벗은 채 강물에 뛰어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추세여서 정부가 하리드와르 기차역 무정차 통과 조치까지 했지만 4월 12일(현지시간) 310만명, 이틀 뒤에는 135만명이 이곳을 찾았다.

전국 각지에서 온 수백만 명이 한데 뒤엉켰다가 다시 뿔뿔이 흩어진 셈이었다. 이는 코로나19 환자·사망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지난 12일 하루 사망자만 4120명. 인도는 지금 화장장이 모자라 주차장, 공원, 공터 등 곳곳에 임시 화장터를 설치할 정도다.

◆1차 유행 진정세에 섣부른 낙관론

올 초만 해도 인도의 코로나19 상황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었다. 한때 10만명 가까이 치솟았던 일일 확진자 수가 올 2월 1만명 안팎까지 떨어졌고, 중증 환자와 사망자 수도 급감했다. 현지 언론들은 “50분의 1 인구인 미국 뉴욕주와 감염자 수가 비슷해졌다”며 반색했다. 빈민가·젊은 층을 중심으로 이미 집단면역이 형성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부는 일찌감치 샴페인을 터트렸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 화상 연설에서 “인도가 코로나19를 효과적으로 차단해 인류를 대재앙으로부터 구했다”고 자찬했다. 집권 인도국민당(BJP) 지도부는 2월 “인도가 모디 총리의 능력 있고, 민감하며, 헌신적이고, 선견지명이 있는 지도력 아래 코로나19를 패배시켰다”고 했고 급기야 3월 8일 하르시 바르단 보건부 장관은 “대유행의 최종 단계(Endgame)에 왔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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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낙관적 언급을 잇달아 내놓고 각종 봉쇄 조치를 완화하자 대중의 경각심은 느슨해졌다. 지난해 1차 확산 때 세워졌던 코로나19 센터들은 해산했다. 힌두 민족주의자로 분류되는 모디 총리는 쿰브 멜라를 허용했다. 모디 총리의 시선은 5월 2일 지방의회 선거로 향했다. 그는 야당 우세지역인 웨스트벵골주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유세장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렸다. 모디 총리는 “이렇게 많은 군중을 본 적이 없다”며 환호했다.

이 기간 2차 파도의 물결이 일었다. 확진자 수가 점점 늘더니 4월 초 전 세계 하루 확진자의 4분의 1가량이 인도에서 나왔다. 이 숫자마저도 과소집계됐다는 평가가 많다. 인도 보팔시는 지난달 중순 13일 동안 41명의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왔다고 발표했지만, 뉴욕타임스(NYT)는 이곳 화장터와 매장지를 취재해 이 기간 1000명 넘게 숨진 사실을 확인했다. 구자라트주의 한 화장터 직원은 유족에게 전달하는 서류에 사인을 ‘질병’으로만 적는다며 “상사로부터 그렇게 지시받았다”고 했다.

지난 1일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신규 확진자가 40만명을 돌파했다. 특히 웨스트벵골주는 선거를 거치며 양성률(검사건수 대비 확진자)이 50% 수준까지 올랐다. 13일 현재 한국의 누적 양성률이 1.40%인 점을 고려하면 경악할 만한 수치다. 이제 지구촌 신규 환자 2명 중 1명은 인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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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디 정부의 소홀한 대비… 법원 “집단 학살”

지나친 낙관론과 재유행 대비 소홀 등 정부의 실책은 열악한 인도 공중보건 체계와 결합해 재앙적 결과로 나타났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현재 인도는 의료용 산소와 병상, 렘데시비르·토실리주맙 등 치료제가 부족해 개개인이 암시장에서 8∼20배 이상 가격에 사들이는 실정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산소와 치료제를 미리 확보해둔 남부 케랄라주가 사망자 발생을 비교적 잘 억제하고 있는 점을 보면 통탄이 나오는 대목이다.

