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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필동정담] 정상회담의 첫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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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시작은 청바지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첫 방한한 자리에서 불쑥 청바지 얘기를 꺼냈다. 전쟁 직후 물자가 귀하던 시절, 어느 날 학교에 가보니 미국에서 원조 물자로 온 청바지를 나눠주더라는 것. 그 새파랗고 빳빳한 청바지를 하나 갖고 싶어 줄을 섰다. 하지만 바로 앞에서 준비된 수량이 동나 버렸다. 소년은 안타깝게도 빈손으로 돌아서야만 했다. 그 소년이 이 전 대통령이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불고기로 받아쳤다. 유년기를 하와이에서 보낸 오바마 전 대통령은 한인들이 하는 불고기 레스토랑을 즐겨 찾았다. 하와이에 불고기 하는 데는 많지만 한인들이 하는 원조 식당을 찾아다녔다는 얘기였다. 이 자리에 동석했던 전 외교 관료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불고기'를 한국 사람처럼 정확히 발음하는 걸 듣고, 한두 번 먹어본 사람이 아니란 걸 대번에 눈치챘다고 했다.

청바지 뒤엔 한미동맹이 숨어 있다. 전후 군사동맹과 원조에서 시작된 한미 관계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존중하는 가치동맹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전달하기 위한 겸손한 오프닝인 셈이다. 불고기 뒤에는 소고기 수입을 비롯한 복잡한 통상 현안이 얽혀 있었다. 통상 협상 카드를 꺼내기 전에 음식을 통한 한미 간의 정서적 교감을 쌓아둔 것이다. 두 정상은 처음부터 복잡한 외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달려들지 않았다. 서로가 신뢰할 수 있는 상대임을 확인하고 교감하는 걸 중시했다.

오는 21일 미국 워싱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대북 대책·코로나19 백신 수급 불안·악화된 한일관계·기술동맹 등 풀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선 코로나19 이후 첫 해외 방문이며 바이든과는 첫 대면 회담이다.

어렵게 시간을 낸 두 정상이 첫 만남에서 얽히고설킨 난제들을 말끔히 풀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두 정상이 진심으로 교감하고 있다는 것만 보여줘도 국민은 안심이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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