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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박나래 성희롱 논란, 서구선 아무 문제 없는 일...'이중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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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 눈물을 보인 박나래. MBC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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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박나래의 ‘성희롱 논란’이 미국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에 보도됐다. 뉴욕타임스는 서구 기준으로 봤을 때 논란이 될 만한 가능성이 거의 없는 수준의 코미디인데 한국에선 몇 주째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2일(현지 시각) ‘남자 인형을 사용해 농담을 한 여성, 성희롱으로 고발당하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근 불거진 박나래 성희롱 논란을 소개하고 이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독특한 현상을 분석했다.

"박나래 성희롱 논란, 한국 사회의 이중잣대"


뉴욕타임스는 우선 “박나래는 남자 인형의 플라스틱 팔을 다리 사이에 놓고 성적 의미가 담긴 발언을 했다”며 “이 같은 행동은 서구 코미디 기준으로 볼 때 웬만해선 불쾌감을 주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스캔들로 비화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다수의 분개한 젊은 남성들이 그를 성희롱으로 고발했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도 전했다. 코미디 장르에서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는 서구 문화 특성상 코미디마저도 엄격한 잣대로 평가하는 한국 사회가 독특해 보인다는 뉘앙스가 담겻다.

박나래는 지난 3월 자신의 유튜브 웹 예능 프로그램 ‘헤이나래’에서 ‘암스트롱맨’이라는 남성 인형의 옷을 갈아입히는 과정에서 성적 뉘앙스의 개그를 했는데 이후 성희롱 비난이 쏟아졌다.

뉴욕타임스는 박나래 지지자들의 말을 빌어 이 같은 현상이 한국 사회의 '이중잣대'를 드러낸다고 보도했다.
박나래의 지지자들은 이 같은 격렬한 반응이 한국 문화의 이중잣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한국에선 남성들이 여성을 성적으로 정복하는 걸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여성에 대한 고질적인 성희롱이 발생하는 반면 여성이 공개적으로 성에 대해 발언하면 처벌 받을 수 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

"여성혐오 발언을 하는 남성들이 박나래를 비난할 자격 있나"


뉴욕타임스가 인터뷰한 이들은 대체로 박나래의 유머가 지나쳤다 해도 그에 대한 비판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한 20대 여성은 뉴욕타임스에 "한국에선 남성이 성적인 것을 드러내는 게 쿨한 일이지만 여성은 이를 숨겨야 한다"면서 "박나래의 유머가 지나쳤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그 이상의 농담을 하는 사람은 모두가 고발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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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래 성희롱 논란을 보도한 뉴욕타임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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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류학자 모현주 박사는 “박나래의 개그가 한국 남성들의 심기를 건드린 건 여성도 자유롭게 자신의 성적 충동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암시했기 때문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모 박사는 “동시에 한국 여성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한국 남성들이 하는 여성혐오적 활동들을 고려할 때 ‘그들이 박나래를 비난할 자격이 있나’라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소셜미디어 상에서 박나래를 비난하는 이들이 박나래와 웹툰작가 기안84를 연결시킨다고 했다. 두 사람은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 함께 출연 중인데, 과거 기안84는 자신이 연재 중인 웹툰에서 여성이 일자리를 얻기 위해 성관계를 이용한다고 암시했다가 비판이 쏟아지자 '나 혼자 산다'에 한달간 출연하지 못 했다. 박나래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기안84처럼 박나래도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여성혐오적, 극우적 남성 아닌 주류사회 일반 남성들이 박나래 공격"


뉴욕타임스는 박나래를 비난하는 이들이 여성혐오적이고 극우적인 소수의 남성들이 아니라 주류 사회의 일반적인 남성들일 수 있다는 관점도 소개했다. 이원재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한국의 많은 젊은 남성들은 (양성평등으로 나아가려는) 어떤 젠더 트렌드와 양성평등을 밀어붙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이 위협이 된다고 여긴다"면서 "이들은 여성이 취업 시장에서 이전보다 강한 경쟁자가 되면서 결혼시장에서도 보다 큰 주도권을 갖게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군 복무를 마쳤다는 걸 강조하는 남성들이 '왜 여성 지원 정책만 있고 남성 지원 정책은 없냐'고 항의하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20년 넘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뉴욕 타임스 역시 이 점을 강조했다.

뉴욕타임스는 성차별이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국에선 공중화장실과 탈의실에서 남성들이 여성을 몰래 촬영하는 일이 만연하고,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의 성격을 특징짓는 것 중 하나가 여성혐오적 게시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남성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은 성차별적 발언을 하고도 박나래처럼 과거 발언, 개그까지 샅샅이 조사받는 일은 없다"는 점도 언급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박나래 성희롱 논란이 확산하자 그가 2016년 tvN '코미디빅리그'에 출연해 성적인 개그를 한 점을 들춰내며 도마에 올렸다.

할아버지의 충고? "증오에 귀기울이지 말라"


뉴욕타임스는 박나래와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소속사 JDB엔터테인먼트 측이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나래는 논란이 커지자 자필 사과문을 발표한 뒤 ‘헤이나래’에서 하차했다. 그의 하차와 함께 프로그램은 폐지됐다. 박나래 성희롱 논란 관련 고발을 접수한 경찰은 어떤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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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에게 충고하는 박나래의 할아버지. MBC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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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는 이 기사를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와 그의 할아버지가 나눈 대화로 마무리했다. 방송에서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인간은 미완성품이니 100% 잘할 수 없다"면서 "남한테 나쁜 소리 듣지 말라"고 충고했다. '남에게 나쁜 소리를 듣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었지만 이 매체는 엉뚱하게 오역했다. 이를 기사의 마지막 문장으로 썼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증오에 귀기울이지 말라."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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