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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The W]"꼭 아빠성을 따라야 정상?" 먼저 물려주자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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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지현 기자] [The Weekend]아빠 대신 엄마 성(姓)으로②…"내 안의 가부장을 깨는 순간"

# 결혼 8년차 정민구씨(41)는 최근 첫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다. 아이 성(性)은 아내의 것을 따를 예정이다. 엄마 성을 물려줄 거라는 말에 동료와 친구들은 애매한 반응을 보인다. '굳이?'라는 얼굴로 쳐다보기도 한다. 지인 중 한 명은 "지예(아내 이름)의 성인 '김'씨도 아버지 성이잖아?"라고 되묻기도 했다. 엄마 성 쓰기는 결국 아빠 성 쓰기가 아니냐는 뜻이다. 정씨는 이에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빠 성 쓸 거냐는 질문에…나도 모르게 "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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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구씨 부부 캐리커쳐 /사진=정민구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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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용씨(44)의 17개월 된 딸아이 이름은 이제나다. 신문기자인 그는 여성가족부(여가부)를 취재하던 2017년 엄마 성 물려주기가 가능하다는 걸 알고, 당시 임신 중이었던 아내에게 "우리도 해보자"고 먼저 제안했다.

다만 이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던 상태라 가능했던 일이었다. 현행 제도에선 혼인신고 때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했습니까?'라는 질문에 '예'라고 체크해야지만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미 혼인신고를 한 정씨는 곤혹을 겪었다. 변호사의 자문을 구했더니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혼 후 다시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혼인신고 때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었다. 정씨는 "당시 담당 공무원이 스치듯 '아빠 성 쓰실 거죠?'라고 묻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네' 라고 답한 기억이 있다"며 "묻는 직원도, 나도 당연히 아빠 성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했다. 정씨는 우선 '성본변경신청'을 통해 아이에게 엄마 성을 물려준다는 계획이다.


집안 반대도 있지만…"내 안의 가부장 깨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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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정부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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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성을 물려주는 것에 대해 아직 주변의 반응은 시원찮다. 결혼 3년차 김한울씨(34)는 "좋은 취지고 이해할 수 있지만, 나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는 분들이 아직 많다"고 말했다.

정씨 역시 "진보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많은 편인데,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빠와 성이 달라서 왕따를 당하면 어떡하냐", "부모 욕심 아니냐" 등의 말을 들었다.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박씨는 "평소 식구들에게 (아내 성을 물려주겠다고) 운을 띄웠는데도, 마지막엔 어머니와 여동생이 극렬하게 반대를 했다"고 말했다. 되려 오기가 생겼다. 박씨는 "대체 성 따위가 뭐라고 이렇게 열을 내나, 최악의 경우에도 친척 어른들에게 뺨 정도 맞고 끝나지 않겠나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그럼에도 다른 부부에게 '엄마 성 물려주기'를 추천하겠냐는 말에 정씨는 "적극 추천한다"고 답한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사안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내 안의 가부장'을 깰 수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무엇보다 '아빠의 각오'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왜 이렇게 하려는가'에 대한 자신만의 답이 있어야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아내가 설득해 어쩔 수 없이 하면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다"며 "부부가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의사결정 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여가부의 이번 '부성우선주의 폐기' 방침을 들었을 때 김씨의 첫 마디는 '드디어'였다. 우리만 있는 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아직'이라는 반응도 있다. 박씨는 "사회가 바뀌고 있는 건 맞지만 기대보다 속도가 느리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아이 성을 결정하는 시점이 출생신고가 아니 혼인신고 때라는, 상식적으로 봐도 이상한데도 문제가 고쳐지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싶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flo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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