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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故 이춘연, 영원한 안녕을 고하다…이병헌·이준익·이창동, 눈물의 추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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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patch=박혜진기자] 한국 영화계의 큰 별이 졌다. 영화인회의 이사장 故 이춘연(71)이 영원한 안녕을 고했다.

이춘연의 영결식이 15일 오전 10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2층에서 진행됐다.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했다.

배우 권해효가 사회를 맡았다. 평소 고인을 따르던 영화계 후배 감독 및 배우들이 추도사를 했다. 그가 참여한 영화도 상영했다.

김동호 장례위원장은 "영화인들이 빈소를 찾아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영화계 큰 별이, 맏형이, 큰오빠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걸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계 일이라면 직언을 아끼지 않고 고민해온 분”이라며 “영화인들에게 유훈을 남겼다. 많은 영화인이 그 역할을 해주십사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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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도 추모사를 낭독했다. 그는 “형님, 당신만큼은 이렇게 갑자기 가면 안 되는 것이었다"라며 "남은 우리들은 막막하고 형이 많이 생각날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개인보다 전체의 이익이 낫다는 건 형에게 늘 들은 이야기”라며 "우리가 빈자리를 잘 채우겠다. 좋아했고, 존경했고, 사랑한다"고 애도했다.

이창동 감독은 "이제 한국 영화계는 이춘연이 없는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이 자리가 믿어지지 않는다”며 그의 빈자리를 안타까워했다.

그의 삶을 기렸다. “이춘연은 모든 영화인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었다”며 “스크린쿼터, 스태프 처우 개선 등 한국 영화의 모든 이슈에 그가 있었다”고 말했다.

가교 역할을 했다는 것. "세대 간 깊은 단절을 잇는 유일한 가교 역할을 했다”며 “살벌한 현장이 아니라 창의성을 살리는 인간적 현장이 되도록 솔선수범했다. 맏형이었고, 아버지였고, 따뜻한 오라버니가 돼줬다"고 기억했다.

이 감독은 “평소 농담을 좋아하던 형이었기에 이 자리 또한 한바탕 장난이 아닌가 싶다”며 “영화인들의 모임 자리에는 언제나 이춘연이 있었다. 지금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다”며 슬픔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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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이 배우 대표로 나섰다. 그는 “저의 30년 인생을 함께해 준 거상 같은 분, 큰 산이자 그림자"라며 "더는 뵐 수 없게 됐다는 현실이 비탄스럽다”고 슬퍼했다.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앞으로 10년, 20년 더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셨어야 맞다"며 "무한 존경했고, 사랑했고,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춘연은 지난 11일 오후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장례식에는 감독 류승완, 박찬욱, 봉준호, 임권택, 이창동, 임순례, 최동훈, 배우 류승룡, 박중훈, 송혜교, 안성기, 이병헌, 이선균, 전도연, 전혜진, 정우성, 정진영, 조진웅, 하정우 등이 발걸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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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춘연은 영화제작자다. 지난 1970년대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 1983년부터 영화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84년 ‘과부춤’을 시작으로 ‘접시꽃 당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영웅연가’, ‘황진이’, ‘거북이 달린다’, ‘더 테러 라이브’, 등을 기획∙제작했다.

씨네 2000 대표로도 활약했다. ‘여고괴담’ 시리즈를 제작했다. 기획과 제작은 물론, 한국영화단체연대회의 대표 등을 맡았다.

한국 영화계 현안과 각종 영화제에 발 벗고 나섰다. 약 40년 동안 한국 영화 발전을 이끌어왔다.

<사진출처=영화진흥위원회 KOFIC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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