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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백성이 불쌍합니다"…양반가 편지로 생활상을 엿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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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연 '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 출간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이러한 큰 흉년을 만나서 진휼 때문에 오랫동안 굶주린 백성들을 대하느라 죽을 고생을 하나 백성이 불쌍해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1668년 평안도 귀성부사 허흥선은 황해도 평산부사 김명열에게 보낸 편지에서 수령으로서 느끼는 안타까운 심정을 이같이 토로했다. 조선은 이 무렵 극심한 기근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김명열은 1671년 5월에도 "구휼 후 겨우 살아남은 백성이 또다시 보리 흉작의 재앙을 만났는데 구제할 곡식이 없습니다. 죽어 가는 것을 그 자리에서 보니 근심이 끝없고, 생각하면 기가 막힙니다"라는 문장이 담긴 편지를 받았다.

이처럼 편지는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간행한 문서에는 없는 소소하고 흥미로운 사건이 기록된 예도 많다.

고문헌을 연구하는 전경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신간 '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펴냄)에서 부안김씨 우반종가에 있는 조선 후기 편지를 '감정'이라는 열쇳말을 통해 살펴본다.

책에 등장하는 편지 중 상당수는 1613년 태어나 1651년 문과에 급제한 양반 김명열이 쓰거나 받은 것이다.

기근 당시 역참 찰방에게 부친 편지에서 "백성의 굶주림이 심한데도 아무런 능력이 없어 구제할 길이 없다"고 한 김명열은 편지로 많은 청탁을 받기도 했다.

예컨대 성후룡은 김명열에게 자신이 타던 말을 잠시 길러 달라고 부탁하면서 "감히 곧바로 (말을) 보낼 수 없어서 이렇게 의견을 여쭙니다"라고 양해를 구했다.

김명열 부친인 김홍원은 1640년 전라도 관찰사 원두표로부터 아들의 첩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원두표는 고상한 편지지에 쓴 글에서 며느리가 몸이 좋지 않아 출산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설명하고 "이 일이 절박한 것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감히 영감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부디 소홀히 듣지 마시기를 바랍니다"라고 호소했다.

그런데 원두표가 중매 대상으로 점찍은 여성은 아들과 나이가 맞지 않았다. 이에 원두표는 그 여성을 동생 원두추와 연결해 주고자 했다.

형에게 중매 이야기를 들은 원두추는 김홍원에게 보낸 편지에 "전에 저희 형님이 저를 위해 영감님께 청탁한 일이 있었는데 이 일이 만약 이뤄진다면, 거의 끝없이 이어질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부안김씨 우반종가 편지로 조선 사람들의 내밀한 감정을 들여다본 저자는 유교적 소양을 갖춘 선비들이 감정을 절제하고 통제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편견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옛사람들의 내면은 의외로 솔직하고 비통하며 때로는 집요하기도 했다"고 강조한다.

424쪽. 2만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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