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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 모두 절단 사고, 도움청할 곳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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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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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평택항에 정박해 있는 한 대형 선박이 매연을 내뿜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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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2일, 8만t 규모의 대형선박에서 일하던 이상국씨(31)는 사고로 발가락 10개를 모두 잃었다. 당시 호주 멜버른 부두에 정박한 선박에서는 체인블록(거중기)을 이용한 엔진 부품 정비 작업이 한창이었다. 거중기 아래에는 기관장과 이씨를 비롯한 선원들이 있었다. 이씨는 취업한 지 한달도 되지 않은 3기관사였다.

거중기가 6t 무게의 엔진 부품을 끌어올릴 때였다. 거중기에 달린 체인이 끊어지면서 부품이 이씨의 발 위로 떨어졌다. 너무 순식간이라 피할 새도 없었다. 발가락 10개가 잘렸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필리핀 국적의 선원 두명이 들 것을 가져왔다. 이씨는 호주의 한 병원으로 후송됐다. 배가 정박한 상태에서 일어난 사고라 빠른 후송이 가능했다.

하지만 부품에 깔린 발가락들은 챙기지 못한 상태였다. 기관장은 이씨에게 “걱정하지 마라. 발가락을 붙일 수 있게 빨리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발가락이 도착한 건 10시간 가까이 지나서였다. 그마저도 이씨가 호주에 있는 한국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한 후였다. 의사는 안전화에 들어 있는 발가락 상태를 보더니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작업을 서두르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던 사고였다. 이씨는 “그날 전문 엔지니어가 오기로 돼 있었는데, 엔지니어가 오기 전에 무리한 사전작업을 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게다가 승선경험이 부족한 이씨는 보조업무를 하던 중 갑자기 해당 작업에 투입됐다. 별다른 안전 지시는 없었다.

잘 알려지지 않는 해외취업선원 사고

이씨와 같은 해외취업선원의 산업재해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일단 종사자 수 자체가 적다.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해양수산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외취업선원은 2018년 2956명, 2019년 2909명, 2020년 2530명이다. 전체 취업자의 0.01% 수준이다. 수가 적다 보니 문제 제기를 해도 해결을 위한 동력을 얻기 힘들다.

배라는 공간의 특수성도 산재가 잘 알려지지 않는 요인 중 하나다. 사고가 나도 곧장 뭍으로 돌아갈 수 없고, 통신의 어려움으로 당사자가 어디에 알리기 어렵다. 선원 근로감독관이 있지만 배가 한국에 정박해 있지 않는 한 사고 직후의 현장조사는 불가능하다.

사고 신고의 주체도 당사자가 아닌 회사다. 선원법 제82조는 “선박 소유자는 선원의 직무상 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는 해양항만청에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배에서 17년을 근무한 A선장(51)은 “선장이 사고경위서를 쓴다. 하지만 선장의 관리감독 책임이 있기 때문에 사실대로 쓰지 않고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보다의 정소연 변호사는 “지켜보는 눈이 적지 않은 건설현장이나 지역 공장에서도 산재가 은폐되는 경우가 많다. 지역마다 노동청이 있고 지정된 근로감독관이 있어도 포착하기가 어려운데 배 위는 오죽하겠나”라며 “외부에 알릴 시기를 놓치거나 그 시기를 기다리다가 회사와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사고를 당한 선원은 어디에도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처지가 된다. 첫 수술이 끝나고 깨어났을 때, 이씨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일했던 배는 이미 호주를 떠난 상태였다. 이씨가 한국의 선박관리회사에 전화해 따지자 ‘선주와 이야기해 잘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씨가 탄 배의 선주·선사는 일본, 선박은 라이베리아 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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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이후 발가락이 잘린 이씨의 발 엑스레이 사진 / 이상국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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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도 억울한데 해고까지

그러나 며칠 뒤 이씨가 받은 것은 고용보험 상실 통지서였다. 통지서에서는 ‘근로자의 귀책사유에 의한 징계해고, 권고사직’이라고 쓰여 있었다. 또 회사는 하지도 않은 ‘안전교육’을 했다는 서류를 뒤늦게 작성했다. 안전교육 서류에는 이씨의 서명이 조작돼 있었다.

