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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칼럼]산재사망자 빈소찾은 대통령…언제까지 조문만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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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으로 일하다 숨진 고 이선호씨 빈소찾은 文대통령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머리 숙여

앞다퉈 재발방지책 약속한 정치인들, 진정성 있기를

한 해 882명의 노동자 산업재해로 목숨 잃어

여론 무마용 대책으론 달라질 게 없어

CBS노컷뉴스 하근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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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항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진 20대 청년 노동자 고(故) 이선호 씨의 부친 이재훈 씨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청 앞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아들의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 앞에 무릎을 꿇고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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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달라진 게 없다. 몇 년 전, 엊그제, 아니 바로 조금 전 벌어졌던 상황이 일상처럼 반복된다.

잠시 머리를 조아리며 무마용 대책을 내놓고 나면 그 일들은 또 금세 잊혀질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산업재해로 숨진 23살 청년 고 이선호씨의 빈소를 찾았다.

이 청년노동자는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평택항 부두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하다가 지난달 22일 변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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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평택 안중백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선호 씨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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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안전장치 하나 없이 홀로 일하다 숨진 20대 계약직 노동자 김용균씨 참사와 꼭 닮았다.

어버이 날인 지난 8일엔 현대중공업과 현대제철에서 작업을 하던 40대 가장 두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변변한 안전장비도 없이 모두 혼자 작업을 하다 추락하거나 기계에 끼거나 깔려 세상을 떠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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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작업 중 숨진 고(故) 이선호 씨 사고 현장인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신컨테이너터미널 컨테이너에 지난 12일 오전 경고 문구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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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송구하다"며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머리를 숙였다.

정치인들도 앞다퉈 빈소를 찾아 '재발방지책' 마련을 다짐했고 고용노동부와 사측도 '긴급점검'과 '개선방안'을 약속했다.

부산떨기에 급급한 무마용 대책일 뿐 진정성은 그 누구,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지난해 산업재해로 882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질병에 의한 사망자 수까지 합하면 2천 명이 넘는다는 게 노동계의 시각이다.

산재사고 사망자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나마 꾸준히 감소세를 보였지만 지난해에는 오히려 전년보다 27명이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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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지난 1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이 대상에서 빠진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자 괴로워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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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천 명 가까이 발생하는 산재사고 사망자를 임기 안에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한 문 대통령의 공약(公約)대로라면 그야말로 공약(空約)인 셈이다.

코리안 드림을 꿈꿨던 외국인 노동자도 전체의 10.7%인 94명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생을 안타깝게 마감해야 했다.

사고도 대부분 떨어짐, 끼임, 부딪힘, 물체에 맞음 등과 같은 막을 수 있는 것들이다.

대통령이 언급한 어처구니없는 '후진적인 산재사고'의 전형적인 모습들이다.

반복되는 산재사고를 막지 못하는 데는 정부의 허술한 관리감독 시스템이 한 몫을 하고 있다.

산재사고가 발생해 노동부가 집중점검을 했는데도 3개월 만에 다시 같은 사고가 나고, 근로감독이 종료된 지 하루 만에 노동자가 숨지기도 한다.

사측에 감독 계획을 미리 알려주고 서류만 검토하는 '수박겉핥기 식의 감독으로는 사고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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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기업처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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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부터 시행되지만 이 마저도 사고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뒷전으로 밀린채 입법과정부터 이미 누더기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선호씨 사고를 계기로 경영책임자의 처벌 등 삭제됐던 조항들이 개정될 움직임이 시작됐다고 하니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지난 2017년 5월 노동계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에 큰 기대를 걸었던 게 사실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에서부터 차별금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 위험의 외주화 금지 등 굵직한 현안들이 공약으로 걸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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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가 지난 1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발언하려 하자 관계자가 막아 서고 있다. 윤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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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노동계는 "미흡하거나 사실상 낙제점"이란 인색한 평가를 내놓는다.

'제2, 3의 김용균과 이선호'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앞으로도 제대로 쉬지도 충분한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별반 나아질게 없다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옥탑방에서, 반지하 월세를 전전하며 아르바이트에 목숨을 거는 청년들도 수백 만에 이르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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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항에서 일하다 사고로 숨진 20대 청년 노동자 고(故) 이선호 씨의 부친 이재훈 씨가 지난 13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청 앞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서 아들의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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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언제까지 안타까운 주검 앞에 빈소만 찾을 것인가?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 예수의 가르침, 그게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일이 반복될 때만 기계적으로 제시되는 여론 무마용 상투적 대책으로는 세상은 달라질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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