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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죽음은 흔하다. 하지만 모든 죽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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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벨기에에서 태어나 파리대학에서 철학과 법률을 공부하고 최연소 철학 교수 시험에 합격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여느 유럽인과 마찬가지로 문명사회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1935년 브라질 상파울루대 교수로 임용된 레비스트로스는 아마존 밀림으로 들어가 연구할 기회를 얻는다. 문명과 대척점에 있는 야만을 탐구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 계획은 어긋난다. 그가 맞닥뜨린 상황은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가 남비콰라족을 찾아갔을 때 일이다. 철저하게 족장 중심으로 유지되는 빈곤한 부족이었다. 흥미로운 건 족장이라는 사람의 역할이었다.

남비콰라족 족장은 권위를 부리는 자리가 아니라 책임감과 관대함으로 부족을 이끄는 자리였다. 족장은 늘 선두에 나서 싸우는 자였고 식량을 나눌 때 가장 적게 가져가는 자였다. 문명사회가 그토록 이상향으로 주장했던 리더의 모습이 아마존에는 이미 있었던 것이다.

레비스트로스 연구 방향은 바뀌어 버렸다. 그는 자기가 속한 사회만이 객관적이고 실재적이라고 믿는 문명사회가 그릇된 오만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대담 내용을 책으로 옮긴 '레비스트로스의 말'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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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볼 때 하나의 죽음은 충분히 진부한 사건이지만 가족과 친척들에게는 하나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일입니다. 우리는 결코 한 가족에게 닥친 부고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죽음은 흔하다. 하지만 그 죽음은 가족 당사자들에게는 세계가 무너지는 일이다. 하지만 가족이 아닌 사람은 그것을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그 죽음에 대해, 그 가족들의 슬픔에 대해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내 기준으로 다른 죽음을 윤리적·도덕적으로 판단할 어떤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레비스트로스는 같은 논리로 문명인의 시각으로 원주민을 보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법이라는 지적한다.

"우리는 사회에 대해 사고할 때 어떤 가치와 참조 체계를 이용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회를 사고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체계를 버려야 합니다."

레비스트로스의 대표작 '슬픈열대'에는 백인들과 아마존 원주민들이 처음 만난 장면을 묘사하는 구절이 나온다.

"백인들은 원주민들이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기를 바랐다. 원주민들은 백인들이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를 바랐다. 양쪽은 모두 마찬가지로 무지했다. 그래도 원주민들이 훨씬 인간적이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듯한 충격이 오지 않는가?

문명사회에서 온 오만한 자들은 원주민이 동물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백인들을 자기들과 동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슬픈 열대'에서 가장 멋진 구절은 이것이다.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

그렇다. 세계는 인간보다 훨씬 이전부터 있었고, 인간이 소멸한 다음에도 있을 것이다. 인간. 아무것도 아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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