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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사형했어야”… 정인이 양부모 선고 결과에 눈물바다 된 법원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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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앞에서 시민들이 선고 직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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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아, 3살 되고 4살 돼서 안 아프면 다시 돌아와.”

학대로 숨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의 수목장 묘를 딸과 함께 찾은 박나현(29)씨가 “정인이라는 아이가 아파서 하늘나라에 갔다”고 말하자 6살 딸은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는 박씨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정인이를 생각하면 눈물만 난다. 그는 “어린아이가 말도 못하고 고통받았던 걸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다”며 “양부모 모두 사형을 받아야만 한다”고 했다.

정인이 양부모의 선고공판이 열린 14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 청사 앞은 박씨같은 마음을 가진 시민들 300여명으로 가득 찼다. 전국 각지와 캐나다, 필리핀 등 해외에서 보낸 정인이를 추모하는 근조화환들과 현수막들도 빼곡히 들어섰다. 양모 장씨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달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사람들도 저마다 선고 결과를 듣기 위해 모였다.

정인이 양부모의 엄벌을 촉구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시민도 있었다. 제주도에서 21개월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정아(42)씨는 “제주지법에서 1인 시위를 하다가 이번에는 정인이에게 힘이 돼주고 싶어서 오게 됐다”며 “우리 아이가 정인이보다 한 달 늦게 태어났는데, 정인이가 이런 사랑을 누리지 못하고 갔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동학대를 엄벌하는 선례를 만들어 다시는 아동학대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에 거주하는 이은영(39)씨는 정인이를 알게 된 후 인천에서 1인 시위를 해왔다. 이씨는 사건을 알게 되고 한 달 동안은 대리외상증후군을 앓았다. 고통받았을 정인이가 떠올라 밥도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지난 2월부터는 혼자 아파할 게 아니라 세상에 사건을 더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거리로 나갔다. 한 명이라도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에 ‘정인이를 기억해주세요, 사랑해주세요’라고 적은 전단을 나눠줬다. 이날도 이씨는 선고를 기다리며 호소했다. “정인이를 기억해주세요, 제발 관심 좀 계속 가져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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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앞에서 정인 양의 사진을 끌어안은 시민이 취재진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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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선고 직전 장씨가 탄 것으로 추정되는 호송차가 지나가자 시위자들은 마음을 모아 “장OO 사형”을 외쳤다. 일부 시위자들이 장씨의 이름을 선창하면 다른 시위자들은 “사형”을 후창했다. 눈물을 흘리며 사형을 기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재판부가 장씨에게 무기징역과 양부 안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법원 앞 시민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한 30대 여성은 “당연히 사형이 나올 줄 알았는데, 검찰의 구형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한 것에 대해 너무 실망이 크다”며 “최약자인 아이를 우리나라 법이 보호하지 않는데, 만약 내가 없다면 아이를 누가 지켜주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분노를 표했다. 50대 여성도 “아이들이 무고하게 죽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아이를 죽이면 살인죄로 사형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줬어야 한다”며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화풀이로 죽여도 내가 죽지는 않는다는 분위기 만드는 사법부를 엄마가 신뢰할 수 있겠냐”고 했다.

한때 장씨에게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 선고됐다는 잘못된 정보가 공유되며 시민들이 환호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부 시민들은 기쁨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30대 여성은 “우리나라는 사실상 사형이 없으니까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라면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실망스럽다”며 “장씨가 20년 후 모범수로 가석방되면 50대 중반인데 그때 취직도 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게 되지 않겠냐”고 전했다.

조희연·유지혜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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