원칙대로라면 기관장과 1기관사는 작업을 시작하기 전 작업에 관한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고 이를 선장에게 보고해 최종 승인을 얻어야 한다. 실습항해사 과정을 마친 B씨(34)는 “배에서는 엄청 신경을 써도 자칫하면 사고가 발생하기 때문에 작업 전에 위험 요인 목록을 만들어 공유한다”고 말했다. 이씨가 사고를 당한 작업에서는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이씨는 “사고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순식간에 직장까지 잃고, 또 모든 게 제 탓으로 돼 있었다”고 말했다. 호주에 홀로 남은 이씨는 고용노동부, 해양수산부,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 등에 자신의 상황을 알렸다. 돌아온 답은 한결같았다. 노사합의에 따른 치료비와 보상금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선원은 근로기준법이 아닌 선원법 적용을 받고 해외취업선원은 선원법에 준하는 노사합의 적용을 받는다.

이씨가 궁금했던 건 치료비나 보상이 아니었다. 왜 이 과정에서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지, 다친 사람만 다른 나라에 내버려두면 사건은 끝나는 건지 등이다. 이씨는 배를 소유한 일본 회사, 자신을 고용한 한국 선박관리회사, 지시를 내린 선장과 기관사 등 누구에게서도 사과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선박관리회사는 이씨에게 “항만청과 해경에 무슨 서류를 줬는지 모르겠지만 (중략) 민원을 취하해달라”며 수차례 민원 취하를 요구했다.

결국 그는 혼자 사고의 책임을 묻는 싸움에 나섰다. 호주에서 치료를 받는 상황이라 도움을 청할 노무사나 변호사는 없었다. 형법, 선원법을 공부하며 증거를 모았다. 지난 4월 16일 검찰은 선장, 기관장, 1기관사 등을 업무상과실치사, 사서명위조, 위조사서명행사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사고가 난 지 2년 만이다.

검찰조사 과정에서 이씨가 처음 문제를 제기한 것 외에 ▲선장이 위험성 평가 업무를 기관장에게 전적으로 맡겨두고 전혀 확인하지 않았으며 ▲문제의 거중기가 품질·안전인증서조차 없이 선주사로부터 공급받은 중국산 저가라는 사실 등이 드러났다.

또 선박관리회사는 안전교육 서명 조작과 관련해 이씨에게 “선주에게 보고하는 것인데 당사자(이씨)가 없어서 임의로 서명을 했다. 이건 내부 보고용이지 외부용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공소장에 따르면 기관장과 1기관사는 조작된 서명을 호주 해양안전청 조사관에게 제출했다. 만약 사실대로 사고경위서를 조사관에게 제출했다면, 이들은 호주에 남아 조사를 받아야 한다.

■외국인 상대로 소송? 포기하는 사람 많아

이씨는 자신의 사건을 두고 ‘나쁜 사례’라고 말했다. 혼자 싸워 여기까지 왔지만 그러지 않을 수 있도록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간 이씨는 절단과 피부이식 등 6차례의 대수술을 받았다. 사고와 그 이후의 스트레스로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고는 잠을 자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사고가 땅에서 일어났다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하고 근로감독관이 사업장을 확인할 수 있다. 회사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노동청에 고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취업선원은 선원법에 준하는 보상과 개인 소송 외에는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

그마저도 소송도 선주나 선사가 외국 회사거나 선장이 외국인인 경우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이씨도 부당해고와 관련해 선박관리회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선박관리회사는 선주의 대리인일 뿐 직접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는 선주이기 때문에 일본 선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라는 답을 받았다.

선주·선사가 외국 회사거나 선장이 외국인이라고 한국에서 소송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되면 당사자가 느끼는 어려움은 확 커진다. 이씨는 “한국 선박관리회사에 4대 보험을 납부하고 한국인 상사에게 업무 지시를 받았는데, 우리를 보호해주는 법·제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A선장은 “큰 배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대부분 중대재해지만 개인이 소송을 하는 것 말고는 선주나 관리자들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대부분의 선원이 보상금만 받고 끝낸다”며 “해외취업선원 규모가 적어서인지 사람들의 관심도 낮고 완전히 사각지대에 있다”고 말했다.

이씨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선장, 기관장, 1기관사와 관련된 재판 결과가 나오면 이를 공증번역해 호주 해양안전청 자료를 바로잡을 계획이다. 호주 해양안전청에는 여전히 이씨의 잘못으로 사고가 난 것으로 돼 있다. 또 일본 선주와 선사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예정이다. 이번 사건 첫 공판은 오는 5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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