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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교사는 아이들에게 복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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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희의 학교 공감일기

29. 마음의 어버이


한겨레

클립아트코리아


“선희야, 넌 꿈이 뭐니?”

1987년 중학교 3학년 초가을, 진학 상담을 위해 교실에 남은 나에게 당시의 담임교사, 심금숙 선생님이 하신 질문이다. “저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싶어요. 그런데 부모님은 낮에 일을 해야 등록금을 낼 수 있으니 야간 상업고등학교에 가라고 하셔요.” “그렇구나. 음악은 배워봤니?” “그냥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어요.” “그래, 그럼 고등학교 진학은 어떻게 하고 싶니?” “교실 앞에 붙은 홍보물을 보니 국립국악고등학교라는 곳은 국비 장학생이라 등록금 걱정이 없겠더라구요.” “국악을 배워본 일은 있니?” “네, 6학년 때 학교에서 단소와 장구를 배웠어요.” “그랬구나. 그 정도면 입학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그런데 국악 공연을 실제로 본 적은 있니?” “아니요.” “나는 무엇보다 네가 국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가 궁금해. 평생의 진로가 될 텐데 학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다면 안타까운 일이지.”

며칠 후 선생님은 다시 나를 부르셨다.

“이번주 토요일에 시간 있니?” “네, 별일 없어요.” “그럼 나와 국립극장에 가보자. 국악 공연 티켓을 구했어. 바로 옆에 국악고등학교가 있다고 하니 탐방해보는 것도 좋겠어. 어때?” “네, 감사합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단정히 꾸민 후 선생님을 만났다. 국립국악고등학교 앞에서 현관을 들어서기 전에 선생님은 내 눈을 보며 힘주어 말씀하셨다. “어깨 쫙 펴고 ‘네가 얼마나 괜찮은 아이인지’ 잘 보여줘.” 선생님은 학부모인 양 당직 근무 중인 교사에게 학교의 이모저모를 묻고 입학 전형을 확인하셨다.

다채롭게 구성된 공연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관람을 마친 후 물으셨다. “공연을 직접 보고 나니 어때?” “네, 꼭 해보고 싶어요” “그래, 그럼 이제 열심히 하는 거야.” 선생님은 동료 음악교사에게 입학 전형 중 실기 영역인 시창, 청음의 지도를 부탁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 방과 후에 음악실에서 만나 시험 준비를 하는 음악교사와 나를 위해 차와 간식을 내어주기도 하셨다. 실기 시험을 앞두고 긴장감에 몹시 떨렸지만 ‘네가 얼마나 괜찮은 아이인지 보여줘’라는 선생님의 눈빛을 기억하며 자신감 있게 응했다. 선생님은 입학시험에 합격하고 남은 학기 동안은 공장에 다니며 교복비와 교통비를 벌 수 있도록 비공식적인 결석을 허락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하루 한 끼를 제대로 챙겨 먹기 힘든 극빈 가정의 다섯 남매 중 차녀였던 내 사정을 훤히 알면서도 생계의 위협을 무릅쓰고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셨다. 수십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노래, ‘스승의 은혜’ 중 ‘스승은 마음의 어버이시다’라는 대목에서 선생님이 떠올라 울컥 목이 메곤 한다. 선생님의 헌신은 ‘어서 자라서 밥값 하길 바랐던 부모’의 한계를 뛰어넘는 절대적 사랑에 가까웠다.

무한 경쟁 체제에서 물질의 결핍보다 더 극한 마음의 결핍을 겪는 우리 시대의 교사가 해야 할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 아이가 맞이할 각자도생 사회의 유일한 밧줄이 되어주느라 불안한 부모의 성취 요구에 맞춰 덩달아 고삐를 바짝 죄어야 할까? 아니면 결코 해소하기 힘든 생계의 안정 욕구에서 한발짝 떨어져 ‘네가 얼마나 괜찮은 존재인지’를 확인시켜줄 든든한 어른이 되어주어야 할까? 부디 ‘누가 뭐라 해도 교사는 아이들에게 그 자체로 복지사회요 제도가 될 수 있는 위대한 존재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김선희 |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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