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29 (금)

"한국은 속국에 문화도둑"…전세계 '반중감정' 들끓는 이유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지난달 27일 강원 홍천일대 추진중이던 한중문화타운에 반대하는 주민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강원도 춘천시와 홍천군에 들어설 예정이었던 '한중문화타운'(일명 차이나타운) 사업이 최근 무산됐다. 한 달 새 67만명이 넘는 국민이 반대 청원에 서명하는 등 폭발적인 반대 여론을 고려한 조치다. 지난 4일 사업 주체인 코오롱글로벌과 중국 인민망 등 4개 기관은 공동으로 진행 불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곧이어 정동진과 경기 포천에서도 또 다른 차이나타운 조성 논란이 불거졌다. 이와 관련해 지자체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역주민들이 납득을 못하고 있어 여파는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 해묵은 반중 정서가 최고조로 치닫는 가운데 반중을 넘어 혐중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은 한국과 인적·물적 교류가 많은 최대 교역국이자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웃 나라다. 그러나 자유, 인권, 민주주의 같은 핵심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데다 주변국들에 도를 넘어선 강압적 행태를 보이고 있어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국민 86% 반중 실감…日·美·유럽은 물론 동남아서도 비등

매일경제

그래픽=조보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동아시아연구원(EAI) 발표에 따르면 중국은 한반도 주변 4강 중 최근 5년 새 한국인들의 적대감이 가장 큰 폭(16.1%→40.1%) 늘어난 한편, 우호감은 가장 큰 폭(50%→20.4%)으로 줄어든 나라였다.

또한 지난달 매경이코노미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86%가 "최근 한국 사회에서 반중 감정이 커지고 있다"고 답했다. 국민 10명 중 8~9명이 높아진 반중 정서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반중 정서 고조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중국과 역사, 영토 문제로 한국 이상 대립해온 일본에서도 중국에 대한 일반 국민의 감정 악화는 수치로 확인된다. 일본 민간 비영리단체 겐론(言論)NPO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인상이 "좋다"고 답한 일본인 비율은 1년 새 5%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중국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5%포인트 늘었다. 같은 시기 미국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서도 미주·유럽 등 12개국 중 8개국(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스웨덴 이탈리아 캐나다 호주)의 반중 정서가 조사 이래 최고치로 나타났다.

매일경제

쿠데타 세력을 지원하지 말라며 반중 시위중인 미얀마인들 [사진=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에서도 반중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지난달 베트남에서는 스웨덴 브랜드 H&M이 중국이 주장하는 남중국해 해역 지도를 게재한 것이 빌미가 돼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이어 이달 3일 필리핀에서 역시 남중국해 문제로 외교장관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비난하는 트윗을 게재해 논란이 일었다.

대표적 친중 국가인 미얀마에서도 반중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쿠데타 주범인 군부의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부터다. 두 달 전 미얀마 제1도시 양곤에서 중국계 공장 수십 곳이 불탄 데 이어 최근에는 중국이 제공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시민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中팽창주의 주변국 자극…한국은 역사·문화 동북공정 가장 큰 이유

매일경제

이외에 한국의 반중 정서를 자극하는 원인은 부동산 등 투기자본 침투, 저자세로 일관하는 정부의 외교정책 등이 꼽혔다 [그래픽=조보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 중국에 대한 인식이 악화된 원인은 공통적으로 코로나19로 인한 피해와 중국 당국의 부적절한 대응이 지적된다. 하지만 대부분 주변국들에선 중국의 팽창주의로 격화된 영토 분쟁 등 정치경제적 대립이 더 큰 이유로 꼽힌다. 남중국해에서 필리핀과 베트남, 동중국해에서 일본과 빚고 있는 마찰이 그 예다.

실제로 겐론NPO 여론조사에서 일본인들은 대중 인식 악화의 이유로 센카쿠(조어도) 분쟁지에 대한 공세를 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중국이 홍콩, 대만을 넘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등 분쟁지까지 장악력을 키우고 있다"며 중국의 호전적 대외 행보를 '전랑(戰狼·늑대전사)외교'라고 칭하기도 했다.

매일경제

중국 최대 포탈 바이두에 삼계탕을 검색하면 "고대 광둥식 국물 요리로, 중국에서 전해져 한국에서 궁중요리로 자리잡았다"는 설명이 나온다 [사진=바이두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의 상황은 어떨까. 매경이코노미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가장 많은 76%가 "한국의 모든 문화와 역사를 중국의 일부"라고 우기는 행태를 반중 이유로 꼽았다. 김치를 비롯해 한복 등 한국 고유 문화자산을 비롯해 윤동주, 손흥민 등 한국 유명인의 뿌리가 중국이라는 일련의 주장이 큰 반감을 사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발(發) 역사와 문화 변조 행위에 이어 가장 많이 지목된 건 미세먼지와 황사로 인한 피해(60%)였다. 이 밖에 코로나19 사태 책임론(46%), 국내 기업에 대한 기술 탈취(23%), 부동산 등 투기자본의 국내 침투(16%), 그리고 저자세로 일관하는 정부의 외교정책(14.7%) 순으로 반중 정서를 자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문화 도둑" 애국·애당주의 매몰된 21세기 홍위병

매일경제

홍위병과 현재 샤오펀홍은 여러면에서 흡사하다 [그래픽=조보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상기 여론조사에 따르면 최근 국내에서 반중 감정을 자극한 가장 큰 원인은 중국의 역사·문화공정이다. 그리고 이 같은 잡음의 배경에는 맹목적 애국·애당주의자들, 즉 '샤오펀훙(小粉紅)'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있다.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교육을 강하게 받으며 자란 이들은 2010년대 이후 중국 내 검열 강화로 자유파 지식인들이 소멸하면서 온라인 공간에서 여론을 주도해왔다.

