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경복궁의 18배…프랑스 절대왕정 상징 '베르사유 궁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입구 전경. 화려한 황금색 울타리 뒤로 바로크 양식의 궁전 모습이 보인다. /사진=송경은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랜선 사진기행-48] 프랑스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0㎞가량 떨어진 베르사유. 베르사유 샤토 리브 고슈 역에서 내리자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거대한 행렬이 이어졌다.

가로수 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었을까. 루이 14세 동상이 지키고 서 있는 광활한 광장과 화려한 장식의 황금빛 울타리 뒤로 베르사유 궁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색 지붕과 하얀 벽, 붉은색과 황금색 장식으로 치장한 궁전을 바라보고 있자니 당시 프랑스 절대왕정의 위용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프랑스 절대왕정 권력의 중심지였던 베르사유 궁전의 역사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는 루이 13세가 사냥할 때 머무는 별장으로 지어졌으나 1682년 루이 14세가 파리에서 베르사유 궁전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대대적인 개조·증축을 통해 왕궁으로 탈바꿈했다.

루이 14세의 명으로 대규모 정원과 별관, 안뜰 등이 새롭게 들어서면서 베르사유 궁전은 전체 길이 680m에 이르는 대궁전이 됐다.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의 전체 면적은 약 800만㎡로 서울 경복궁의 18배 수준이다.

매일경제

베르사유 궁전 전경(왼쪽). 오른쪽은 궁전 앞 광장에 세워진 루이 14세 동상이다. /사진=송경은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면서 루이 16세가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쫓겨났고 베르사유 궁전은 다시는 왕실의 거처가 되지 못했다.

이후 1830년 즉위한 루이 필리프 왕에 의해 궁전은 1837년부터 프랑스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된다. 궁전의 방들은 프랑스의 역사를 장식한 주요 사건들과 위대한 인물들을 표현한 작품들을 소장하는 데 활용돼 왔다.

그러다 20세기 초 베르사유 궁전은 '앙시앵레짐 시기 왕실이 거주했던 왕궁'이라는 역사적 역할을 재평가받아 다시 왕궁의 모습으로 중앙부가 복원됐다.

베르사유 궁전은 건축가 루이 르보와 즬 망사르, 화가 샤를 르브룅, 조경 설계사 앙드레 르노트르를 비롯한 수많은 프랑스 거장들의 합작품이라는 의미도 있다.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보전 가치가 높은 궁전 중앙부나 예배당, 오페라 극장 등을 제외한 주요 부분은 현재도 역사 미술관으로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매일경제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 왕실이 주관하는 각종 행사가 열렸던 회랑으로 벽면을 거울로 가득 채워 넓은 공간감을 줬고 천장은 프레스코화로 장식돼 있다. /사진=송경은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히는 베르사유 궁전은 6만3154㎡의 공간에 2300여 개 방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방은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호화로운 회랑인 '거울의 방'이다.

당초 거울의 방은 정원 쪽으로 열린 대형 테라스로 지어졌지만 악천후에 노출되는 등의 이유로 왕실의 결혼식 같은 궁정의식을 치르거나 외국 특사를 맞는 등 각종 행사가 열리는 회랑으로 개조됐다.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선언한 곳이기도 하다.

길이 73m, 폭 10.5m, 높이 13m인 거울의 방은 17개 아케이드(아치로 둘러싸인 공간) 벽이 357개 거울로 채워져 있었고 색색의 프레스코화로 뒤덮인 아치형 천장 아래로 황금색 장식과 화려한 샹들리에가 빛나고 있었다.

방 전체가 프랑스의 정치적·경제적·예술적 성공을 과시하는 공간으로 꾸며졌는데 거울이 매우 귀했던 당시에 거울로 가득 찬 방은 경제적 번영을 상징하는 호화로움 그 자체였다.

매일경제

거울의 방 테라스를 통해 바라본 베르사유 대정원(왼쪽). 이 정원은 루이 14세의 명으로 대대적인 공사를 거쳐 조성됐다. 오른쪽은 베르사유 궁전의 `전쟁의 방`. 오른쪽에 보이는 부조가 말을 탄 루이 14세가 적을 짓밟는 모습을 묘사한 장면이다. /사진=송경은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거울의 방 천장의 프레스코화에는 1661년 즉위부터 1678년 네덜란드 전쟁을 종결시킨 네이메헌의 평화 조약에 이르기까지 루이 14세의 통치 첫 18년 동안의 영광스러운 역사들이 묘사돼 있다.

왕좌는 남쪽 '평화의 방' 근처 복도 끝에 있는 연단에 놓였는데 1685년 제노바공화국과 1686년 시암, 1715년 페르시아, 1742년 오스만 제국 등의 대사들은 긴 회랑 전체를 가로지른 뒤에야 왕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만큼 권력을 과시한 것이다.

거울의 방은 전쟁에서 승리한 프랑스를 상징하는 '전쟁의 방'과 유럽 평화를 이룬 루이 14세를 예찬하는 평화의 방으로 이어졌다.

전쟁의 방에는 스투코(건축물 벽면에 바르는 미장 재료)로 만들어진 커다란 타원형 부조에 전쟁에서 말을 타고 적을 물리치는 루이 14세의 모습이 묘사돼 있고, 벽은 6개의 트로피와 금도금 청동 무기로 장식된 대리석 패널로 덮여 있었다.

평화의 방은 전쟁의 방과 대칭을 이루는 구조인데, 여기에는 프랑스가 유럽에 가져온 평화가 상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매일경제

베르사유 정원 전경. `라토나 분수`(왼쪽)와 멀리 대운하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송경은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베르사유 궁전의 꽃은 프랑스식 정원의 걸작인 베르사유 대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정원은 궁전 중앙부의 '루이 14세의 방'에서 뻗은 중심축을 중심으로 세 개의 큰 통로와 안뜰, 광장으로 나뉜다.

천재로 불렸던 조경 설계사 르노트르는 군주를 상징하는 중심축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방사형 정원을 기획했다. 중심축에는 길이만 8㎞에 달하는 십자형 대운하가 자리해 있다.

궁전에 들어서자 복도와 방, 회랑 등에서 아름다운 정원이 한눈에 들어와 순간순간 눈길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매일경제

베르사유 정원 대운하(왼쪽)와 대화단 길. /사진=송경은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정원 곳곳에는 신화와 이솝우화에서 유래한 갖가지 우주와 세계를 설명하는 테마 조각상, 관목으로 장식된 파르테르, 식물 벽으로 둘러싸인 미로공원이 있어 정원 자체가 주변 자연 경관과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정원을 거닐다 보니 그 압도적인 규모에 마치 숲 한가운데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길게 뻗은 대운하는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대운하에서는 카누를 타고 유유히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였다.

대운하 북쪽 끝에는 이탈리아식 이궁(離宮)인 그랑트리아농과 프티트리아농이 있어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둘러볼 만하다.

워낙 규모가 커 걸어서는 정원 전체를 관람하기가 힘들다. 보통은 프티트레인(미니 기차)을 타고 이동하거나 버기카(전통차)를 일정 시간 대여해 정원 내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다만 버기카를 대여하려면 국제운전면허증이 필요하다.

한편 코로나19로 현재 베르사유 궁전 내부는 임시 폐쇄됐고 실외 공간인 베르사유 정원만 관람이 가능한 상태다.

매일경제

베르사유 정원의 산책로. 버기카를 타고 다니면서 곳곳에 주차를 하고 둘러볼 수 있다. /사진=송경은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송경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