인도 정부는 지난해 산소 제조 공장 162곳 신설 계획을 발표했지만 지난달 현재 33곳만 지어졌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지적했다. 마하슈트라주의 한 공장장은 WP에 “당국에 생산시설을 확충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보조금 지원이 없었다”며 ‘목이 마르기 전에 우물을 파라’는 속담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최근 알라하바드 고등법원은 코로나19 환자 2명이 숨진 사건과 관련해 “의료용 액화산소의 안정적 공급을 책임진 자들에 의해 자행된, 집단학살에 준하는 범죄 행위”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반대파에 대한 강경한 탄압, 개인적 카리스마 등을 바탕으로 2019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연임에 성공한 모디 총리는 지난 수십 년 새 인도의 가장 강력한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그런 만큼 그의 주변은 전문가 대신 충성파로만 채워져 있고, 관료들은 정부의 ‘대유행 종식’ 선언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NYT는 지적했다. 의료용 산소가 부족하고 공공병원 병상도 턱없이 모자란다는 지난해 11월 인도 의회 보건위원회 지적, 인도가 코로나19 쓰나미를 겪을 수 있다는 지난 2월 전문가들 경고, 전염성이 더 강한 변이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지난 3월 정부 과학자 자문그룹의 우려는 모두 무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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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차 파도가 현실화하자 재앙적 상황을 전하는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통제하는 데 열중했다. 의료장비나 백신 확보에 주력해야 할 정부가 우선순위를 엉뚱한 곳에 뒀다는 지적이 나왔다.

모디 총리는 지난 2일 선거에서 사실상 심판을 받았다. 5곳 지방의회 선거 결과 집권 BJP가 동북부 작은 주인 아삼주와 연방 직할지 푸두체리에서만 승리한 것이다. 최대 승부처 웨스트벵골주에서는 주의회 총 294석 가운데 213석이 지역정당에 넘어갔고 BJP는 77석 확보에 그쳤다.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며 인도 곳곳이 봉쇄에 들어갔지만 중앙정부는 아직 전국 봉쇄령을 머뭇거리고 있다. 모디 총리는 지난해 발표 4시간 만에 대대적으로 시행했던 봉쇄 조치가 대량 실업, 경기 악화 등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진 것을 의식한 듯 “봉쇄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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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현지시간) 인도 벵갈루루 외곽 공공 화장터에서 유가족과 자원봉사자들이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의 시신을 화장하기 위해 옮기고 있다. 벵갈루루=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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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위기는 전 세계의 위기

변이 바이러스가 인도 내 급격한 확산의 핵심 요인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이 지난 2월 중순에야 본격화한 탓이다. 지금까지는 펀자브주에서 영국발 변이(B117)가 기승을 부렸고, 두 가지 변이가 한꺼번에 나타나 감염력이 더 높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중 변이(B1617)가 18개주에서 나타났다는 점이 확인됐다.

비제이 라하반 인도 정부 수석과학고문은 지난 5일 “인도의 높은 확산 수준은 3차 유행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현재의) 2차 유행이 진정되더라도 면역 회피력과 전염력이 더 강한 새로운 변이가 인도에서 출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바이러스에는 국경이 없다. 인도와 국경을 맞댄 네팔, 스리랑카 등은 최근 인도와 비슷한 확산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인도 변이는 한국을 포함해 6개 지역 44개국으로 퍼져나갔다. 세계 각국은 인도발 여행객 통제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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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유에서 각국은 적극적으로 인도 지원에 나서고 있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달 25일 백신 원료, 인공호흡기, 치료제 등 제공 방침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이 모디 총리와 통화하고 나서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6억회분을 안전 검사가 끝나는 대로 각국과 공유하겠다”고 했다. 미국은 더 나아가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면제 지지 입장까지 밝혔다.

반대로 세계 최대 백신 생산국인 인도는 백신 민족주의를 강화했다. 수출 물량을 틀어쥐고 접종 대상을 모든 성인으로 확대했다. 그런데도 13일 현재 인도의 백신 1차 접종률은 10.0%, 2차 접종률은 2.7%에 그친다. 국제 백신 공유 프로젝트 코백스를 통한 빈국 백신 지원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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