과거에도 중국 내 맹목적 애국·애당주의자들은 존재했다.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쩌둥에 의해 동원된 홍위병들이 전형적 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분노청년'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다.

샤오펀훙은 이들과 여러 면에서 매우 흡사하다. 차이라면 샤오펀훙의 주 공격 대상은 외국이고, 디지털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세대인 만큼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등 SNS에 적극적이고 능숙하다는 점이다.

매일경제

샤오펀홍은 공청단 등 중국 정부 관여하에 조직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표지(좌)와 지난해 `마오 사건`으로 가수 이효리가 받았던 온라인 테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근래 중국의 발전은 그 나라 국민으로서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들의 맹목성은 중국의 심기를 거스르는 이들에겐 강한 적개심과 무자비한 사이버 폭력으로 발현돼 왔다.

그리고 한국은 미국, 일본과 함께 가장 자주 노출되는 주요 타깃이다. 그들은 흔히 "한국이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도둑질한다"는 주장을 구실로 삼아왔다.

구체적으로 한국인들이 그들의 단오, 중추절, 중의학을 훔치고 공자의 조상이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는 식이다. 이들의 활동 반경은 2016년 사드 사태를 빌미로 단행된 한한령과 롯데마트 등 중국 내 한국 기업 불매운동, 그리고 최근 김치와 한복 사건 등 문화 동북공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中당국과 언론, 샤오펀훙을 긍정적으로 평가

매일경제

6.25를 배경으로 하는 중국 국민 영화 `상감령`에서 한국은 전쟁 당사국이 아닌 미국와 중국에 전쟁터를 제공한 들러리 정도로 그려진다 [사진=바이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화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한국은 함부로 해도 되는 대상이다. 중국에 비해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일 뿐이기 때문이다. 구한말 위안스카이부터 현재 시진핑 주석까지 중국 지도층들이 한반도를 "속방이자 일부"라고 공공연히 발언했던 것을 고려하면, 사실 별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중국 전문가인 김인희 박사에 따르면 "한국은 만년 속국"이라는 견해는 최고지도자부터 시골 농민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이들에 대해 중국에서도 일부 비판적 시각이 있다고 하지만, 당국과 언론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6년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젊은 온라인 민족주의자들의 훌륭한 활약"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로부터 3년 뒤에는 시진핑 주석이 "웨이보 등을 통해 당의 목소리를 여러 계층에 전달해 여론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면서 "당국은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김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샤오펀훙은 중국 공산당 산하 '공산주의 청년단'의 관여하에 조직적으로 외국을 공격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한편 중국은 반중 정서의 원인을 180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다. 중국 인민망과 텅신왕(騰訊網) 등에 따르면 반중 정서는 중국의 발전을 시기하고 견제하는 세력들의 중상비방과 편견에 기인한다. 여기에 중국에 대해 안 좋은 점만 부각해 보도하는 일부 언론에도 화살을 돌린다.

중국은 대만, 홍콩, 위구르 문제 등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위배되는 내정간섭으로 '핵심 이익'을 침해하려는 구실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반중 현상 장기화되나…경제의존도 큰 한국 고민 깊어질 듯

매일경제

현재 한국의 대 중국 수출비중은 2위 미국과 3위 베트남을 합친것 보다 많다 [그래픽=조보라]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국발 문화·역사 침탈 조짐은 한국인들에게 분명 반중의 명분이 되고 있다. 수직적 중화 질서의 추구와 주변국과의 마찰에 대한 보복도 세계적 반중 정서를 키웠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상당 기간 계속되고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중이 걷히려면 중국의 대외정책 노선이 수정돼야 하는데, 그럴 여지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과 중국 간 전략적 경쟁 구도는 경제, 군사 안보에서 인권, 민주주의 같은 가치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며 "양 진영 간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고 대립과 반감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중국은 소프트파워가 경제성장을 못 좇아가는 상황"이라며 "만약 문화공정을 앞세워 한국 콘텐츠를 흡수하는 전략을 유지한다면 반중 현상은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무조건적 배척과 혐오도 사대적 친중만큼 바람직하지 않고 무엇보다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현재 한국에 중국은 압도적 규모의 최대 교역 파트너이자 200억달러가 넘는 흑자를 안겨주는 나라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에 가장 큰 지렛대를 가진 인접국이기도 하다. 협력할 수 있는 분야는 적극 협력해야만 하는 이유다.

특히 기업들에 중국은 포기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한재진 연구위원은 "아직도 중국은 기업들에 개척하고 개방해야 할 열리지 않은 공간이 많다"며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보다는 정부가 그런 부분을 적극 창출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이웃 중국과의 관계. 정부의 정책 기조인 '안미경중'도 이미 유효기간이 지났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어떻게 관리해야 하고 무엇이 가장 국익에 부합하는 길일지 외교당국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질 듯하다.
※ '한중일 톺아보기'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슈를 살펴보는 주간 연재코너입니다.

#지금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 하시면 다음 기사를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신윤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