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춘연 영정. 사진|스타투데이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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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박세연 기자]
한국 영화의 거장, 고(故)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이 영화인들의 큰 슬픔을 뒤로하고 영면했다.
15일 오전 10시 서울 반포동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이춘연 이사장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영화인장으로 치러진 이번 장례의 영결식은 배우 권해효의 사회로 진행됐다. 고인에 대한 묵념을 시작으로 평소 고인을 따르던 영화계 후배 감독 및 배우들의 추도사와 추도 영상 상영 순으로 진행됐다.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동호 위원장은 "오늘 우리 영화인은 고 이춘연 이사장을 보내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무엇보다 먼저, 졸지에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남편을, 아버지를 할아버지를 떠나 보내게 된 유가족 여러분께 뭐라 말씀 드릴 수 없는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운을 뗐다. 이어 "지난 5일 동안 이 곳을 찾아와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해주신 영화인 모든 분들께 유족을 대신해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고인은 많은 영화들을 제작해오셨다. 특히 그 과정에서 아주 걸출하고 뛰어나고 재능 있는 신인 배우들과 감독들을 배출해옴으로써 우리 한국 영화의 오늘이 있기까지 튼튼한 기반을 확고하게 기틀을 잡아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5일 동안 빈소를 지키면서 노장과 소장을 가리지 않고, 신인과 위상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영화인들은 감독과 배우들이 빈소를 찾으면서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정말 영화계의 큰 별이, 맏형이, 큰오빠가 우리 곁을 떠나갔다는 걸 실감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고인께서는 영화계의 크고 작은 일, 좋은 일이라 불리는 모든 일을 도와주고 응원해주고 해결해주고 때로는 함께 고민하고 기뻐하면서 평생을 영화와 함께 살아오셨다"며 "앞으로 누가 그런 역할을 하게 될 지 정말 말씀드릴 수 없을 지경"이라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인명재천이란 말이 있다.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던 이춘연 대표를 하늘로 부르신 게 아닌가 싶다"면서 "나는 그 빈소를 지키면서 고인께서 웃으시면서 조문하고 있는 많은 영화인들에게 깊은 뜨거운 의미있는 유훈을 남겼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곳을 찾은 많은 영화인들이 힘을 합치고 화합해 지금 영화계가 닥친 힘든 난국을 해쳐가라는 유훈을 남기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상에 오른 이준익 감독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추도사를 읽었다. 이준익 감독은 "사람은 홀연히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만큼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가시면 안 되는 거였다. 뒤에 남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그저 막막할 따름"이라며 황망해했다.
이준익 감독은 "1편의 이익보단 10편의 이익, 개인의 이익보다 전체의 이익이 좋다는 게 늘 형에게 들은 이야기다. 구현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정신을 안고 사느냐 버리고 사느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잘 하겠다. 형님 가신 빈자리, 잘 채우고 가겠다. 하늘에서 꼭 지켜봐달라. 하늘에선 제발 심장 멈추지 말고, 다시 만날 때 다시 그 모습 그대로 모습으로 도와주시길 기원한다. 안녕히 가십시오, 이춘연 형님, 좋아했고 참 존경했고 사랑합니다"고 말하며 눈물읗 훔쳤다.
이준익 감독, 이병헌, 김규리, 이창동 감독. 사진|故 이춘연 영결식 유튜브 생중계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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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은 "대표님은 제 30년 영화 인생을 함께 해주신 분이다. 제겐 거산같은 분이시다. 넉넉한 그림자 같은 분이시다"며 "더 이상 뵐 수 없게 됐다는 비현실의 현실이 가슴을 친다. 비탄스럽다. 앞으로 10년 더, 20년 더 제게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셔야지 맞다"고 비통해했다.
이병헌은 "대중적으로 실패한 작품이지만 내 필모그래피에 자랑스럽게 남아있는 '중독'이, 시대를 앞서간 빠른 작품이었다"며 "2002년에 나왔던 영화인데, 도발적인 내용이었는데 지독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시대 감각이 뛰어나셨다"고 말했다. 이어 "대표님의 앞선 감각을 시대가 종종 못 알아볼 때가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앞서가는 영화를 저에게 주신 건, 대표님과 그때는 박수 받지 못했던, 저주받은 걸작을 남겨주시고 함께 하게 해주신 데 대해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대표님, 이제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떠나지 않으셨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듯이 보이지 않는다고 살아있지 않은 게 아니다. 저 이병헌이 끝까지 잘 하고 살아가는지 살펴봐주십시오. 지켜봐주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무한 존경했고, 사랑했다. 감사했다.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이병헌에 이어 단상에 선 김규리는 추모 편지를 읽는 내내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김규리는 "이제 어디서 그 지혜와 힘을 구할 수 있을까"라며 "대표님,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한국 영화에 늘 푸른 산처럼 계셔달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이창동 감독은 "믿어지지 않는다. 내가 이 자리에 서서 형의 조사를 읽게 되다니. 어떻게 이럴수가 있습니까"라며 오열했다. 그는 "늘 농담을 좋아하던 형이었기에 이 자리 또한 형이 만들어놓은 장난스러운 자리가 아닌가 싶다. 지금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다"며 믿어지지 않는 현실을 슬퍼했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인들의 중심에는 항상 이춘연이 있었다. 언제나 당신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든든했던, 영화계에 문제가 생겨도 당신이 해결해줄 것이었는데 그런데 이제 당신이 없다. 기둥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 빈자리가 너무나 크다"고 말했다.
이창동 감독은 "이제 한국 영화계는 이춘연이 없는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 이춘연이 없는 시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며 이춘연의 생전 활동을 읊었다. 그러면서 "이춘연은 한사람 한사람에게 마음을 열었고, 좋아했다. 그래서 상대도 이춘연을 좋아하게 했다. 그것이 이춘연의 힘, 이춘연의 카리스마였다. 그 힘과 카리스마로 한국 영화를 위해 싸워왔다. 지치지 않고 싸워오며 문제를 해결해왔던 그 시기가 한국 영화가 한국 문화 콘텐츠 산업 중심에서 급격히 발전한 시기였다. 스타가 많은 영화계였지만 이춘연은 늘 그 자리를 지켜온 진정한 스타였다"고 떠올리며 슬퍼했다.
고인은 지난 11일 오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회의에 참석한 뒤 귀가했으나, 심장마비로 쓰러져 끝내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이날 생전 모습이 담긴 영상 상영에 영결식장은 울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고 이춘연 이사장은 전라남도 신안 출생이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영화학과 졸업 후 1970년대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가 1983년부터 영화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84년 ‘과부춤’을 시작으로 ‘접시꽃 당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영웅연가’, ‘더 테러 라이브’ 등을 기획 제작했다. 씨네 2000 대표로서 ‘여고괴담’ 시리즈를 제작, 한국 공포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고인은 영화계 선후배들을 아우르며 한국영화의 중흥을 이끌었다.
psy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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