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6 (화)

[삶과 문화] 당신 가족은 ‘건강 가족’입니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날이 모여 있는 5월을 흔히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국가에서 권장하는 4인 가족에 꼭 어울리는 이 기념일을 소외감 없이 즐기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가족을 이루는 두 사람이 모두 시스젠더인가? 이성애자인가? 모노가미인가? 결혼식을 했는가? 혼인신고는 했는가? 자녀를 가지고 있는가? 둘 사이에서 낳은 자녀인가? 이 모든 질문들에 ‘예’를 누른 당신은 행운아다! 세상엔 자신의 주장과 상관없이 법적으로 누군가의 어버이도, 어린이도, 부부도 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퀴어이거나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함께 사는 동거인이거나,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은 자식과 부모관계이거나, 폴리아모리를 지향하는 이들은 이 ‘정상가족’의 여집합에 덩그러니 서 있다. 이들은 이 ‘가정의 달’ 5월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2021년 문학동네의 젊은작가상 수상집에 실린 김지연 소설가의 '사랑하는 일'은 레즈비언인 은호가 6년째 연애 중인 자신의 여자친구를 아빠에게 소개하는 자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는 “굳이 사귄다! 애인이다! 밝힐 것 없이 친한 친구라고 해도 같이 사는 데는 하등 지장이 없지 않냐 이 말이에요. 꼭 동네방네 소문낼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라며 ‘조용히 살 것’을 종용하고, 은호는 “지랄하지 좀 마!”라고 화를 낸다. 은호가 소리를 지르는 장면은 (소설 속 은호 파트너의 말을 빌자면) 패륜아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누구라도 ‘너를 사랑한다’는 말과 ‘죽은 듯 살라’라는 말을 동시에 들으면 술잔을 엎어버리지 않을까. ‘사랑에 대해 뭘 알아?’라고 묻지 않을까.

가족이라는 것이 꼭 외부에 의해 인정받아야만 성립되는 것은 아니지만, 관계에서 제도와 절차가 중요할 때도 있다. 개인이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느냐와는 별개로(은호가 파트너와 가족으로 신고를 하고 싶냐와는 상관없이), 국민은 자신의 성적지향성에 무관하게 차별받지 않을 권리(신고를 할지 하지 않을지 선택할 수 있을 권리)가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하고 2025년까지 법제화하기로 한 ‘제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서는 혼인과 혈연관계가 아닌 동거 커플이나, 돌봄과 생계를 같이하는 노년 동거 부부, 아동학대 등으로 인한 위탁가족을 가족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동성 커플은 가족의 범위 확대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소설 속 레즈비언인 은호는 그녀의 파트너와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현실에서도 그럴 것이다. 동성 커플은 건강가정기본계획의 ‘건강’에 포함되지 못하는 걸까? 은호와 파트너가 가족으로 인정받으면 이 사회의 ‘건강’을 해치는 걸까? 이 ‘건강’이라는 키워드는 상당히 엄격해서, 최근 비혼 출산을 한 사유리씨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했을 때도 반대 청원의 이유로 쓰였다. ‘건강 가족’이란 무엇일까?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면, 굳이 사회가 인정하는 가족의 테두리 안에 들어 있지 않아도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다. 출산율이 그렇게나 걱정된다면, 청년들이 결혼을 안 하는 게 그렇게나 걱정이라면, 현 가족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욱여넣는 대신 가족의 범위를 넓히는 게 현명한 일일 것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가정의 달, 5월이다.

한국일보

박초롱 딴짓 출판사 발행인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